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올 겨울, 이 아우터가 갖고 싶다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구매하는 물건 중 가장 비싼 건 무엇일까. 보통 첫째로는 집일 것이고, 두 번째로는 차 그리고 세 번째로는 집안을 채우는 가구나 가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입는 옷 중 으뜸은 무엇일까. 아마 아우터겠지. 아우터. 아우터는 겨울에만 입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값이 나가기 때문에 다른 옷보다도 더 큰 고민의 시간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어릴 때는 2020년엔 국가에서 날씨를 컨트롤해서 외투 따위는 안 입을 줄 알았지만, 그딴 거 없다. VISLA 멤버들은 어떤 외투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까. 싸게 여러 개 칠까. 비싼 거 한방에 갈까. 아니면 싼 거 하나로 버틸까. 그들의 생각을 들어 보자.


박한수 (Contribute Editor)

러시아의 추위에 육박하는 한국에서 겨울의 아우터라면 패딩이라는 답안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한여름에는 반팔이라는 한정적인 코디밖에 없듯이, 1월을 넘긴 지금 두꺼운 패딩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런 이유로 나름 패딩을 몇 개 보유한 내가 이번 겨울 가지고 싶은 아우터는 어떠한 디테일도 없는 무지 패딩이다. 

최근 만난 나의 친구 ‘J’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친구 몇과 함께 저녁에 고기를 먹자 약속하고 만난 그는 당최 알 수 없는 패딩을 입고 왔다. 특별한 로고나 그 어떤 디테일도 없는 말 그대로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 친구도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기에 분명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라 생각한 나는 고깃집에 들어간 후 그가 비닐봉투에 옷을 집어넣을 때 유심히 봤지만 아무런 택조차 달려있지 않은 제품이었다. 무슨 다크나이트의 조커도 아니고 택도 없는 옷을 입고 다니다니.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집에 가기 전 그 옷을 어디서 산 거냐 물어봤더니 ‘J’도 작년에 구매한 거 같은데 정확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끝내 그 옷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다. 평소 여러 브랜드의 발매 정보를 꾸준히 접해온 나는 이제 길거리에서 타인의 옷을 보면 자동으로 어느 브랜드의 어떤 제품인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 나에게 그가 입은 무지 패딩은 마치 셜록이 알몸의 아이린 애들러를 처음 만난 당황함과 비슷했다. 

그리고 이번 에디터스 딜라이트의 주제를 받은 후 원하는 아우터가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문득 친구의 패딩이 재밌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요즘 한남동 캠핑 무리에서 꼭 발견할 수 있는 건 중국인이 아닌 슈프림 X 노스페이스 설산 발토르 패딩이 아닐까? 처음 그 모델을 봤을 때는 낮버전에 버금가는 명작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최근에 그 옷을 보면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밀려오는 걸 느낀다. 발렌시아가 트리플S를 보았을 때도 느끼는 이 감정은 개성이 강력한 한 아이템으로 전체 코디에서 다른 아이템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입비스트와 무심함 그 사이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 비중이 다른 여러 아이템의 적절한 조합이 그날의 코디를 완성시킨다고 생각하는 나도 요즘 입고 다니는 브랜드의 패딩은 재미 없는 코디라 스스로 생각한다. 이번 겨울 무지 패딩을 하나 구한다면 다른 디테일을 채워 넣은 재밌는 코디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무지 패딩으로도 충분히 스타일을 발휘한 친구 ‘J’가 실은 부러웠다고 고백하고 싶다.

친구 ‘J’의 무지 패딩

오욱석(Editor)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 사는 일은 꽤 까다롭다. 일단 매 계절에 맞는 옷을 구비해둬야 한다는 점이 그러한데, 여름은 여름대로 연일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겨울은 또 더럽게 춥다. 대한민국에 사는 이상 1년 내내 옷을 사야 한다. 까짓거 1년쯤 안 사고 대충 넘어가도 되지 않겠느냐마는 어딜 가나 이것 좀, 저것 좀 사라고 부추기는데, 그걸 어떻게 참아……. 이렇게 또 허구한 날 뭘 사야 하나 머리를 싸매는 거지. 

이런 고통 끝에 겨우 옷 한 벌을 사 입는다 한들 출근하는 곳이 VISLA 매거진이라면 그 고민은 배가 된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컨대 VISLA에는 왠지 모를 기형적인 사내 문화가 존재한다. 언제부터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아무도 모르지만, 누군가 사무실에 새 옷을 입고 온 순간 외부에서는 못 느끼는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평소보다 조금 더 ‘멋’을 부렸을 시 그 관심은 증폭된다. 물론 그 멋의 기준은 누구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주말에 고가의 아우터를 구매하자마자 그것을 착용하고 월요일에 출근하는 일’은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상어 떼 사이로 뛰어드는 행위와도 같다. 새 옷을 입고 간다면, 그 브랜드와 구매처, 가격 등 구매에 관련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혹여나 그 제품가격이 30만 원이 넘기라도 했을 때는 추가로 어떠한 연유로 이런 지출을 하게 되었는지(ex. 바겐세일,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 등) 신고하는 것이 적법한 절차라 할 수 있다.

