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독일 전자음악 레이블 ‘기글링(Giegling)’ 소속 프로듀서로 활동한 트라움프린츠(Traumprinz). 그는 또한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며 디제이 메타트론(DJ Metatron), 프린스 오브 덴마크(Prince of Denmark) 등 다양한 이명의 프로젝트로 활동했다. 레이블이 추구한 멜랑콜리한 로파이(Lo-Fi) 하우스, 테크노를 제작했던 한편으로는 종교 혹은 희망 등을 주제 삼아 고결한 브레이크 비트도 만들어냈다. 그 음악 스타일은 모비(Moby)와 흡사하기도.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트라움프린츠의 모습은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인 2017년 기글링의 리더 콘스탄틴(Konstantin)이 여성 디제이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자 돌연 레이블을 탈퇴했다.
트라움프린츠를 애타게 기다렸을 팬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진 것은 2018년 부활절 무렵, 그가 ‘allpossibleworlds’라는 새 독립 레이블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또한 동시에 두 장의 앨범이 발매됐는데, 그게 바로 장안의 화제작이었던 디제이 힐러(DJ Healer)의 [Nothing 2 Loose] 그리고 파멸의 총리(Prime Minister of Doom)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공개된 덥테크노 앨범 [Mudshadow Propaganda].
활동명은 바뀌었으나 음악 스타일은 여전했다. 브로큰 비트 기반에 음울한 엠비언트, 간질거리는 ASMR, 유명 팝스타의 육성 등을 샘플로 사용한 힐러의 음악은 기글링 릴리즈 EP [All The Things], [2 The Sky]가 연상됐다. [Mudshadow Propaganda] 역시 프린스 오브 덴마크의 덥테크노 스타일을 계승한 듯 보였으니. 또한 2019년엔 골든 베이비(Golden Baby)라는 이름과 함께 과거 미공개 곡을 바이닐로 발매, 수요가 높아 가격이 폭등한 [Nothing 2 Loose]를 1년 만에 재발매했다. 이렇듯 연이은 LP 발매 행보에 그의 팬들 역시 환호를 보내기도.
따라서 부활절 무렵의 트라움프린츠는 성탄절의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 적어도 그의 추종자들에겐 말이다. 허나 올해 부활절은 엠비언트 믹스 세 개만을 사운드클라우드에 릴리즈하는 데 그치며,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9월 11일, 비교적 잠잠했던 2020년 부활절의 행보가 오늘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음이 밝혀졌는데, 바로 트라움프린츠가 곧 두 장의 EP와 한 장의 LP를 공개할 예정으로 밝혀졌기 때문. 트라움프린츠는 allpossibleworlds 레이블 구독자들에게 “go shopping”이란 간결한 내용의 메일을 발신했고, 구독자들이 해당 메일을 일제히 확인하며 앨범 발매 소식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미디어 매체 등에 빠르게 퍼져갔다.
무려 2년 만에 새 앨범. 이번에는 판타지(The Phantasy)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앞세워 두 장의 EP [Ibiza], [Ibiza Pt. II]를, 그리고 과거 기글링 활동명 중 하나인 디제이 메타트론으로 앨범 [Loops of Infinity (A Rave Loveletter)]를 공개할 예정. 또 세 앨범, 총 여덟 장의 바이닐이 준비됐다니 역대급 풍성한 구성이다.
구성만큼이나 어떤 음악이 담길 것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을 이들을 위해 트라움프린츠는 두 가지 힌트를 준비했는데, 하나는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1분의 음원 “sell out”. 상단에 첨부된 사운드클라우드 음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스터에그로 allpossibleworlds 웹사이트 메인에서 Y/N 둘 중 N을 입력하면 EIVISSA라는 표지판과 함께 등장하는 프리뷰다.
과거 엠비언트, 덥테크노 등의 미니멀을 추구한 트라움프린츠. 웹사이트 이스터에그 프리뷰를 미리 확인한바, 새 페르소나 판타지는 그의 트랜스 프로젝트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플럭 신스(pluck synth)로 이비자(Ibiza)섬 클럽에서 흐를 법한 EDM을 레퍼런스로 제작한 듯 보이는데, 그 소리는 흡사 캐나다의 유명 EDM 프로듀서 데드마우스(Deadmau5)를 직접적으로 연상할 수 있을 정도다. 반면,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한 “sell out”은 목가적이며, 잔잔한 엠비언트 스타일. 대비되는 두 가지의 프리뷰 덕분에 이번 발매 앨범들에 대한 의아함과 궁금증이 증폭되는 중이다.
혹시 앨범 구매 의사가 있다면 서두르는 게 좋겠다. 그의 앨범은 애초에 프레스 수량이 적으며, 찾는 이들은 많기 때문에 중고 가격이 빠르게 급등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