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애정하는 가족, 친구, 애인과 어떤 각별한 시간을 보냈든 잠을 청하는 순간 만은 각자가 다른 세계로 떨어진다. 잠에 드는 건 지극히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일이니 말이다. 한날한시에 같이 가자는 약속의 무용함처럼, 무의식에 세계로 넘어가는 것에도 분명한 순서가 있음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잠들기 레이스의 등수가 잠에 예민한 이들에게는 꽤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먼저 곯아떨어진 이가 코라도 골기 시작한다면 내일의 피로는 이미 예약한 셈이지 않은가.
누군가에게는 전 애인의 숨결이 떠오르는 위안이, 누군가에게는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의 살인 충동이, 누군가에게는 귀마개 산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돈벌이가 되고 있는 소음 아닌 소음 코골이.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이자 아티스트 에릭 케셀(Erik Kessels)은 이를 활용한 기발한 LP를 발매했는데, 2016년 오직 ‘ZZZZZZZZZZZZZ’로만 형용할 수 있는 소리, 코골이로 12분을 채운 [SNORING]을 발매한 것.
300장 한정으로 제작된 해당 LP는 두 트랙으로 구성, 중저음의 우렁찬 코골이 소리가 매력적?인 앨범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SNORING]가 쓸데없는 소음 음반으로 취급받겠지만, 반복된 리듬과 잠의 소리라는 이미지가 주는 편안한 분위기에 끌리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에릭 케셀은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SNORING]을 들으며 곤히 자는 아기의 모습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사진, 전시, 음악 등 즐거움을 전할 수 있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에릭 케셀의 또 하나의 작품 [SNORING]. 반복되고 강조된 소리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해당 LP를 찾아봐도 좋을 것. [SNORING]는 에릭 케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Erik Kess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