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쇼미더머니’와 ‘마이크 스웨거’ 등 각종 매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MBA 크루 소속의 EK가 새로운 EP [W.O.L.F]를 발표했다. 프로듀서진에는 도베르만(Doberman), 클라우디비츠(Cloudy Beats), 닐(Neal) 등이 참여했고, 아트워크는 삼한 레트로 미디어(Samhan Retro Media)의 디자이너 김용식이 맡았다.
EK는 힙합에서 으레 자주 나타나는 요소인 자수성가, 크루 단위로서의 성공, 의리, 브라가도시오 등을 탁월하게 드러낼 줄 아는 래퍼다. 물론 힙합에서 이는 꽤 보편적인 요소지만,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림이라는 자신의 로컬리티를 가사에서 꾸준히 언급하고 작품에 지역의 이미지를 덧씌움으로써 서사의 맛을 잘 더하는 래퍼 중 한 명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본작 역시 이러한 정석적인 문법에 충실하다.
첫 곡 “WOLF”에서 EK는 라틴풍 기타 기반 비트 위에서 “너네가 엮어대는 걔네들/뭐 내 먹잇감은 아닌 것 같아”라며 다른 래퍼들과의 차별성을 여유롭게 말한다. 앨범 소개에 늑대는 약한 동물을 사냥하지 않는다는 습성을 밝혔듯 첫 곡에서부터 주제를 제시한 것. 이러한 이미지는 다음 곡인 “HOOD SHIT”의 훅인 “It’s the hood shit/노가다를 했었지/일용직이 레시피”에서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강화한다. 여기에 두 번째 벌스 디보의 랩은 독특한 플로우로 청각적 재미를 더한다.
세 번째 트랙 “ICE”에서 EK는 프로듀서 도베르만의 피아노 기반 미니멀한 비트 위에서 성공을 향한 열망과 정석적인 브라가도시오를 보여준다. 가히 본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네 번째 트랙 “직진”은 클라우디비츠의 플루트 기반 인스트루멘탈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멋에 대한 간단하면서도 중독적인 훅과 멜로디 랩을 선보였다. 이 트랙의 화룡점정은 역시 인터넷 시대의 근두운을 타고 나타난 풍운아, 한국 힙합 히어로 ‘딱딱좌’ 먼치맨의 패기로운 등장일 것이다. 그는 “EK고 나발이고 주인공은 먼치” 등의 구절과 애드립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브로콜리”는 EK가 다른 톤으로 랩을 하며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직진” 뒤에 배치된 인스트루멘탈은 아쉽게도 흐름을 깨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다행히 “피곤해”와 “흘러”에서는 다시 이전의 흐름을 이어가는데, 그의 힘든 정신 상태를 일관적으로 잘 드러냈고, 이는 마지막 트랙 “Don’t Worry”까지 이어진다. 그룹 히피는 집시였다의 프로듀서 제이플로우(JFlow)가 만든 이 붐뱁 트랙에서 그는 인생에서 과정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설파함과 동시에 범불안증을 겪었던 스스로를 청자에게 투영함으로써 우리의 불안감을 보듬는다. “행복할 때 약속하지 말 것, 하고픈 걸 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훅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Don’t Worry”를 제외하고는 대개 근 2~3년 사이에 발매된 미국의 트렌드를 적절히 받아들였고, 이는 EK가 펼쳐내는 정석적이고 일관적인 서사를 충실히 구현하는 데 부족함은 없다. 그러나 EK 자신뿐만 아니라 MBA 크루를 모두 관통할 수 있는 ‘WOLF’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전면에 들고 나온 것에 비하면, 앨범의 구성 속에서 그 이미지가 강하게 응집되지 못한다. 하나의 콘셉트는 후반부로 갈수록 흐려지며, 서사를 전환하는 부분에서도 충분한 트랙이나 시간을 할애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비록 제목이 주는 무게감과 비교했을 때 볼륨이 적고 구성이나 흐름에서 약점을 보이긴 하지만, EK라는 래퍼의 생각을 준수한 플로우와 솔직한 단어 선택으로 온전히 담아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고민과 고난 속에서도 끝내 강인함을 잃지 않은 우두머리 늑대의 진솔함을 보고 싶다면 감상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