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박찬욱의 옴니버스 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Never Ending Peace And Love)”를 아는가. 아니, 영화라기보다는 단편 다큐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중의 인권 감수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획한 인권 영화 프로젝트 “여섯 개의 시선” 중 마지막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1993년, 네팔 노동자 찬드라 쿠마리 구룽(Chandra Kumari Gurung)은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자로 오해받아 6년 4개월 동안이나 정신병원에 갇혔다. 섬유공장의 노동자였던 그녀가 지갑을 잃어버린 걸 모른 채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은 뒤, 값을 지불하지 못하자 곧장 무전취식 행려병자로 오해받아 경찰에 끌려간 것. 이후 서툰 한국어로 상황을 설명했지만, 경찰은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바로 보내버리고 말았다. 병원 안에서도 여권과 비자가 있다고 항변했으나 그녀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고.
어찌어찌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그녀는 ‘선미야’라는 정체를 모를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강제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까지 받았다. 물론 병원에서도 그녀가 외국인 노동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 말을 해보게 시켰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는 것이 병원 측의 주장. 하지만 다른 언어인 벵골어를 사용하는 방글라데시 국적의 노동자를 불러 대화를 시도했기 때문에, 찬드라는 당연히 어떤 말도 딱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줄기 희망마저 사라지고, 그 이후 더 이상 누구도 찬드라에 대해 도움을 주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세월이 흐르고, 어느덧 6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다. 그 쯤 운명의 장난일까, 마지막 재활병동에서 만난 이화여대병원 신경정신과 이근후 교수와 네팔인 공동체 총무 케이피 시토우라가 우연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믿어주면서 이야기의 실마리는 풀리게 된다. 둘의 도움으로 찬드라는 한국어를 차차 배우게 되고, 네팔 공동체에 소식이 닿게 되며 그녀는 드디어 2000년 3월 정신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미 찬드라는 네팔에서 행방불명으로 기정사실로 되어있었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지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소송 끝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받아낸 4,660만 원의 소송금은 네팔 현지에서 마오주의자 반군과 사기꾼들이 계속해서 접촉해 갈취했으며, 동네에서는 어머니를 죽인 불효녀로 2차 정신적 가해까지 당하고 만다. 결국 그녀는 상처에 못 이겨 스스로 네팔에서도 잠적을 감추고 만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흑백 화면으로 재현한 찬드라의 수난기에서 시작해, 네팔로 돌아온 찬드라를 직접 찍은 컬러 영상으로 점점 변화된다. 흑백처럼 어둡고 깜깜했던 한국의 시선과 상황이 조금은 더 밝고 개방적으로 바뀌었음을 원하는 박찬욱의 은연적인 암시 아닐까.
앞으로 우리는 ‘범주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범주화 자체는 배경이 될 수는 있으나, 개인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경찰, 간호사, 의사는 정신병자라는 확신 이후 오히려 편안한 모습을 보인다. ‘정신병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라는 무의식은 찬드라가 외국인 노동자일 수도 있겠다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은 어떨까.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아니면 한국 사회의 발전 수준을 생각했을 때 이와 같은 일이 이제는 빈번하게 일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찬드라 사건의 내면적인 원인이 사라지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단편적인 모습으로 개인을 ‘범주화’ 시키는 문화, 나아가 그 범주화는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고 연속적인 차별로 태어난다. 자신과 다르다면 틀렸다고 표현해 버리는 일률적인 시선은 아직 한국 사회에 만연하다.
냉정히 1993년 대한민국에 비해 2024년 대한민국은 어떤 드넓은 눈을 갖게 되었을까?
이미지 출처 | 왓챠피디아, NepUNITY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