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에서 숱하게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비명소리를 기억하는지. 주로 주연배우가 아닌 엑스트라가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내는 이 비명은, 한국에서는 ‘빌헬름의 비명(Wilhelm Scream)’으로 알려져 있다. 비명의 원본은 쉐브 울리(Sheb Wooley)라는 성우 겸 가수가 녹음한 사운드로, 1951년작 웨스턴 무비 “머나먼 북소리(Distant Drums)”에서 한 병사가 악어에게 물려 물속으로 끌려들어 가면서 지른 비명으로 처음 등장한다. 사람이 죽으면서 내는 처절한 소리이지만, “아아↗아으↘윽”하는 괴상한 소리는 마치 ‘삑사리’처럼 들려 듣는 이로 하여금 묘하게 힘을 빠지게 한다. 이 비명은 이후 1953년 영화 “페더 강의 전투(The Charge at Feather River)”에서 빌헬름 일병이라는 캐릭터가 화살에 맞으면서 내는 비명으로 재사용되었으며, 이 영화가 유명해진 후 아예 ‘빌헬름 비명’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다.
앞서 한국에서는 ‘빌헬름의 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언급했지만, 영화의 ‘Wilhelm’은 미국인이기 때문에 미국식 발음으로 읽은 ‘윌헬름’이 더 정확한 이름이 된다. 다만 이름의 유래가 된 장면에서는 분명히 ‘빌헬름’이라고 발음하고 있다. 해당 단어는 영미권에서는 윌리엄으로 철자와 발음 둘 다 변경되었기 때문에 독일어식 철자법으로 기재된 이름인 만큼 원어대로 발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절하지만 왠지 모르게 웃음을 자아내는 컬트적 사운드로 자리 잡은 빌헬름의 비명은 개그 요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를 잘 눈치채지 못하도록 넣어두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영상을 보면 죽는 장면이 아닌데 굳이 빌헬름의 비명이 나오는 장면도 있다. 결과적으로 밈(meme)에 가까워서 사망, 추락, 엑스트라가 부상을 입는 장면에서 나오는 효과음이라고 이해하면 좋다. 특히 조지 루카스(George Lucas)가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에 빌헬름의 비명을 많이 활용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 시리즈에도 자주 등장했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D-WAR)”에는 무려 20번 이상 나온다. 최종적으로 영화 외의 매체인 드라마와 비디오 게임까지 포함하면 1951년 이래 총합 200회 이상 출연을 했으며, 심지어 워너브라더스의 공식 사운드 라이브러리에도 들어있다고.
빌헬름의 비명은 단순히 처음에는 예산 절감을 위해 사용됐다. 만약 시각 자료로 사진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올 때, 해당 주제에 맞는 사진을 직접 찍어오는 것보다 인터넷에서 저렴한 스톡 이미지를 구매하는 것이 시간과 예산 부분에서 이득인 것과 비슷하다. 비명 한 번 지르고 그대로 퇴장할 엑스트라에게 전용 마이크를 채워주기도, 그렇다고 전용 비명을 따로 녹음하기엔 예산과 시간이 부족하지 않겠나. 이런 이유로 영화의 음향감독이 기존 다른 영화에서 녹음된 비명 파일들을 찾아보다가 적절한 파일을 찾아 넣었는데, 그게 바로 빌헬름의 비명이다. 온갖 사운드가 섞이는 와중 이 비명만이 이상하리만치 하이톤이라 유독 잘 들리는데 웃기기까지 하니 금세 유행이 되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선 너무 유명해졌기 때문에 빌헬름 비명은 비용 절감보다는 이스터에그 혹은 헌사 느낌으로 넣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무수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엑스트라들이 대량으로 죽는 장면이 나온다면, 눈을 감고 자세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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