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은 깊은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별다른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면서도 입으로 산뜻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휘파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음악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요소로 자리 잡았으며, 이외에도 누군가 호출할 때, 스포츠 경기, 종교의식 등 다양한 방면에서 수많은 역할을 하며 인류와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휘파람을 직업으로 삼는 휘슬러(Whistler)에 관해 물어본다면,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인터네셔널 휘슬러스 컨벤션(International Whistlers Convention)이라는 국제 대회뿐만 아니라, 세월에 걸쳐 시플뢰(Siffleur)라는 장르로 불리며 프레드 로워리(Fred Lowery), 로니 로날드(Ronnie Ronalde)등 전설적인 인물들을 통해 발전해 왔음에도 불구 휘슬러는 메이저 시장에는 거의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휘파람이 가지고 있는 가벼운 이미지는 휘슬러의 시장 진출을 막는 대표적인 요소였으며, 음악 장르보다는 단지 일종의 멜로디를 부는 “행위”로 인식됐기에 그동안 외면 받아왔다.
그렇기에 올해 2월 16일 발매한 호주 출신 휘슬러 몰리 루이스(Molly Lewis)의 데뷔 정규작 [On the Lips]의 성공은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수많은 휘슬러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성과다. 앨범 전반에 걸쳐 잔잔한 라운지 뮤직(Lounge music)으로 진행하는 이 작품은 아늑한 밤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발매 직후부터 많은 관심을 자아냈다. 다음은 앨범의 오프닝 트랙 속에서 몰리 루이스가 읊는 앨범에 존재하는 유일한 가사다.
“좋은 저녁입니다. 이 앨범을 듣는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 이름은 몰리 루이스입니다. 오늘 밤, 저는 휘파람을 붑니다.(Good evening. Thank you for listening. My name is Molly Lewis. And tonight, I’ll be whistling.)”
재치 있는 도입부를 끝으로 몰리 루이스는 33분의 휘파람 연주를 통해 감미로운 아리아를 선사한다. 2020년대부터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꾸준히 진행했던 라운지 쇼 카페 몰리(Café Molly)에서 보여주었던 몰리 루이스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앨범 속에서 더욱더 독보적이며, 이는 휘슬러에 대해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해줬다.
특히 “Lounge Lizard”, “Crushed Velvet”에서 보여준 우아한 선율, “Porque Tu Vas” 속 활기차고 신나는 휘파람은 주목해 볼 만한 요소로, 이탈리아 고전 영화, 보사노바, 재즈 클럽 이외에도 다양한 분위기가 연상되는 풍부함은 그동안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휘파람에 관한 편견을 깨뜨리는 데 충분했다.
물론 올해 데뷔 정규작을 발매했지만, 1990년생 뮤지션 몰리 루이스는 2010년대 초반부터 휘슬러 신(scene)에서 입지를 다져왔던 엄연한 베테랑이다. 어린 시절부터 불러왔던 휘파람 실력은 호주와 미국을 오가며 수 많은 뮤지션과 협업을 통해 인정받았으며, 각종 휘파람 세계 대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몰리 루이스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은 순간은 예상치 못한 곳이었는데, 2017년 키린 J 캘리넌(Kirin J Callinan)과 협업한 싱글 “Big Enough”의 뮤직비디오가 밈으로 급부상하며 몰리 루이스에 대한 조명 역시 시작되었다. 물론 밈화 된 부분은 몰리의 파트가 아닌 지미 반스(Jimmy Barnes)가 보여준 혼신의 샤우팅이지만, 빌드업이 되어준 휘파람 역시 인기를 얻기에는 충분했다. 의도치 않은 주목을 받은 몰리 루이스는 맥 드마르코(Mac DeMarco), 닥터 드레(Dr. Dre), 캐런 오(Karen O) 등 다양한 유명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이어 나갔다.
2021년 인디 레이블 ‘잭재규워(Jagjaguwar)’와 계약한 뒤 카페 몰리에서 자유로운 휘파람과 재치 있는 농담은 물론 매력 있는 댄스를 통해 몰리는 퍼포머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노력은 대중에게 낯설게만 느껴졌던 휘슬러가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명성을 기반으로 영화 “바비(Barbie)”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기도. 그런 그녀에게 있어 첫 정규작 [On the Lips]는 자신의 음악 세계, 그리고 휘슬러를 더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다.
몰리 루이스는 “휘파람은 사람들에게 흔히 귀에 거슬리고, 높고, 새소리 같은 소리라고 인식이 박혀있죠. 저는 이 인식을 바꾸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대중에게 아직 남아있는 휘파람에 관한 장난스러운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숨을 쉴 수 있는 한 휘파람을 마음껏 불고 싶다고 이야기한 몰리 루이스의 바람처럼, 휘슬러가 주목받을 수 있는 날도 언젠간 오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 Atlas Obscura, The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