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거리에서 수십 년간 패션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 빌 커닝햄(Bill Cunningham)이 지난 25일-현지시각-,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최근 뇌졸중 증세로 입원한 빌은 결국, 다시 카메라를 잡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뉴욕 스트리트 패션의 상징과도 같은 그는 아침이 밝으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진한 푸른빛 노동자 셔츠, 오래된 니콘 필름 카메라, 빈티지 자전거를 끌고 길거리로 나갔다. 패션계에 발 담근 모든 이들은 빌의 사진 속에서 트렌드를 예측하거나 새로운 질서를 발견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계 인물로 손꼽히는 미국 보그(Vouge) 편집장, 안나 윈투어(Anna Wintour) 마저 “우리는 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입는다”고 극찬할 정도니 그가 뉴욕, 아니 세계 패션 산업에 끼친 영향은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
빌 커닝햄은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와 일하는 40년 동안 패션 위크, 길거리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의 패션을 담아냈다. 그가 철저히 지킨 금욕주의는 아름다움을 좇는 평생의 작업을 위해 필히 수반될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을지도. 하루에도 여러 개의 패션 행사에 참여할 만큼 힘든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그는 와인 한 잔, 음식 한 조각 집는 법이 없었다. 패션 사진을 찍는 일이 자신에게는 일이 아니라 그저 즐거움이었다고. 철저한 프로의식, 평생을 검소하게 산 빌 커닝햄은 그야말로 패션에 삶을 바친 인물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3불짜리 커피와 소시지로 끼니를 해결했다. 2010년까지는 카네기 홀에 딸린 작은 스튜디오에서 살았다. 공용 욕실을 사용하고, 침대는 남루했다. 빌 커닝햄은 말한다. “돈이 가장 저렴하다. 진보, 그리고 자유가 최고로 값진 것이다.”
빌 커닝햄이 뉴욕 타임스에 기고하던 칼럼, ‘ON THE STREET’
빌의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한 건 시선을 사로잡는 패션일 뿐, 피사체가 얼마나 유명한 인물인지, 얼마나 권력을 가진 사람인지는 관계없었다. 누구보다 순수한 시각으로 패션을 바라본 빌 커닝햄은 자신의 확고한 철학을 하루도 빠짐없이 사진으로 증명해냈다. 그의 업적은 분명, 많은 패션 업계 종사자들에게 귀감이 될 터. 반세기가 넘도록 뉴욕 거리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탐미주의자 빌 커닝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Bill Cunningham New York”은 2010년 개봉되어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