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표적인 PC 운영체제 윈도우즈(Windows) 속 그림판(Paint)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기분을 느꼈다. 마땅한 그래픽 툴 프로그램이 없을 때,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극히 단순하고도 원초적인 기능을 가진 그림판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이를 화가로 데뷔시켰다. 여전히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를 필두로 각종 유머사이트의 게시판에서 그림판으로 그린 조악한 만화, 그림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특유의 ‘허접한 맛’과 ‘병맛’ 역시 그림판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아닐까.
그러나 오늘 소개할 87세의 그림판 마스터, 콘차 가르시아 자에라(Concha Garcia Zaera) 할머니는 그림판만을 사용해 멋들어진 풍경화를 쓱쓱 그려낸다. 아픈 남편을 돌보느라 외출이 어려웠던 그녀는 어느 날 손자가 준 컴퓨터에서 그림판을 발견해냈고, 오랜 시간을 들여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 소재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낸 엽서와 남편이 들려주는 상상의 공간, 자그마한 픽셀이 모여 완성되는 그녀의 그림은 산뜻하고 밝은, 청량감을 물씬 풍긴다.
그녀의 작품은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현재 게시물은 단 18장뿐이지만. 팔로워 14만 명이 그녀의 신작을 기다리는 중.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되는 할머니의 그림판 작품을 천천히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