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잊을 순 없는 귀한 졸작, David Lynch의 “DUNE(1984)”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의 “듄: 파트 2(Dune: Part Two)”가 국내 개봉 열흘째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전편을 뛰어넘는 흥행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빌뇌브 감독과 더불어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인 배우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와 레베카 퍼거슨(Rebecca Ferguson), 2편에 새롭게 등장하여 예사롭지 않은 존재감을 선보인 오스틴 버틀러(Austin Butler) 등에게 “듄”은 최고의 걸작이라 칭해도 부족할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지우고 싶은 기억’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바로 초현실적인 상상력과 독보적인 기이함으로 수많은 시네필과 컬트 팬에게 사랑받는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다.

7~80년대 “스타워즈(Star Wars)” 영화 시리즈의 눈부신 성공과 함께 스페이스 오페라의 인기가 고공 행진하며 할리우드는 “듄”의 영상화에 착수했고 당시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으로 흥행과 비평을 모두 잡은 린치에게 메가폰을 쥐여줬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하지만 린치가 각종 인터뷰와 문서에서 “듄”을 연출했던 경험이 살면서 가장 슬픈 일이었음을 거듭해서 강조한 것과는 반대로, 사이언스 픽션 팬과 소수의 린치 애호가들은 1984년 버전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이며 해당 작품을 컬트 클래식으로 추종해 왔다. 보기 좋은 빛깔의 신작을 보는 것도 좋지만 어딘가 허술하고 어설프다 못해 괴이한 망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은가. “듄 2”를 보기 위해 극장에 달려가기 전, 린치의 “듄”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이룰란 공주의 오프닝 독백.

우선 1984년 작은 관객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원작에 충실한 방향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우주 황제 샤담 4세의 딸 이룰란 공주의 매우 친절한 설명부터(거의 2분에 달한다)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주요 인물의 내적 독백과 전후 상황과 전체적인 맥락을 모두 짚고 넘어가는 듯한 대사를 통해 “듄”의 방대한 세계관을 최대한 짧은 러닝타임 안에 포장하려는 린치의 노력이 보인달까. 드니 빌뇌브 “듄”의 탁월한 선택은 방대한 세계관을 두 편에 나눠 차근차근 전달했다는 사실.

한편 린치의 “듄”은 등장인물의 반복되는 내적 독백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인물의 독백이 발화되는 동안 인물이 허공을 공허하게 바라보며 쓸데없이 시간만 잡아먹어서 관객의 몰입도를 깼다는 것이 이유. 실제로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Paul Atreides)를 연기하는 카일 매클라클런(Kyle MacLachlan)이 멍 때리듯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와중 ‘내가 퀴사츠 해더락이라니’와 같은 생각을 곱씹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슬슬 영화에 질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 있다.

보통 이런 표정으로 위와 같은 내적 독백을 하곤 한다.

허나 내적 독백이나 친절한 내레이션 모두 원작의 설정에 충실하고 폴의 특별한 지각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용된 장치들이기 때문에, 다소 긴 사족으로 인해 짜증을 느낀다기보다는 참고 넘길 수 있다. 심지어 원작 소설의 작가인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는 책에서 직접 가져온 대사와 설정 덕분에 자신이 집필한 다이얼로그를 영화 전반에 걸쳐 들을 수 있었다고 호평하며 원작의 팬이라면 이러한 점을 즐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린치의 “듄”만이 지닌 독보적인 특징은 예상치 못한 록스타들의 등장이다. 물론 빌뇌브의 “듄”도 샬라메뿐만 아니라 젠데이야(Zendaya)나 데이브 바티스타(Dave Bautista) 등 뛰어난 스타성을 뽐내는 캐스트진을 자랑하지만 1984년작은 80년대 전설적인 아티스트와 록 스타의 예술적 비전이 담겨있다는 면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의 록 밴드 토토(Toto)는 80년대 록 음악을 상징하는 각종 명곡이 담긴 4집을 발표한 직후 “듄”의 사운드트랙 작곡에 임했는데, 이는 토토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영화 사운드트랙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토토의 음악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마도 폴이 샤이 훌루드, 즉 모래벌레를 불러내어 탈 수 있는 것을 증명하는 장면이 아닐까. 아라키스(Arrakis) 행성의 사막 민족인 프레멘(Fremen)의 신임을 얻고 통과 의례에 참여하기 위해 사막에 등장한 폴은 극적으로 벌레를 올라타는데, 비로소 모래벌레를 조종하기 시작하는 순간 웅장한 코러스에 강렬한 일렉트로닉 기타 리프가 깔리며 어딘가 뻔하지만 그럼에도 장엄한 느낌이 조성된다.

