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 스피릿이 언더그라운드 신(Scene)에 물들 무렵인 80년대 중반 독일에서 활동한 포스트 신스팝 밴드 기아(Ghia)를 소개한다. 1983년에 오랜 친구였던 루츠 보버그(Lutz Boberg)와 프랭크 사이먼(Frank Simon)에 의해 결성된 밴드. 85년경에는 교사이자 엔지니어로 일하던 가수 리사 옴(Lisa Ohm)이 멤버로 합류하여 3인조로 꿋꿋하게 음악을 만들었다. 루츠는 피아노와 베이스를 프랭크는 기타리스트이자 엔지니어로 기술적 측면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신디사이저, 드럼머신, 샘플러 등을 사용했으며 또한 반년을 공들여 FX 사운드를 만들 수 있는 신호 처리 시스템을 스스로 개발할 정도였다.
나름의 혁신을 시도했던 밴드 기아는, 여느 DIY 음악이 그렇듯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도, 음악 팬들의 호응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반대로 요즘은 기아의 음악이 좀 먹히는 시대다. 세계 각지의 간과된 레코드를 발굴하려 혈안이 된 디거와 음악 애호가가 득실하니까. 특히나 맛깔나는 멜로디와 그루브는 발레아릭 팝 카테고리에도 엮일 정도로 감미로워 더더욱 환장할 법하다. 리이슈 레이블 ‘아우터 엣지(Outer Edge)’를 운영하는 권터 스토프(Günter Stöppel) 역시 그런 디거들 중 한 명. 그는 기아의 곡과 앨범을 재발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기아의 음악이 다시 조명을 받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기아의 음악은 2019년 레이블 ‘아우터 엣지’에서 “What’s Your Voodoo?”을 재발매한 것으로 시작하여 지난 8월에는 [At The Hilton], 오는 11월 25일에 발매될 앨범 [Curaçao Blue]까지, 총 세 장의 레코드가 바이닐로 발매된다. 그중 현재 프리오더를 진행 중인 [Curaçao Blue]을 주목하자. [Curaçao Blue]은 지난 8월 발매된 7인치 [At The Hilton]에 이어, 기아의 잊혀진 데모 테잎에서 발굴한 음악을 수록한다.
기아의 음악은 모두 그들의 홈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이번 [Curaçao Blue] 역시 86년과 88년 사이 그들의 방에서 울려 퍼진 적 있는 DIY 음악들인 것. 음악적 영감은 발레아레스 지역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심지어 데모 중 한 트랙의 제목이 “3 AM at Moëf Gaga”였다고. 스페인 지로나 해변의 나이트클럽 ‘Moëf Gaga’에서 밴드는 음료 한 잔을 들고 편안히 바다 풍경을 바라본 것으로 추측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공개된 트랙 세 트랙 “Down At The Hilton”, “Jump In The Water” , “Curaçao Blue”를 확인하자. 화려한 신디사이저와 현란한 기타, 그리고 이를 받치는 묵직한 베이스의 그루브와 경쾌한 드럼까지. 두 원년 멤버가 손수 제작한 일렉트로 신스 훵크의 향연은 여러분을 낭만의 해변 앞으로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