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첫 번째 여성복 컬렉션 발표를 시작으로 패션계에 입문한 헬무트 랭(Helmut Lang), 패션에 관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미니멀리즘한 의상으로 전 세계 수많은 이를 매료하며 새로운 패션의 흐름을 선도한 그는 실용적인 도시 복장과 컬트 패션의 주류로 우뚝 선다. 전통적인 직물이 아닌 진보한 테크웨어 소재를 사용하거나 과감한 레이어링으로 그 시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의류를 제작했던 헬무트 랭의 의외성은 비단 옷뿐만 아닌 그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드러났다.
1998년 9월, 인터넷을 통해 패션쇼를 선보이는 모험을 감행한 헬무트 랭은 세계 패션 마켓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강력한 파급효과를 낳았다. 90년대 패션계를 주름잡은 그는 99년 프라다(Prada) 그룹에 헬무트 랭의 51% 지분을 매각, 이후 2004년 나머지 지분마저 매각하며, 패션 시장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허나, 그의 도전적인 정신은 여전히 이어지며, 헬무트 랭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헬무트 랭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 이라면, 어제부터 게시되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이미지를 확인했을 것. 인물사진과 함께 나이와 직업, 좌우명, 관심사 등을 나타낸 프로필 사진은 보는 이에게 혼란을 주기 충분하다.
90년대 데이트 쇼의 이미지를 차용한 이번 헬무트 랭의 캠페인은 전 세계인을 헬무트 랭이라는 브랜드 커뮤니티에 초대한다. 성별, 나이, 인종 등 다양한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결과적으로는 그 개개인의 삶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는, 지금껏 어떤 패션 브랜드도 하지 않았던 실험적인 캠페인이다.
더불어 헬무트 랭은 게시물 아래 love@helmutlang.com이라는 이메일 주소를 적어놓음으로 그들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창구까지 마련해두었다. 혹, 게시된 열두 명의 주인공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위 주소로 연락을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은 디자이너가 아닌 예술가로 제2의 삶을 사는 헬무트 랭이지만, 자신이 펼쳤던 흥미로운 실험을 이어나가는 패션 브랜드 헬무트 랭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