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퍼 클라리사 보넷(Clarissa Bonet)은 ‘City Space’ 시리즈를 통해 심리적, 물리적 맥락에서 도시의 면면을 탐구했다. 그녀는 2009년, 시카고로 거주지를 옮기며 새로운 도시 환경에 매료되었고, 끝없이 펼쳐진 고층 빌딩, 콘크리트 위 어디론가 홀리듯 걸어가는 군중들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클라리사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며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녀가 해석한 도시의 익명성은 짙은 그림자와 차분한 색을 머금은 채 프레임 안에 담겨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못 본체 자기 갈 길을 가는 도시 사람들의 일상은 이제 더는 낯선 광경이 아니다. 도시의 비인간화는 현대인에게 감정 결핍과 소통의 부재를 남겼다. 시카고로 도착한 클라리사 역시 도시의 위용에 감탄하고 이내 그 속내에 안타까웠을 것. 이러한 그녀의 개인적인 감상이 드러난 ‘City Space’는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쓸쓸한 메시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