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일상을 배경으로 시대의 우울감을 담아내는 만화가 아사노 이니오(Inio Asano). 그의 이름이 언급될 때면 언제나 이 작품, “잘 자, 푼푼”이 빠지지 않는다. 성장기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대개의 만화가 그들의 성장통을 발판 삼아 독자에게 희망의 불씨를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잘 자, 푼푼”은 끝을 알 수 없는 자기 연민에 빠진 사춘기 소년의 절망과 상처를 안고 성인이 된 그가 다시금 추락하는 모습만을 사실적으로 비춘다.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더 깊은 우울을 전하는 만화가 “잘 자, 푼푼”이지만, 푼푼 내면에 존재하는 하느님, 작중 끝까지 의문을 품게 하는 사이비 교주 ‘페가수스’ 등 스토리 라인에 삽입된 독특한 장치들은 만화가 그간 일본을 넘어 전 세계의 만화 팬들에게 사랑받는 데 크게 일조했다. 개중에도 주인공 푼푼을 그 어두운 면과 극한의 대비를 이루는 깜찍한 ‘새’ 캐릭터를 활용해 표현한 점이 특히 돋보이는데, 푼푼의 심리 상태에 따라 몸이 인간의 형태로 바뀌어 보이거나, 얼굴이 다소 기괴해지는 등 이를 지켜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만화를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했다.
이처럼 우울 만화의 대명사로 꼽히는 “잘 자, 푼푼”의 푼푼이 최근 3D 그래픽과 머천다이즈를 통해 목격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허나 한 가지 문제라 하면 이 모든 작업이 작가 아사노 이니오에 의한 것이 아닌, 50만 팔로워를 거느린 그래픽 디자이너 존 와우카비치(John Wowkavic)의 결과물이라는 것. 그는 지난해 7월부터 지속적으로 푼푼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가 포함된 작업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업로드해 왔다. 만화 속 푼푼의 모습은 얼굴에 까만 점을 찍은 듯한 두 눈과 뾰족한 코 그리고 앙상한 두 다리로 대표되는데 존이 공개한 캐릭터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해당 캐릭터에 붙인 이름은 ‘실리버드(sillybird)’로 일부 사람들이 푼푼이 아니냐고 묻자, 실리버드는 실리버드일 뿐 서로 다른 존재라고 그가 직접 답을 하고 나섰다.
존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실리버드를 이용한 작업을 선보여 왔는데, 때에 따라서는 뽀글 머리의 케빈 버드(kevinbird), 머리에 깃털을 단 바비버드(bobbybird) 등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존이 단순 작업물만을 업로드할 때까지만 해도 영상 자체가 퍽 귀엽기도 하거니와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푼푼을 오마쥬 했다고 암묵적으로 수긍하던 터라 일부 팬들을 제외하고는 큰 문제제기가 없었지만(사실 한국과 일본 밖의 존의 팔로워들 중 다수가 “잘 자, 푼푼”의 존재를 모르는 듯하다), 존이 실리버드의 그래픽 티셔츠를 판매하기 시작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기존 빈티지 의류에 직접 그림을 그려 판매하던 부틀렉 제품과는 다르게 그래픽 티셔츠의 등장은 그가 본격적으로 이를 통해 돈을 벌려는 심산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정확히는 푼푼과 가장 닮은 실리버드가 아닌 눈썹이 추가된 스위티버드가 등장했다). 이에 그가 아사노 이니오의 작업물을 훔치고 있다는 주장부터 당장 아사노 이니오에게 알려야 한다는 팬들까지, 존이 실리버드의 작업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리버드의 인기는 존의 틱톡 계정에서 더욱 폭발적이다. “I create because I can’t not “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는 존의 계정에는 적게는 1만 많게는 50만 조회수의 실리버드 영상이 가득 차 있다. 현재는 틱톡 역시 리워드 제도를 도입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에 논란은 더욱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푼푼의 디자인이 워낙에나 단순한 탓에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 볼 수도 있겠으나, 다리와 몸을 잇는 경계의 물결치는 디테일의 정확도 그리고 그가 업로드하는 영상의 배경음에 일본어가 다수 삽입된 걸 보면 그도 분명 푼푼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최근에는 실리버드 팬 계정까지 등장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아사노 이니오의 직접적인 반응은 없다. 과연 존 와우카비치가 꾸준히 밀고 있는 ‘실리버드’라는 작은 새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귀추를 주목해 보자.
John Wowkavic 인스타그램 계정
Asano Ino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John Wowkavic, Pro Roof Gr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