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와 Sunset Rollercoaster의 합작 프로젝트 앨범 [AAA]

‘밴드 붐은 온다’라는 낭만 가득한 슬로건을 중심으로 록 음악을 향한 대중의 기대와 관심이 높아진 요즘. 새로운 록 뮤지션들과 그들을 다루는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 덕에 긴 시간 침체를 겪었던 한국의 밴드 음악이 어느 정도 분기점을 지나 ‘붐’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장르 팬들의 갈증을 단번에 해갈시켜 줄 속 시원한 한방은 없었다.

그럼에도 끈덕지게 록 음악의 재건을 꿈꾸며 ‘붐은 온다’라는 염원에 가까운 구호를 외치던 팬들의 소망이 닿은 것일까. 긴 공백기에도 휘발되지 않던 관심과 기다림 끝에 시장은 다시 한번 상전벽해의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국내 인디 밴드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던 혁오(HYUKOH)가 타이베이의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AAA]로 돌아왔다. 2020년 혁오가 공개한 “Help”의 공식 리메이크와 선셋 롤러코스터의 “Candlelight” 작업으로 팬들은 두 밴드의 연이은 협업을 기대해 왔는데, 그 와중 양쪽 모두에게 4년이란 긴 텀(term)을 둔 이번 컴백은 그 의미와 감동이 남다를 수밖에.

이번 프로젝트는 작년 5월부터 시작된 혁오와 선셋 롤러코스터 간의 음악적 소통을 시작으로 공동 창작한 8곡이 수록된 앨범이다. 그들은 깜짝 협업 소식을 공개함과 함께 “이번 앨범은 서로에 대한 오랜 애호와 존중을 바탕으로 긴밀히 협업한 결과입니다”라며 짧은 소개를 덧붙였다. 프로젝트 팀 이름이자, 앨범명이기도 한 ‘AAA’는 선셋 롤러코스터가 첫 미국 투어를 준비하며, 문화적 경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Access All Areas’의 약자를 뜻한다고.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Kite War”는 즉흥 연주를 통해 만들어진 곡인 만큼, 단순한 코드 진행 속 밴드원 각각의 생각과 표현이 자유롭게 담긴 것이 특징이다. 정제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내밀한 소통 방식을 통해 능숙한 잼(jam) 연주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트랙 “Y”에서는 아르페지오(Arpeggio) 주법으로 악기들이 행렬을 이루듯 움직이며 단순한 곡 구조를 만들어낸다. 5분이 넘는 분량을 하나의 모티브 아이디어로 종결하는 방식은 다소 과감할 수 있지만, 수차례 호흡을 맞추며 음악 회합을 거듭한 그들의 곡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만다린어 가사로 이루어진 트랙 “Antenna”.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는 대만의 배우 허광한(Kuang Han Hsu)과 중화권 스타 리아 도우(Leah Dou)가 출연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라푸(Rafhoo)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 또한 두드러지는데, 영상 속 짙게 깔린 안개와 여러 시각 표현들은 몽환적인 기타 선율과 어울리며 곡의 인상을 더욱 흐릿하게 만든다. 낯선 언어와 발음은 그에 상응하는 모호함을 풍겨주며 꿈속을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Antenna”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Glue”의 드럼 머신 소리가 정적을 깨며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어지는 리얼 드럼, 그리고 차츰 쌓이는 화성 악기들의 조화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듯 천연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준다. 8개의 수록곡 중 가장 생기 가득한 곡으로, 마치 넓은 고원에 누워 질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 청량한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곡.

한편, 캄보디아에서 제작된 “Glue”의 뮤직비디오는 DQM의 감독하에 자연이 갖는 무한한 생명력과 그 속에 내재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두 밴드가 알게 모르게 고수해 오던 동양적이면서 괴괴한 분위기를 신록의 풍경들을 잇따라 비춤으로써 적절히 투영시킨 결과물이다.

앨범에서 가장 먼저 공개된 “Young Man”. 배를 타고 항해하듯 희망찬 분위기의 진행과 앞날의 불안을 이야기하는 가사의 대비는 세상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시선과 매우 닮아있다. “슬픔은 늘 떼로 오며, 기쁨은 늘 스쳐 간다”라는 가사에서도 이겨내리라는 굳은 결심과 한숨 섞인 체념이 동시에 느껴진다. 때에 따라 웃는 얼굴로도 우는 얼굴로도 들을 수 있는 이면이 모두 뚜렷한 곡.

다음으로 보사노바 테마의 “Do Nothing” 그리고 “Antenna”의 속도를 늦춘 버전인 앰비언트 트랙 “Aaaannnnteeeeennnaaaaaa”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Young man”을 작업하던 도중 합주실 2층에서 녹음한 데모에 가까운 “2F 年轻人”까지. 이들은 단순히 음악을 완성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을 향유하기 위한 유의미한 기록들을 남기는 데에 집중한다. 표현의 한계점을 넘어선 두 밴드의 화합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그 밖에도 김영나 작가와 사운드 엔지니어 노먼 니체(Norman Nitzsche), “Young Man”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페나키(Pennacky), 카메오로 출연한 조현철 배우 등 다양한 작업자들의 노고와 열정이 가득 담긴 만큼 괄목할만한 앨범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밴드 음악은 태동과 성장 그리고 쇠퇴의 길을 지나 드디어 새로운 전성기를 앞두고 있다. 이 대목에서 가장 새롭고 확실한 대안을 가져온 혁오와 선셋 롤러코스터의 앨범 [AAA]를 지금 감상하자.

HYUKOH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Sunset Rollercoaster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HYUKOH, Sunset Rollerco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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