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능력을 갖춘 두 대의 로봇이 파괴 또는 기동 불능, 혹은 다른 특정 조건을 목표로 하여 겨루는 경기를 통칭하는 ‘배틀로봇(Robot Combat)’.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휴머노이드 형태의 로봇이 아닌, 바퀴와 차체를 가진 로봇 형태를 기본으로 여러 종류의 무기를 장착해 상대를 공격하는 경기다. 따라서 상대 로봇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등 격렬한 경기 양상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종목의 시초는 BBC의 프로그램 “로봇워(Robot Wars)”로, 한국에서도 EBS “로봇파워” 등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치러진 바 있다. 현재는 로보게임즈(RoboGames)와 같은 국제 대회가 가장 규모가 크며, 국가 및 지역별로 배틀봇츠(Battlebots)나, 소규모 로봇 대회로도 틈틈이 개최된다.
국가와 지역별로 나뉜 다양한 대회가 존재하기에 경기 규칙도 각각 다르다. 우리나라의 로봇파워 등을 통해 가장 잘 알려진 형태의 규칙은 본래 로봇워 대회 규칙으로, 경기장 내부에 빠지는 순간 경기가 끝나는 함정이 존재한다. 나아가 일반적으로 참여하는 배틀로봇에 비해 크고 파괴력이 강한 하우스 로봇은 물론 맵에 화염방사구, 지상 돌출물 등을 추가로 설치해 로봇들이 이러한 장애물을 이용해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 형태의 경기 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반대로 배틀봇츠와 로보게임즈에서 여는 경기는 경기장 내에 관중석과의 분리벽, 링 외부 참호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로봇이 서로를 파괴하거나 장외로 몰아내는 방법 외에는 승리할 수 없는 양상을 띤다. 보통 대중성을 중시하는 대회에서는 나름 평범한 로봇워와 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하드한 대회에서는 후자와 비슷한 경기 규칙과 경기장을 채택한다.
무기 사용은 무엇이든 가능하나, 장거리 공격 무기인 레이저, 총 등이나 조종을 방해할 수 있는 전파 장치, 물리적 타격 없이 상대 로봇을 고장 낼 수 있는 EMP나 고압 전기, 사람 및 주변 환경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유독성, 부식성, 폭발성 물질, 경기장을 어지럽힐 수 있는 접착제, 그물, 액체 분사 등의 사용은 대부분의 대회에서 금하고 있다. 다만, 때에 따라 장착이 허용되는 대회도 있다. 예를 들면 배틀봇츠에서는 원거리 무기도 허용된다. 화염방사기의 경우 로봇워에서는 금지되었으나, 로보게임즈과 배틀봇츠에서는 장착이 가능하다. 더하여 배틀봇츠에서는 무게만 초과하지 않는다면 추가로 즉 메인 로봇을 서포팅하는 로봇인 멀티봇을 내보낼 수 있는데, 2016년부터 드론에 화염방사기를 장착해 내보내는 팀마저 생겼다.
말로만 들으면 너무나 흥미진진한 배틀로봇이지만, 정작 인기는 점점 시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진입장벽. 말만 들으면 매우 참신하고 흥미로우며 박력 있는 오락거리처럼 보이지만 ‘기술력’과 ‘노하우’라는 큰 장애요소가 있다. 배틀로봇은 기계공학적 지식이 충분히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경기에 이기기 위해서는 충분한 경험까지 필요하다. 따라서 후발주자들은 배틀로봇 경기를 먼저 경험해 본 팀을 따라잡기 어렵다. 엄청난 제조 및 유지비용이 부담이 되는 것이 배틀로봇인데 이런 문제까지 겹쳐 한 번 승리하는 것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면, 어지간한 참가자들은 계속해 경기에 참여하기 힘들 것. 결국 이전에 참여하던 팀만 계속 참여하게 되는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된다.
앞서 언급된 로봇워나 배틀봇츠 등의 프로그램도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단기적 인기에 그쳤을 뿐 장기성이 부족했으며, 로보게임즈 역시 참가했던 사람만 몇 년째 연이어 참가하는 일명 ‘고인 물 현상’이 심각해졌다고. 결국 2010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배틀로봇 대회는 거의 자취를 감췄으며,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지던 대한민국 로봇대전도 2011년 제8회를 끝으로 더 이상 개최하지 않으면서 배틀로봇 대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게 되었다.
어느덧 시대가 흘러 수많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2024년. 휴머노이드 형태의 로봇과는 또 다른 매력과 중독성을 선사했던 배틀로봇을 한국에서 정식으로 다시 볼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이미지 출처 | BattleBo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