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 개에 달하는 이름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파란노을(parannoul)과 함께 펜타포트 무대에 올랐던 베이시스트이기도 하며, 국내 슈게이징 팬들에게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밴드 포그(Fog)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파란노을, 브로큰티스(BrokenTeeth)와 함께 한국의 새로운 슈게이징 3 대장이라 불리며 해외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아시안 글로우(Asian Glow)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수많은 뮤지션적 자아를 지닌 그가 5번째 정규앨범 [11100011]로 다시 돌아왔다. 아시안 글로우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낸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다소 짧은 기간에 다시 돌아온 그의 앨범은 해외 유명 음악 평론 사이트인 ‘Rate Your Music’에서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리스너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자아 ‘Audinjee’ 이름으로 발매한 앨범 [Towards Backward on the End of the Cliff]가 어쿠스틱 기타의 농도가 짙은 따뜻하고 쓸쓸한 색채가 담긴 곡들로 구성된 반면, 이번 신보는 본래 아시안 글로우만의 노이지하고 멜로디컬한 분위기로 더욱 차갑고 시니컬한 느낌이 가득 담겨있다. 동일 이름으로 2024년 발매한 [Unwired Detour] 보다 더욱 절제되고 부드러운 전개를 가져가면서도 리버스 기타, 팝 성향의 보컬 샘플링등을 활용하여 다채로운 조화를 보여준다.
이번 앨범에서는 마치 어질러진 방에서 특별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들을 찾는 듯, 거칠면서도 회상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여러 겹의 먼지가 쌓인 듯한 기타를 중심으로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리듬 변화를 가져가는 드럼, 그 위에 이모셔널한 베이스 라인이 얹어져 오래된 방을 둘러보며 찾은 물건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겉보기엔 투박하고 암울하지만, 그 속에는 온기와 아련함이 한껏 묻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낡고 오래된 방에서의 회상적인 느낌을 대변하듯, 되감긴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트랙 “Feel All The Time”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후회가 느껴진다. 이 절망적이고도 먹먹한 분위기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데, 그 속에서도 4번 트랙 “Out Of Time”, 6번 트랙 “Camel8strike”과 같이 머리를 신나게 흔들 수 있는 곡들이 함께하는 것이 이번 앨범의 핵심. 격해지고 요동치다가도 차분해지는 감정을 따라가며 악기 간의 굴곡진 능선들은 유기적으로 엮여 있어 지루하지 않은 다이내믹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Camel8strike”는 아시안 글로우만의 독특한 DIY 정신과 로우파이함이 돋보이는 뮤직비디오와 함께 업로드 됐으니 같이 감상해 보자.
이번 앨범에서는 평소 슈게이즈 장르의 팬이라면 알 수 있는 이스터에그도 존재한다. 2022년 스웨덴의 원맨 밴드 뮤지션 웨더데이(Weatherday)와 발매한 협업앨범 중 “Clockwalk Around The Ache” 중간에 등장하는 멜로디와 이번 신보 중 “Jitnunkebi”의 리프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은 이번 앨범의 숨겨진 리스닝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은 빠른 템포의 드럼 앤 베이스 리듬과 서정적인 멜로디의 조화가 돋보이는 “Dorothee Thines”. 리얼 드럼으로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전자음이 더해지는 드럼의 질감과 브레이크 비트가 적절한 타이밍에 배치되어 있어, 자꾸만 찾게 된다. 긴박한 질주가 끝나고 스트링이 외로이 모습을 드러내며, 하프타임 리듬으로 서서히 페이드아웃 되면서 열린 결말을 예고하는 동시에 앨범의 끝매듭을 짓는다. 어디서 무슨 이름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아시안 글로우의 이번 앨범은 현재 밴드캠프에서 CD와 바이닐, 카세트테이프까지 만나볼 수 있으니 참고해 보자.
Asian Glow 인스타그램 계정
Asian Glow 밴드캠프 계정
이미지 출처 | Asian G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