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방법을 논할 때 매년 빠지지 않는 단어가 항상성이다. 아마 오늘이 12월 31일인 줄도, 1월 1일인 줄도 모르게 ‘평소처럼’ 보내라는 뜻인가 보다. 하지만 사실 허공을 흐르는 세월을 고작 숫자 몇 개로 잡아둔 것이 시간 아니던가? 그렇다면 매년 반복되는 지루한 숫자 놀음에 굳이 집착할 이유도 없을 터. 허나 이에 반박이라도 하듯, 매년 2월 셋째 주 토요일 일본 혼슈 섬 남부에 위치한 오카야마현 사이다이지 칸노닌(Saidaiji Kannonin) 신사에서에서는 헐벗은 몸에 중요 부위만 가린 수많은 남성들이 가장 요란한 방법으로 오는 해를 환영하고 있다. 바로 풍년과 번영을 희망하는 일본의 전통 나체 축제(Naked Festival) “하다카마쓰리(Hadaka Matsuri)” 이야기다.
매해 겨울, 일본식 샅바 ‘훈도시(Fundoshi)’와 흰 양말 ‘타비(Tabi)’만을 신은 사내들이 일본의 한 신당 주위로 빼곡히 모여든다. 까만 머리에 흰 속살이 길게 늘어선 모습이 흡사 정어리 떼 같다. 어스름한 저녁이 찾아오면 무려 만 명에 달하는 사내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씐 듯 일제히 신사 주위를 뛰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로 몸을 씻어내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는데 이 정화 의식이 바로 본 행사의 막을 여는 ‘미소기(Misogi)’다.
이후 신사 앞으로 다시 남성들이 빼곡히 모여들고 밤이 더 깊어지면 신사 창가로 승려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부터가 “하다카마쓰리”의 본격적인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겠다. 신사 높은 곳에 선 승려는 사내들을 향해 나무 잔가지 100다발과 ‘싱기(Shingi)’라 불리는 20cm 남짓의 행운의 막대 두 개를 내던지는데, 특히 이 싱기를 잡기 위한 쟁탈전이 가히 볼만하다. 지옥에 모인 악령들이 음식을 두고 싸운다면 이런 괴랄한 모습일까? 싱기를 손에 넣기 위해 베이고, 멍드는 건 기본이요, 자칫 관절이 삐는 일까지 발생하니 말 그대로 전쟁통이 아닐 수 없다.
약 500년 전, 오카야마현에서 ‘하다카마쓰리’가 처음 시작됐을 때만 해도 싱기가 아닌 부적을 사용했으며 남성들 또한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너도나도 부적을 가지려 드는 탓에 부적이고 옷이고 남아나질 않으니 결국 지금의 하다카마쓰리 형태가 자리 잡게 된 것. 제아무리 의연한 사람일지라도 새해부터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물건에는 혹하기 마련이다.
매년 일본 전역에서 열리는 하다카마쓰리는 지역에 따라 그 시기도, 형태도 달리한다. 무려 1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나자와(Inazawa) 시의 하다카마쓰리(Hadaka Matsuri)는 거리를 질주하는 ‘신-오토코’라 불리는 남자에게 액운을 떠넘기는 것이 전통인데, 그를 쫓는 사람들로 벌어지는 혼돈의 현장 또한 볼만하다. 한편, 또 다른 지역에서는 새해 전야에 바닷물을 신사로 나르거나 차가운 물로 목욕재계를 하기도 한다고.
그렇다면 지켜보고만 있어도 제 마음이 시린 이 사나이들의 기행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불 밖이 특히 더 위험한 이 혹독한 겨울에 말이다. 필자는 진부하디 진부한 단어지만 ‘열정’이란 말로 하다카마쓰리에 조용한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들에게 있어 하다카마쓰리는 비록 일 년, 단 하루에 쏟아붓는 열정일 테지만 이번에도 해냈다는 자신감, 그 자신감이야말로 남은 한 해를 활기차게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지 않을까? 열정이 부르는 또 다른 열정이 존재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이미지 출처 | CNN, Rove, MatsuriTra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