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를 포함, 모든 창작자에게 내 작품을 알아주는 한 사람은 땅이 되기도, 빛이 되기도 한다. 2021년 발매된 후지모토 타츠키(Tatsuki Fujimoto)의 단편 만화 “룩 백(look back)”은 서로에게 세상이 되어준 두 그림쟁이 소녀 후지노와 쿄모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교지에 개그 만화를 싣던 후지노는 주변의 칭찬에 우쭐하지만, 집에 숨어 등교하지 않는 쿄모토의 세밀한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후지노는 무진 노력을 하지만 한계와 열등감을 느끼고 만화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졸업증서를 전해주러 쿄모토의 집을 찾아간 후지노. 조용히 증서를 놓고 떠나는 후지노를 쿄모토가 상기된 얼굴로 쫓아 나온다. 그녀의 개그 만화를 선망하던 쿄모토는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눈을 반짝이며 존경심을 드러내고 둘은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넘어지면 일으키고 멀어지면 슬퍼하며 그들을 찢어놓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늘 함께한다.
후지모토 타츠키가 국내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인 “체인소 맨(Chainsaw Man)”이 다크 히어로물인 점과 영상화된 액션의 애니메이팅, 팝과 메탈을 오가는 강렬한 엔딩곡을 생각하면 “룩 백”은 한참 다른 작품이다. 하지만 펼쳐진 두 페이지 속 프레임의 대비와 시선의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속도감, 몰입감은 여전했다.
“룩 백”은 적은 대사, 배경의 변화와 밀도 차이로 이끌어내는 세심한 감정선이 일품이었는데 오시야마 키요타카(Kiyotaka Oshiyama) 감독이 이 감정의 흐름을 애니메이션에 고스란히 가져왔다는 평이 전해진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방법과는 달리 선을 살린 배경 묘사, 간혹 그리고 지우는 과정의 노이즈를 남기는 방식 등 덜 다듬어진 느낌을 낸 작화는 화려한 것보다 진하게 향수를 자극한다. 그 투박함이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순수한 시절의 묘사와 맞아떨어질뿐더러 우리가 어린 시절 끄적이던 그림을 설풋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의 영화 사이트 에이가닷컴(eiga.com)에 따르면 개봉 2주 차인 현재 국내 개봉작 1위를 기록하며 호평과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순위권의 다른 영화 대부분이 300개 안팎의 개봉관을 갖는 데 비해 “룩 백”은 129개 관으로 매우 적은 스크린임에도 굉장한 성적을 올렸다. 기성 애니메이션의 극장판 작품이 아닌 단편 원작의 60분 남짓한 영화라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국내에는 올해 하반기 중 메가박스 중앙을 통해 수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을 기다리며 원작을 만나보거나, 이미 봤다면 OST나 굿즈로 기대감을 달래 보는 것도 좋겠다. 음악은 네오 클래시컬 뮤지션으로 일본 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하루카 나카무라가 맡았으며 굿즈는 8월 26일까지 예약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