토토가 전담한 사운드트랙에서 유일하게 타 아티스트의 손길이 느껴지는 트랙 “Prophecy Theme”은 바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작곡한 것으로, 마치 아라키스에서 직접 모래바람을 느끼는 듯한 절묘한 앰비언트 사운드가 뛰어난 트랙이다. 마지막으로 예상치 못한 록 스타의 등장은 바로 페이드 로타(Feyd-Rautha) 역을 맡은 싱어송라이터 스팅(Sting)이다. 오직 린치만을 위해서 “듄”에 출연했다고 밝혔던 스팅은 한 장면에서는 난데없이 거의 전신 나체로 등장하는 등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인물 묘사에 있어서도 빌뇌브의 “듄”과 구별될 수 있는데, 린치는 원작에서 묘사한 캐릭터성을 과장된 외형 표현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것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서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대적하는 관계인 하코넨(Harkonnen) 가문의 수장인 하코넨 남작은 빌뇌브 버전보다 훨씬 표면적으로 기괴한 외형으로 나타난다. 비만일 뿐만 아니라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어 얼굴이 종양으로 뒤덮여있고 심지어 주치의가 곁에서 수시로 종양을 뽑아내는 장면도 연출된다. 또, 붉은 머리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원작 소설의 묘사 그대로 하코넨 가문의 전원이 붉은 곱슬머리로 그려졌다는 것도 하나의 차이점이다. 하코넨 남작을 비롯하여 린치의 전반적인 캐릭터와 배경 모두 원색적이고 과감한 색채를 기반으로 보다 키치하게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혐오스러운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외형이다.

빌뇌브 버전에서는 아예 나타나지 않는 캐릭터도 있다. 바로 길드 내비게이터(Guild Navigator)로, 수년간 향료를 흡수해 온 탓에 돌연변이를 겪은 초인적인 존재들이다. 마치 블로브피시처럼 큰 머리와 늘어진 몸으로 나타나는데, 우주 항해 경로를 설정하고 행성 간 이동을 가능케 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을 말 그대로 접을 수 있는 권능한 자들을 아래와 같이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허버트 작가는 린치의 버전에서 나타난 길드 내비게이터의 설정을 나중에 소설에 반영하기도 할 만큼 영화 속 묘사를 선호했다고 한다. 

영화 속 길드 내비게이터의 모습.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차이점은 당연하기도 한 부실한 시각 효과이다. 아무리 당시의 최신 기술을 동원했다고 생각해도 불가피한 시대적 및 기술적 한계가 포착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듄” 세계관에서 방어막 역할을 하는 장비인 홀츠만 실드(Holtzman Shield)를 사용하는 결투를 비교해 보면 1984년 작품 속 장면은 마치 마인크래프트 속 인물들이 허공을 찌르는 것만 같아서 웃음이 나온다. 눈에 띄는 그린 스크린 사용과 조악한 시각 효과로 인해 우주 항해 및 사막 결전 장면에서는 몰입도가 확연히 떨어지지만, 화려한 세트장과 의상 등 전반적인 아트 디렉션이 탁월했던 덕분에 모종의 영상미를 느끼게 된다. 빌뇌브의 “듄”에서 돋보이는 브루탈리즘(brutalism)적인 감수성과 베이지 위주의 색상 팔레트가 살짝 차갑고 삭막하게 느껴졌다면, 린치의 “듄”에서 예상치 못한 웅장함과 따뜻함을 마주할 수도 있겠다. 

1984년과 2021년 작품의 결투 장면을 비교한 영상.

“듄” 촬영 현장을 방문한 프랭크 허버트(우)와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린치는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듄”을 유일하게 실패한 작품으로 꼽고 본 버전의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거하는 등 “듄”과 완전히 ‘손절’을 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감독마저 이토록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작품을 재조명할 필요는 무엇일까? 탁월한 사운드트랙과 캐스팅 등 ‘제대로’ 작동된 측면보다도 컬트 팬과 애호가를 이끄는 것은 어설픈 액션 장면과 다소 과장된 묘사 기법, 황당하고 비약적인 전개가 아닐까 싶다. 그 모든 결점은 제쳐두고, 짧은 러닝타임을 고수하라는 제작사의 강압에 고통받으면서도 역사가 수만 년에 이르는 복잡하고 방대한 “듄”의 세계관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노력한 것에 손뼉을 쳐주고 싶을 뿐이다. 추가로, 빌뇌브 버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몹시 귀여운 퍼그 강아지가 등장하니 이 또한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이미지 출처 | IMDb,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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