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데아로의 회귀가 아닌 사랑의 회복이다. 아니, 틀렸다. 사랑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었다. 다만 그걸 인지하는 우리가 변했을 뿐.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했던 품도, 두근거리던 첫사랑도 시간이란 장막에 의해 낮은 해상도가 저장되어 사랑의 영생을 의심하는 우리는 제법 어른의 꼴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정녕 사랑이라는 낙원으로부터 구원받을 방법은 없다는 말인가? 춤을 추면 된다.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된 채 말이다.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신체이며 그것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신체이다’며 스피노자는 심신일원론을 말하지 않던가. 굳은살 끼지 않은 사랑은 본래 넘실거며 일렁이는 법. 그 일렁임에 몸을 맡겨 춤을 추면 사랑을 사유했던 우리의 관념도 본래의 상태로 회복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 어느 한국계 캐나다 뮤지션이 4년 만에 우리의 감각의 회복시켜 구원해줄 앨범과 함께 돌아왔다는 소식이다.
토론토(Toronto)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디제이이자 프로듀서인 조엘 일(Joel Eel)이 3번째 정규 앨범 [Love Infinity]를 Perpetual Care를 통해 발표했다. 2017년 데뷔 앨범 [Very Good Person]으로 평단을 뒤흔든 바 있는 그가 이번에 11개의 트랙들로 우리를 회복이란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심방세동이란 병마와 싸우며 작업한 이번 앨범은 다양한 형태의 치유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성(Reason)을 위한 공간의 상상을 담았다고 한다. 정신과 육체 고통의 근원을 찾는 과정이었다던 그의 말처럼 IDM부터 테크노, 애시드와 엠비언트 등 장르적 변주로 이끌어 가는 서사는 청자에게 그가 걸은 여정과 상상을 함께 경험하게 만든다.
그가 흩뿌린 11개의 파편은 인간이 지닌 질료적 한계를 소리로써 해방해주고 있다. “Screen Resolution”이나 “Recovery” 같은 트랙에서 확인되듯 장르적 클리셰의 답습에서 벗어난 실험들이 돋보이는데, 이는 세계를 우리 내부로 흡수시키기 충분하다. 한편, 서울을 대표하는 디제이이자 프로듀서 리비자(Leevisa)와 함께한 “Love Infinity”의 경우, 톨스토이의 소설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계시다”의 속죄와 구원 테마를 연상시킬 만큼 짙은 심연의 밀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앨범 전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문학적인 문체와 억양은 무척 인상적.
유교 경전인 [禮記]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악(樂)은 음(音)에 기인해서 생긴다. 그 근본은 인심이 외물에 접촉해서 느끼는 데 있다.’ 이는 이번 조엘 일의 앨범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된다. 희(喜), 애(愛), 경(敬), 애(哀)의 감정과 심상은 정신과 육체를 잇는 길이 된다. 심연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과 육체로 표현되는 사랑을 다시금 목도할 수 있을 터.
수익금의 일부는 ‘Heart&Stroke’ 재단에 기부된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사랑을 향한 진중한 상념마저 비웃음으로 폄하되어 돌아오는 요즘, 정신과 육체가 사랑으로 귀결되는 회복을 경험하고 싶다면 재빨리 조엘 일의 앨범을 확인해보자.
Joel Eel 인스타그램 계정
Perpetual Care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Perpetual C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