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주목하는 복싱 경기. 갑자기 한 남자가 낙하산을 타고 링 위로 난입해 아수라장을 만든다. 링 한가운데 멋지게 착륙하는 것을 노렸던 그는, 약간의 오차로 링 로프에 떨어져 우스꽝스럽게 허우적댄다. 

복싱 역사에 길이 남을 기괴한 사건인 ‘팬 맨 파이트(Fan Man Fight)’ 사건은, 1993년 1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에반더 홀리필드(Evander Holyfield)와 리딕 보위(Riddick Bowe)의 WBA, IBF 세계 헤비급 통합 복싱 타이틀매치에서 일어났다. 7라운드 종료를 1분 50초 정도 앞두고, 갑자기 홀리필드는 보위 등 뒤의 허공을 응시하며 놀란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저 하늘 위에서 뭔가가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 이내 한 남자가 링 로프 위에 추락한다.

이 정체불명 남성의 이름은 제임스 밀러(James Miller). 패러 글라이더 조종사였던 그는 경기장 근처를 10분간 선회한 뒤 경기장에 깜짝 착륙하려 했지만, 낙하산 줄이 머리 위 조명에 엉켜버렸고 결국 찢어지며 이상한(?) 곳에 불시착하게 된 것. 커다란 낙하산과 로프에 엉킨 줄 때문에 경기장은 이내 혼비백산이 되어 시합이 중단됐다. 일부 팬들은 화가 난 나머지 그를 둘러싸고 두들겨 패기 시작했으며, 그 와중에 그의 낙하산 조각을 기념품으로 잘라서 챙기기는 관객도 있었다고. 밀러는 병원 퇴원 직후 구치소로 넘겨졌으며, 보석금 200달러를 내고 석방됐다. 하지만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기계적인 문제로 발생한 문제”라며 고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헤비급 경기가 열렸지만, 기절한 사람은 나뿐이었다”라고 농담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21분 뒤, 겨우 수습이 끝난 뒤 경기는 재개되었으나, 이 소동은 경기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임신 중이던 보위의 아내는 낙하산 줄에 휘말려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으며, 보위의 코치 또한 기절 직전까지 갈 만큼 충격을 받은 것. 보위는 이후 경기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고, 결국엔 판정패를 당하게 된다. 이후 밀러는 뭔가에 항의하기 위해 이 쇼를 기획했다고 해명했으나, 항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시합이 끝나고 보위는 “낙하산맨이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난 이미 운이 다했다. 난 이제 아내와 병원에 함께 있어야 한다. 홀리필드에게 축하한다고 전해달라”라고 담담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한편, 밀러는 이후에도 영국 버킹엄 궁전에 낙하산을 타고 들어가려다 경찰에 체포되는 등 계속해서 기행을 선보였다. 

이미지 출처 | The Sweet Science, theSco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