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ga Bodega의 새 앨범 [Dennis]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란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 있다. 실은 이 표현, 제법 심오한 편이다. 시작은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이후에 부여되는 것이겠다. 그리고 이 표현에 따르면 창조된 그것은 시작과 동시에 끝을 향해 간다는 유한의 특성을 지녔다. 그렇다면 무한이라 함은 그 반대가 되겠다.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지 않은 채 시점과 종점이 존재하지 않은 것 말이다. 혀가 꼬여버릴 만치 어지러운 말들의 향연이다만, 이는 유한으로 남는 우리 인간의 삶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리라. 그럼에도 진실로 빚은 예술과 그 혼만큼은 무한하다 할 수 있겠다. 찰나의 순간들만이 우리 주변을 부유하는 지금, 우리에게 무한을 향할 가능성을 되뇔 무엇이 필요하다.

런던과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뮤지션 세가 보데가(Sega Bodega)가 앰비언트 트윗(Ambient Tweets)을 통해 발표한 새 앨범 [Dennis]는 그 시발점이 될 수 있겠다. 전작 [Romeo]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정규 앨범 [Dennis]는 전작의 연장선으로까지 보여지는데, 본인의 보컬 기용 방식부터 질감을 만들어 내는 방식, 장르 간 혼합에 대한 실험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가 [SS(2015)]부터 구축해 온 바를 비추어 봤을 때, 이번 앨범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향한 집대성의 일환이라 느껴진다. 앨범을 관통하는 혼란스러운 감정과 어두운 동화적 설정은 그가 그간 구축한 고유 언어를 통해 흘러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 건강을 잃은 상태에서 탐구한 수면 상태와 방향 감각 상실을 담았다고 하는데, 이는 “Humiliation Doesn’t Leave a Mark”과 “Set Me Free, I’m an Animal”, “True”와 같은 트랙에서 잘 보여준다. 한편 앨범은 드럼앤베이스와 트랜스 나아가 레게톤, 플라맹고까지 다양한 장르적 특성을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상징적으로 차용하고 있지만, 산만하거나 혼잡함 없이 세가 보데가의 언어로 수렴하는바 또한 앨범의 장점으로 극명히 나타난다. 

과거 그가 “Requiem”이나 “O”와 같은 트랙에서 보여준 충격과 센세이션을 이제 그에게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를 두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말을 남길 수도. 하지만 세가 보데가란 길 위에 있는 우리. 과정에 있기에 그것이 유한한 지 무한한지 알 도리가 없다. 그렇기에 더욱이 멀리서 본 그의 앨범들과 혼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 그의 음률은 끝이 없는 무한의 과정이었다. 앞서 말한 창조되었기에 소멸되어야 하는 애절한 운명이 아니라는 말이다. 창조된 바 없이 존재한 세가 보데가의 온전한 예술혼은 지독히 외로운 만큼 무한하다.

인간은 유한하다. 영원한 삶도, 영원한 사랑과 사유도 없는 법임에도 인간은 마치 무한한 것처럼 산다. 매일 꾸고 깨는 꿈은 유한한 우리 인간이 창조했지만, 어떤 가능성을 믿기에 그 속에서 영원할 수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제법 오글거릴 수 있으나, 예술 또한 그 가능성을 향한 인간의 지독한 믿음이 만든 무한의 영역일 수 있다. 그리고 세가 보데가란 존재와 그의 예술이 유한의 끝에 닿는 그곳에는 무한이 있음은 확실하다. 그 가능성이 우리 감각을 어디로 이끌지 지금 바로 확인해 보자.

Sega Bodeg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Ambient Tweets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Ambient Tweets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