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을 열어보자. 발바닥과 거의 하나가 된 아웃솔을 머금은 신발로 가득한 신발장을 목격한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시간의 훈장이 포도처럼 주렁주렁 달린 걸 마냥 보고 있자니, 자연을 향한 일말의 양심이 작동하게 된다. 이처럼 매년 200억 족이 넘는 신발이 생산되고 버려지는 실정에 친환경적인 신발을 향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썩는 신발이 필요하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올라니 스튜디오(Olaniyi Studio)가 썩는 신발을 선보였다. 카졸라(Kajola)라 불리는 이번 컬렉션은 점토와 화산재, 카카오 가루 등 천연재료를 사용한 9종의 신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전분과 식물 섬유를 결합하여 만든 아웃솔을 비롯해 부패 속도를 고려한 재료 선정은 스니커헤드들의 소유욕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식물이 부패하기 시작할 때 수축하는 모습에서 영감받았다는 그들의 말처럼 투박하지만 거친 질감 속 실험적인 실루엣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 기능적 오브제로부터 탈피하며 예술품으로서 고안되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올라니 스튜디오를 이끄는 유세프 아그보올라(Yussef Agbo-Ola)는 건축가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도 건축을 수학했다는 기억이 난다. 건축가들도 꽤 신발 디자인에 상당한 조예와 성취를 보이고 있는 중. 빠르면 2023년에는 상용화될 예정이라고 하니 꽉 찬 신발장에 빈자리 하나 마련하도록 하자.
이미지 출처 | Olaniyi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