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과 디깅 문화는 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예술 분야를 향한 도착에 가까운 집착, 스노비즘으로 여겨지는 문화 점유의 시도, 방대한 양의 영화 파일 혹은 음원을 소장하고자 하는 소유욕.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희소성에 대한 강박이 아닐까? 그 누구도 듣지 못한 음악에 대한 기이한 집착. 누구도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한 성애적인 열망 말이다.
10년 주기로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를 두고 세계 각국의 감독, 평론가들이 투표를 진행하는 영국 영화 협회 소속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and Sound)’는 최근 ‘숨겨진 보석 101편: 당신이 본 적 없는 최고의 영화들 (101 hidden gems: the greatest films you’ve never seen)’ 리스트를 공개했다. 101명의 영화감독, 평론가, 철학자까지 참여한 리스트는 거장의 숨겨진 작품, 디지털 복원이 되지 못한 필름, 제3세계 영화, 컬트 영화 등 일반 관객이 접할 수 없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참여자 명단과 그들의 선택을 살펴보자면, 철학계의 이단아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크지슈토프 키예슬로프스키(Krzysztof Kieślowski)의 “우연한 기회(Blind Chance)”를 선정했고, 태국의 거장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은 누구도 접하지 않았을 미국의 실험영화감독 브루스 베일리(Bruce Baillie)의 “퀵 빌리(Quick Billy)”를 선정했다. 이외에도 “언컷 젬스(Uncut Gems)”로 잘 알려진 감독 겸 배우 베니 샤프디(Benny Safdie), 루마니아의 괴짜 감독 라두 주데(Radu Jude), 페미니즘 영화 이론가로 잘 알려진 로라 멀비(Laura Mulvey) 등이 이번 리스트에 참여했다.
과연 당신은 이 리스트에 있는 영화들 중 몇 편을 보았는가? 당장 이 ‘희귀한 영화’들을 볼 기회는 없겠지만, 리스트 속 맘에 드는 영화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특별전이 개최되기를 기다려보자. 혹은 직접 영상도서관을 방문해 발품을 파는 것도 좋을 방법일 것이다. 전체 리스트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길.
Sight & Sound 101 Hidden Gems 사이트
이미지 출처 │Sight & S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