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쉘 고베르(Michel Gaubert)를 빼놓고 패션쇼 음악을 논하기란 어렵다. 런웨이 사운드트랙을 찾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그는, 관객과 모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런웨이 음악을 선곡하는 사운드 디렉터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사운드를 디렉팅한 클라이언트 브랜드는 거의 모든 하이엔드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넬(Chanel), 디올(Dior), 로에베(Loewe),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펜디(Fendi), 끌로에(Chloé), 로다테(Rodarte), 루이비통(Louis Vuitton), 아크네 스튜디오 (Acne Studios), 사카이(Sacai), 발렌티노(Valentino) 등 다양한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들과 함께 런웨이 음악 작업을 해오고 있다.
패션쇼 음악 디렉터란 말 그대로, 패션쇼에 쓰이는 음악을 책임지는 사람을 말한다. 거대해지고 조직화된 오늘날 패션 산업계에서, 패션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패션쇼에서 아무 음악이나 틀 수는 없지 않은가. 음악 디렉터는 디자이너가 의도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적절한 음악으로 시너지 효과를 끌어내 패션쇼가 좀 더 ‘쇼’다운 형태를 갖추도록 돕는 필수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환상에 들어맞는 배경 음악을 선택하는 데에는 데이터베이스가 방대할수록 유리한 법이다. 프랑스 갈(France Gall)이 부르는 60년대 프렌치 팝이나 우든 쉽스(Wooden Shjips)와 같은 샌프란시스코발 사이키델릭 록부터 W.A.R 같은 맨체스터 힙합까지 모두 아우르는 그처럼 말이다. 미쉘은 패션쇼가 열리는 총 세 달을 제외한 일 년을 새 음반을 듣는 데 투자해왔다고 한다.
재즈와 세르주 갱스부르를 즐겨듣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미쉘 고베르. 화려한 록 스타가 되고 싶었지만 악기 연주에는 흥미가 없던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음악을 틀고 레코드 숍에 들일 레코드를 사러 다녔다. 평범한 음악 애호가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당시 샤넬과 펜디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다음 날 아침 열릴 샤넬 쇼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당신이 와주지 않겠느냐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레코드 숍을 드나들며 미쉘을 눈여겨본 칼이었다. 그리고 미쉘은 어릴 적부터 봐 온 패션 잡지를 통해 칼의 얼굴을 익혀온 터였다.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이가 패션의 황제라는 사실을 잘 알았던 미쉘 고베르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의 삶은 이내 달라졌다. 그 뒤 꾸준히 패션계에서 독보적으로 사운드 디렉터로서 입지를 다졌고, 패션 디자이너가 런웨이의 음악을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유튜브에서 그가 음악을 맡은 방대한 패션쇼 영상 아카이브들을 누비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를 것이다. 브랜드의 콘셉트에 따라 적재적소의 음악을 선보이는 그의 음악적 재능은 지금껏 그가 수십년간 패션쇼 음악의 거장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지금 아래의 링크에 있는 미셸의 믹스클라우드 계정에서 그가 사운드 디렉팅한 다양한 브랜드의 패션쇼의 음악을 감상해보자. 그의 방식대로, 그날 무드에 맞게 골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