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 알 수 없는 법. 우연이 우연을 불러 누군가가 잘 모르는 이성과 하룻밤을 보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이 둘이 다음 날 같이 스마트폰의 근친상간 방지 앱으로 둘의 혈연관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면 이들은 분명 아이슬란드인이다. 최근 인구 33만 명을 겨우 넘은 아이슬란드는 ‘건강한’ 가족계획을 위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범프(Bump)’를 2013년부터 배포 중이다. 앱의 공식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앱에서 부딪친(bump) 다음 침대에서 부딪치자’. 하지만, 그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잦지 않을까. 피부색은 달라도 피는 똑같이 붉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품은 거친 땅 아이슬란드에 인간이 쉽사리 뿌리 내릴 곳은 없다. 이는 우리나라 방송국들이 뻔질나게 찍어가는 피오르, 수직 폭포, 오로라, 활화산 등의 기가 차는 존재감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 틈에서 아이슬란드인은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간직하며 긴 세월 동안 살아왔다. 섬나라 특성상 긴 세월 세상과 단절돼 위의 ‘범프’ 앱 배포 같은 우리에게 생소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나 역으로 외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탓에 고고학이나 언어학의 관점에서는 보물섬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아이슬란드의 음악은 어떤가. 지금의 아이슬란드는 아우스게일 트뢰스티(Ásgeir Trausti)를 비롯한 모던한 움직임부터 고대로 회귀하는 듯한 리파(LIFA)까지 풍성한 음악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의 음악은? 평소 고작 몇몇만 궁금하고 말았을 문제에 뛰어드는 괴짜가 가끔은 나오는 법이다. 철 만난 연어처럼 레어그루브(Rare groove)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 인물이 아이슬란드에 있으니 그 이름은 디제이 플라턴(DJ Platurn). 20세기 아이슬란드의 훵크를 찾아 그가 섬 전역의 지하실에서 먼지를 흡입한 지 어언 12년이 되었다. 그리고 디제이 플라턴과 그의 사촌이자 조력자인 스베임후기(Sveimhugi)는 수집한 판 중 로열젤리 급 곡 70여 개를 선별해 믹스를 발표했다. 자칭 레어그루브보다 한술 더 떠서 울트라(Ultra) 레어그루브란다.
1960년대 섬으로 흘러온 소울(Soul) 음악에 심취한 결과 나온 유일무이한 스타일의 아이슬란드 음반들. 그리고 그 후 몇 세대에 걸친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음악사를 아이슬란드 언론인 마그누스 토르달손(Magnus Thordarson)이 포착해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사실 마그누스 토르달손는 디제이 플라턴의 아버지 되시는 분. CD 두 장이 포함된 책자 형식으로 발매될 디제이 플라턴의 [Breaking the Ice]에는 그의 아버지가 남기신 사진들로 한 바닥이다. 나아가 앨범 책자에는 왁스 포에틱스(Wax Poetics)나 가디언(The Guardian)에서 음악 관련 글을 쓰는 데이비드 마(David Ma)의 빼곡한 설명이 동봉되니 잘 읽고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 좋겠다.
레어그루브라 하여 겁먹을 것 없다. 꽤 소화하기 쉬운 곡들로 구성된 디제이 플라턴의 믹스는 부드럽고 친절하다. 하지만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의 바쁜 다리처럼 우리가 소화하기 좋은 희귀음악을 찾아 12년 동안 동분서주한 그의 노력이 레어그루브 앞에 울트라를 붙이는 것. 이름도 잘 지었다. ‘브레이킹 디 아이스’. 딱딱한 분위기를 깬다는 관용적인 의미처럼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섬나라의 잊힌 음악을 먹기 좋게 손질해 내놓겠다는 말이다. 슬슬 서울특별시 도봉구 인구와 비슷한 아이슬란드가 이전 세기 내놓은 음악이 궁금하다면 레이블 니들 투 더 그루브(Needle to the Groove)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브레이킹 더 아이스’를 선주문해보자. 수량은 1000개 한정이고 위의 사운드 클라우드 링크는 그저 맛보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