시간이 지닌 비가역성이란 성질은 우리를 그 앞에서 굴복하게 한다. 횡적으로 흐르는 시간 안에서 우리는 탄생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그리워하며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기도 한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동반된다. 인간사에서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 한 건축물의 해체 소식은 현대 건축사를 흔든 어느 사조의 끝을 선고했다. 나카긴 캡슐타워(Nakagin Capsule Tower)가 해체된다. 사인은 콘크리트 노화. 이는 곧 메타볼리즘의 종말임을 의미한다. 양 코어에 붙어있는 백색 입방체 형태의 모듈은 50년이라는 세월의 풍파로 누렇게 때가 꼈다. 기능주의에 도발하던 총명함은 어느덧 만성 피로로 충혈된 안일함으로 변했다. 2007년부터 숱하게 제기된 철거를 거스르는 부단한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갔고, 나카긴 캡슐타워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허나 우리는 봤다. 쿠로카와 키쇼(Kisho Kurokawa)가 설계한 이 건축물이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어떻게 조각했는지. 버블 시대에는 환희와 기대로 응답했고, 위험과 절망이 도사리는 현시대에는 그로테스크함으로 답했다. 몇 안 되는 메타볼리즘 건축물들은 유럽의 하이테크 건축(High-tech Architecture)에 영향을 줬고, 우리는 여의도 ‘The 현대 서울’ 앞에 줄 서있는 젊은이들을 통해서도 그 영향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모듈의 일부가 사이타미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Saitama)에서 전시 중이라고 한다.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는 이 모듈을 소장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모두 ‘보존’이란 이름으로 시간을 박제하고 있다. 그렇다. 자연스러운 소멸과 기억(Retention)은 인위적인 영생과 상기(Recollection)로 대체되고 있다.
동시에 모듈 일부는 재생되어 사용될 예정. 누군가 진정한 ‘보존’의 본질은 현상 유지가 아닌 현재에도 사용 가능하도록 하는 지속가능성에 있다고 했다. 우리가 시간에 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도는 진정한 ‘보존’에 있다. 이는 메타볼리즘에서 말한 성장일 것임을.
어쩌면 역설되는 이 상황마저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일 수도. 지금, 한 시대의 끝은 새로운 시작을 가리키고 있다. 그 시작을 계속해서 지켜보도록 하자.
이미지 출처 | Arc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