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패션의 유행은 계속 돌고 있는 것이 아닐까?’에 대한 답이 확실해진 것 같다. 과거의 것에서 일부 요소를 차용하던 방식에서 이제는 조금 더 과감히 그것을 온전히 가져오려는 대담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게 또 ‘복각’이라는 단어로 더욱 의뭉스럽고 뻔뻔한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드디어 도래했다.
80, 90년대의 화려한 컬러와 특유의 실루엣까지 그 느낌을 완벽히 내기 위해서는 그 시대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브랜드에서 그 냄새를 쫓으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20~30년 전의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모순된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최근 폴로 스포츠(Polo Sport)와 함께 올드스쿨이라는 유행 아래 다시금 주목 받는 캐주얼 브랜드 노티카(Nautica)는 직접 자사의 빈티지 아카이브를 되짚으며, 노티카 빈티지 컬렉션(Nautica Vintage Collection)이라는 새로운 라인을 공개했다. 이는 숱한 브랜드의 노티카 아카이브 패러디를 무색하게 한다.
노티카는 첫 발매부터 노티카의 빈티지 중 가장 희귀한 열 가지 제품을 조사한 뒤 발매했다. 문득, 이 선별 과정이 궁금해지는데, 이베이(eBay)나 각종 빈티지 스토어를 뒤지지 않았을까. 일례로 마지막의 노티카 빈티지 재킷 이베이 판매가는 460달러 전후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들의 선별 과정이 그저 주먹구구로 이루어지지는 않은 듯하다.
이에 질세라 폴로(Polo) 역시 25년 전 발매했던 1992 스타디움 컬렉션(1992 Stadium Collection)을 다시 끄집어냈다. 폴로만을 입는 갱 로-라이프(Lo-Life)의 성배와도 같은 1992 스타디움 컬렉션은 어떤 폴로 제품이든 프리미엄을 붙여버리는 P-윙(P-Wing)로고와 1992가 큼지막이 새겨진 아이템을 주로 선보였다. 본디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제품으로 대담한 컬러 블록과 스포티한 그래픽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로-라이프뿐 아닌 90년대의 젊은이를 열광하게 하며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폴로는 지금에 유행과 맞물려 1992 스타디움 컬렉션에 등장했던 재킷, 스웨트셔츠와 같은 아이템으로 폴로의 골든 에라를 완벽히 재현함과 동시에 또 하나의 일을 벌였다. 그저 단순한 복각에 지나지 않은 이벤트를 넘어 1992년 당시 쉽게 적용할 수 없었던 피마 코튼(Pima Cotton)과 각종 기능성을 첨가하며, 1992 스타디움 컬렉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새롭게 등장한 폴로의 1992 스타디움 컬렉션은 미국 내 소수의 랄프 로렌(Ralph Lauren) 스토어와 지미 재즈(Jimmy Jazz), 보데가(Bodega)와 같은 선택된 셀렉트 스토어에서 판매할 예정으로 판매 방식 또한 미리 배포한 손목 밴드 추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미 수많은 브랜드가 도굴한 본인의 유산을 지금 와 꺼내는 노티카와 폴로, 타 브랜드의 재해석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많은 이가 기다리던 오리지널의 새로운 출범은 지금의 패션 시장에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다. 과연 앞으로 또 어떤 브랜드가 자사의 아카이브를 뒤적일지, 여러 캐주얼 브랜드의 행보를 기민하게 관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