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부동산 중개업자 존 말루프(John Maloof)는 시카고의 한 벼룩시장에서 30만 장에 육박하는 네거티브필름과 필름 주인의 것으로 여겨지는 소지품을 모두 380달러에 샀다. 그중 인화되지 않은 필름만 해도 천여 통. 그는 사진 소셜 웹사이트 플릭커(Flickr)에 사진을 올려 마니아들의 의견을 수집했다. 생동감 넘치며 주제 의식이 분명한, 결코 범인의 시선이라 할 수 없는 이 사진들은 곧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존 말루프는 범상치 않은 사진의 소재가 궁금해졌고, 사진의 주인인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에 대한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사진의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사진보다 더욱 미스터리한 그녀의 삶이었다. 놀랍게도 비비안 마이어는 명망 있는 예술가도, 사진작가도 아닌 일반 가정집의 보모였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와 평생을 보모, 간호인, 가정부로 근근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미혼으로 여러 가정집에 몸을 의탁한 마이어는 틈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고, 70대의 노인이 될 때까지 약 40여 년간 30만 장이 넘는 사진을 남겼다. 철저히 베일에 덮인 마이어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탐정까지 고용되었지만 헛수고였다. 딱히 기록할 만한 것은 없었다. 수십만 장의 사진이 담긴 필름 상자를 2007년,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헐값으로 경매에 내놓고, 마이어는 2년 뒤, 숨을 거뒀다.
마이어는 중형 롤라이 리플렉스 카메라로 거의 모든 사진을 흑백으로 찍었다. 6X6 정방형 프레임에 시카고와 뉴욕의 길거리, 일상을 담았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을 즐겼던 그녀는 그림자와 배경을 활용해 독특한 시선으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자화상을 그렸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다간 마이어는 평생 찍은 사진을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천여 통의 인화되지 않은 필름과 생전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은 사실은 사진에 대한 마이어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프랑스 억양이 섞인 독특한 말씨, 시원한 걸음걸이, 특유의 무표정, 큰 셔츠와 코트를 걸친 실용적인 옷차림은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비비안 마이어는 굉장히 지적이고, 냉정하며, 직설적이어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인물이었다고 지인들은 말한다. 이렇듯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았던 그녀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창구는 카메라였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독백을 녹음했는데, “이건 바퀴야. 타면 끝까지 가야 하는 바퀴”라는 말은 마이어의 삶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바퀴는 바로 그녀의 삶이자 사진이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녀에게 있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마이어는 비밀스럽게 기록한 자신의 세계를 필름 상자에 담아 오래된 일기처럼 보관했다.
첫 작품이자 유작이 된 수십만 장의 사진이 지금과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을 그녀는 과연 예상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삶조차도 송두리째 예술로 남기고 싶었던 마이어의 의도였을까. 곤궁한 삶을 살았지만, 반세기에 걸친 그녀의 삶(사진)은 예술이자 역사가 되어 지금에 와서 빛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