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l Sweatshirt와 The Alchemist의 합작 앨범 [Voir Dire]

래퍼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의 팬이라면 근 며칠간 숨통이 조금 트인 기분일 것이다. 지난 6일 모든 음원 사이트에 레전드 프로듀서 알케미스트(The Alchemist)와 뭉친 첫 합작 앨범 [Voir Dire]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스트리밍을 찾은 11곡은 합쳐서 27분을 조금 못 넘어도, 얼이 마이크를 잡으며 시간은 호흡을 멈춘 듯이 느려진다. [Voir Dire]는 나른한 오후에 햇살을 쬐는 것처럼, 듣는 이에게 심호흡하는 법을 상기시킨다.

앨범의 제목 ‘브와 디르(voir dire)’는 옛 프랑스어로 “진실을 말하다”를 의미하며, 영미권 국가의 증인 혹인 배심원 청문 절차를 일컫는다. 이런 진솔함의 다양한 의미도 앨범에 그만큼 커버부터 분위기까지 고르게 스며들었다. 알케미스트가 특유의 따뜻한 샘플과 최소한의 문법만 지키는 비트는 얼의 진솔함이 담길 공간을 충분히 확보한다. 이번 앨범은 그렇게 얼의 지난 두 앨범 [Sick!]과 [Feet of Clay]는 물론이고, 그간 얼이 추구한 어두운 통찰력보다는 밝지만 여전히 그림자는 짙은 분위기를 선보인다.

얼은 지난 8월 진행한 팝업에서 QR코드를 통해 “SPEAK THE TRUTH”라는 문구를 띄우며 앨범이 NFT로 발매될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렸다. NFT로 공개된 [Voir Dire]는 이번에 정식발매한 앨범보다 3곡이 더 많지만, 스트리밍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게되었다. 또한 이번 앨범이 팬들이 2년 동안 찾던 “숨겨진 앨범”이라는 찌라시도 무시할 수 없다. 알케미스트가 유튜브에 가명으로 올린 얼 스웻셔츠 합작 앨범이 존재한다고 암시한 적이 있는데, 떡밥을 주기적으로 뿌려주니 팬들 역시 수년간 유튜브를 샅샅이 뒤졌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둘은 이번 합작 앨범이 “그 앨범”이라 확인했지만, 수년간 가스라이팅을 당해온 팬들은 여전히 유튜브로 향한다.

[Voir Dire]는 단 며칠 차이로 얼 스웻셔츠의 데뷔 앨범인 [Doris]와 10년 차이를 둔다. 앨범 대 앨범을 비교하기보다는, 트랙 위에서 다시 만난 아티스트를 기준점으로 둬야 그간 얼을 지나간 세월이 더욱 선명해진다. 두 앨범에 모두 이름을 올린 아티스트는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 [Doris]에서 둘은 “Centurion”과 “Hive”,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는 “Mancala”와 “The Caliphate”에서 둘은 다시 만났다. 10년 차이를 두고도 같은 것은 많다. 둘 다 여전히 경찰이 개같고, 후드의 위협과 불안은 갑갑하고, 이런 풍경을 뼈대 있는 말로 고스란히 읊는다. 하지만 둘 다 어느덧 힙합 바닥에서 ‘짬’이 찼는지, 분노의 대상은 같아도 이를 사이에 둔 시간은 길고 경험은 풍부해졌다.

선공개된 싱글 “Sentry”에서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몇 가지 있어/ 악마가 앉는 자리지/ 그래서 상석에 앉았어/ 밥 먹을 시간이야(had a couple things on my chest/ That’s where the demons would sit/ I took a seat at the head/ It’s time to eat)”와 같은 가사가 이런 세월의 여유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짬’이 선물한 여유와 통찰력 덕분인지, [Voir Dire]는 얼 스웻셔츠의 앨범 중 가장 편하게 듣기 좋은 앨범 중 하나로 다가온다.

Earl Sweatshirt 인스타그램 계정
The Alchemist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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