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디자인을 넘어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들을 기획, 제작하는 브랜드 87MM이 창립 13주년을 기념하여 아티스트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장편 다큐멘터리 작품 “WATERCOLORS”를 공개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상영작으로 공식 초청된 이 작품은 저마다의 배경과 작업 방식을 가진 세 팀의 아티스트, 피그프로그(pigfrog)와 신세하(Xin Seha) 그리고 텐거(Tengger)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형식의 비디오다.
해당 작품을 기획한 원즈 서비스(ONES SERVICE)는 87MM이 전개하는 새로운 문화 프로젝트로, ‘필름’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브랜드가 집중하는 ‘일상’이라는 가치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어서 이 기획의 결실을 보게 해 준 프로덕션의 소개를 안 할 수 없다. “WATERCOLORS”를 제작한 ‘새가지(Segaji)’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션으로 뮤직비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영상 기획물을 전문으로 제작하고 있다. ‘일상’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개성 있게 표현해 낸다는 점에서 87MM과 궤를 같이한다.
세 개의 독립된 영상과 세 명의 감독은 촬영 방법과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차별을 두며 아티스트 각각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pig&frog’는 인디 싱어송라이터 오존(O3ohn)과 주니(JOONIE)의 협업 프로젝트 피그프로그의 뮤직비디오 제작기를 다루고 있다. 이 에피소드는 뮤직비디오 제작을 위해 카메라를 든 두 뮤지션의 시점과 결과물 또한 교차로 보여주며 뒤에 이어질 다른 에피소드와 다르게 좀 더 자전적인 성격을 내비친다.
또, 영상 중간마다 등장하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시각화해 주거나 사건의 이해를 돕는 등 영상 전반의 지루함을 없애며 유연한 전개를 만든다. 설익은 아이디어 구상 단계부터 시간이 지나 하나하나 단단해져 가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은 이들의 여정을 사실적으로, 때로는 낭만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두 번째 에피소드 ‘YOUNG GENIUS’는 뮤지션 신세하의 데뷔, 정규 앨범 발매 등 커리어 전반을 훑으며 변화하고 성장하는 그의 모습을 주변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해당 에피소드에는 신세하가 직접 출연하진 않지만, 그의 음악 활동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온 동료 뮤지션 기린(KIRIN), 수민(SUMIN), 김아일(Qim Isle), 김한주 등이 출연하며 그의 음악에 관한 주관적인 감상과 작업 비하인드를 이야기한다.
신세하가 뮤직비디오의 연출 방식이나, 분위기상 가장 큰 변화를 시도한 트랙 ‘사이’에 대한 감상평이 동료 뮤지션마다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감독은 주변인들의 이야기만으로 신세하라는 뮤지션의 음악적 성격과 지향점을 뚜렷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해 냈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거듭해 온 신세하의 커리어를 짧은 분량 안에 축약하여 보여주어 그의 변화와 성장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는 에피소드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진 않지만, 다큐멘터리를 본 후 최근 발매한 신세하의 새 앨범 [CN X] 또한 주목해 보면 좋겠다.
마지막 에피소드 ‘The Farthest Gate’는 뮤지션 있다(Itta)와 마르키도(Marqido),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라아이(RAAI)가 포함된 가족 그룹 텐거의 투어 과정을 담아내며 그들의 결성 과정과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 등을 세세하게 기록해내고 있다. 감독은 뮤지션으로서의 모습과 가족으로서의 모습을 번갈아 비추며 이들의 유대가 음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투어를 돌며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잘 극복해 나가는 이들과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또는 좀 더 성숙한 뮤지션으로 성장하는 라아이의 변화를 함축하여 담아낸 기록물이기도 하다.
이 장편 다큐멘터리는 무대 위, 또는 비디오 속에 등장하는 뮤지션의 번드레한 모습이 아니라 고민하고, 실패하고 때로는 희열 하기도 하는 이들의 평범한 모습을 조명했다는 점만으로 진귀한 가치를 지닌다. 문화 예술인들과 소통하며 일상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87MM. “WATERCOLORS”는 지난 16일 그들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세 시선으로 분할된 사소하고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