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최남단에 있는 오키나와현은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에 의해 점령된 이후 1972년에 일본으로 반환되기 전까지 미국의 통치를 받았다. 반환 이후에도 오키나와 주민이 희망한 미군 기지 철수와 오키나와 외부로의 이전 의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작년 일본 정부가 현 내 헤노코 해안을 메워 신규 미군 비행 기지를 제공할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 사이 갈등의 역사는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헤노코 기지를 둘러싼 현민의 반대 시위가 과열되던 한창, 일본의 한 아티스트 듀오가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하나의 온전한 도넛을 만들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며 “완벽한 도넛 만들기(Making a Perfect Donut)”라는 프로젝트에 임했다.
나부치(ナブチ)와 혼마 에리(ホンマエリ)로 구성된 큔-쵸메(キュンチョメ, KYUN-CHOME)는 2011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혼성 아티스트 유닛으로, 사회적 분열 또는 갈등의 현장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며 해당 이슈에 대한 유사 다큐멘터리와 비디오 설치 작업물을 제작하고 있다. “완벽한 도넛 만들기”에서 큔-쵸메의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미국의 보편적인 도넛과 동그란 모양을 지닌 오키나와의 전통 도넛이자 슈 사타안다기(サーターアンダギー)를 합치면 하나의 ‘완벽한’ 도넛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큔-쵸메의 계획은 미군 기지를 둘러싼 철조망을 기준으로 기지 안에서 도넛을 내밀고 기지 밖에서 사타안다기를 내밀어 합침으로써 구멍 없이 꽉 찬 도넛을 만드는 것이다.
이 엉뚱해 보이는 작전을 이행하기 위해 큔-쵸메는 오키나와의 여러 방면을 상징하는 시민들과 언뜻 도넛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도넛과 사타안다기를 완벽한 도넛으로 합치려는 작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미소를 짓고 즐거워하거나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며 진심으로 걱정을 건네는 등 모든 인터뷰이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데, 이후 각 인터뷰이들이 오키나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펼쳐놓는 각종 고민과 반성에서 오키나와 거주민의 집단적 기억과 아픔이 느껴진다. 어느 술집 주인이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기 전 술집에서 회포를 풀던 미군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던 때를 회고하는 반면에, 미군 기지와 맺은 건설 계약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탓에 미군 주둔을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동물원 관리자는 자신의 모순적인 상황을 해명하듯 설명한다. 오래전부터 미국의 지배와 군사기지 강제 건설, 일본 본토와 정부의 차별 등 가슴 아픈 역사를 겪은 만큼 오키나와의 거주민들은 명백한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그와 반대되는 이익 관계를 지닐 수도 있다는 면에서 오키나와는 필연적으로 비극적인 모순성을 지닌 것이다.
각종 인터뷰 클립으로 구성된 1부를 통해 미군 기지 이전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알 수 있었다면, 2부에서 큔-쵸메는 본격적으로 도넛을 합체하려 직접 나선다. 한 손에는 도넛, 다른 손에는 사타안다기를 들고 기지 앞을 찾아간 나부치는 비로소 완벽한 도넛을 만드는 데 성공하려나 싶지만 금방 기지 앞 시위대에 대응하던 경찰에 의해 끌려간다. 사지가 사로잡혀 발버둥 치면서도 “아메리칸 도넛과 오키나와 도넛을 합치면 완벽한 도넛이 탄생하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를 외치며 엄청난 집념을 보여주는 나부치의 속수무책인 모습은 실소를 유발하기도 한다. 과연 큔-쵸메는 그 어느 한쪽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두 개의 도넛을 하나의 완벽한 도넛으로 합칠 수 있을까. 현재로서 명백한 해결책이나 결론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함부로 말을 얹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독립적인 과거와 역사적인 서사를 지닌 오키나와의 현재 상황을 도넛에 비유하여 유쾌하고 친근하게 풀어낸 큔-쵸메에 대해서는 아래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서 더 깊이 알아볼 수 있다. 현재 서울 홍제동에 위치한 미학관에서 진행 중인 큔-쵸메의 초청 전시 ‘지금, 살아있는 모든 것이 숨 쉬고 있다’에서 동명의 설치 작품과 각종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꼭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 KYUN-C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