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와 하이엔드의 경계에서 자신의 역량을 한껏 펼치고 있는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남성복 페어 피티 워모(Pitti Uomo)에 등장했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초강대국의 유산이 패션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 이와 함께 고샤 루브친스키는 꾸준히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고샤 루브친스키는 ‘포스트 소비에트’를 통해 크게 주목받았지만, 이번 피티 워모에서 보여주는 2017년의 컬렉션은 이탈리아 기반의 스포츠웨어를 통해 과거의 테라스 패션, 스포츠 캐주얼을 새로운 감각으로 변화시켰다.
영락없는 휠라(FILA), 카파(KAPPA), 세르지오 타키니(Sergio Tacchini)의 옷이지만, 군데군데 프린팅한 러시아어와 독특한 컬러는 확실하게 고샤 루브친스키의 느낌을 전한다. 이외 고샤의 메인 라인인 스웨트 셔츠, 더블 브레스트 재킷 등의 프로덕트는 여전히 그 정체성을 간직하며 반항한다. 여기에 피렌체 내부 오래된 담배공장을 런웨이로 설정해 냉전 이후 모스크바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겨온 점 역시 치밀하다. “나는 유행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쇼를 마친 고샤 루브친스키, 패션의 변방으로 생각되던 이 러시아 디자이너가 내던지는 한 마디는 그 누구보다 자신감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