본인 역시 구매한 옷을 그다음 날 그들에게 바로 선보인 적은 드물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어느 정도 노출을 거친 뒤 어느 정도 눈에 익었을 때쯤 슬쩍 입고 가는 게 묘수라면 묘수. 더불어 내 오랜 관찰에 따르면, 그들 또한 이와 유사한 방법을 통해 뉴앁을 선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기이한 사내문화를 박살내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나는 언젠가 이에 대한 카운터로 존나 하입(Hype)하고 값비싼 아우터와 함께 출근해보고 싶다. 그리고 누구나 알 법한 그 겨울 아우터로는 슈프림(Supreme)과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의 협업 컬렉션이 좋을 것 같다. 마침 위에서 언급한 마운틴 발토로 패딩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핫이슈가 되겠지. 모두가 나를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입술을 옴짝거릴 테지만, 나는 사무실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패딩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은 채 닥치고 앉아있을 거다. 그렇게 나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명받은 누군가가 옷장에 몰래 꿍쳐둔 좆간지 아우터를 꺼내 입고 출근한다면, 중고로 산 오만 원짜리 노스페이스 눕시가 걸린 내 자리 위에도 자랑처럼 슈프림 택이 무성할 거외다…….

Supreme x The North Face FW17 Mountain Baltoro Jacket

황선웅(Editor)

“쪼잔하게 몇만 원 가지고 사기를 치겠어?” 그러나 내 주변, 빈번하게 일어나는 중고 거래 사기란 여간 일은 아닌 듯했다. 게임기를 주문했는데 벽돌이 온다거나, 짝퉁을 진품으로 속여 판다거나, 혹은 아예 잠수해 버리는 숱한 사례는 중고 거래를 불신하기 딱 좋다. 이러한 극단적 케이스는 올바른 거래보다도 정보가 더 많다. 나 또한 중고 거래에 불신이 있었고. 허나 견고하게 다져지진 못한 듯, VISLA 에디터 김홍식이 엔지니어드 가먼츠 바지를 중고 장터에서 싼값에 구매했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 ‘중고장터’ 앱을 설치했다. 저렴한 가격 맛을 한번 경험하니 불신 따위 잊게 됐다. 되려 매일 밤 중고 거래 앱을 잡고 서핑을 즐긴다. 그리고 시즌마다 군침 흘린 아이템을 모조리 찾아봤다. 대부분 그냥 지나친 가운데, 소울라이브(Soulive)의 패치워크 한텐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2년 전, 데님 전문 편집숍에서 한번 걸쳐본 외투다. 당시 가격 때문에 쓴 눈물을 삼킨 아이템, 또한 현재는 브랜드 방향이 틀어져 더는 수입되지 않는 이 자켓이 중고 장터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이 제품에 다시 혈안이 됐다. 아쉽게도 국내 중고 장터에 올라온 제품은 내 사이즈가 아니었다. 그러나 반드시 구하고 싶었기에 일본 중고 장터로 눈을 돌렸다. 관세를 포함하여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해야 했지만, 이미 돌아간 눈을 겉잡을 순 없었다.

한텐 자켓을 입고 처음 출근한 아침, 신이 나서 옷부터 자랑했다. 솔직히 거적때기 같은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표주박이나 깡통만 들면 사극에 등장할 법한 왕초 느낌의 의류인 사실 또한 인정한다. 또 겨울 외투치고는 얇은 편. 충전제 또한 솜이라 방한복으로는 실격이다. 그러나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잘 소화할 수 있다고 자뻑하며, 이런 의류만 모아온 지도 벌써 3년인데 어쩌겠나. 이럴때만 돌아가는 긍정적 사고 또한 말했다. 얇은 만큼 간절기까지 오래 입을 수 있다. 또 많이 추우면 내복을 두 겹으로 껴입자고.

연말엔 이 옷을 걸치고 조용한 고향을 다녀왔다. 내 스타일 역시 그 정취에 자연스레 녹아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저 한숨을 푹 내쉬더라. 내 모습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은 듯 보였다.

Soulive Hanten Jacket

박진우(Graphic Designer)

겨울 아우터를 입는 패턴을 생각해보면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을 거 같다. 패딩을 입는 사람과 입지 않는 사람. 입지 않는 경우엔 보통 코트나 가죽으로 된 무언가로 멋과 추위를 교환한다. 나의 경우, 조금만 추워져도 그 추위가 무서워라기보다 외투 두께를 생각하기 귀찮아서 패딩을 입는다. 패딩은 마치 내복과도 같아서 초겨울부터 입어버리면 그 따뜻함, 가벼움, 부드러움에 중독되어 겨울 내내 벗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도 추운 겨울 패딩 없이 멋을 유지하는 친구들을 보면 진심 어린 존경심과 부러움이 생기기도 한다. 

그 존경심과 부러움을 시발점으로 ‘패입(패딩 입음)과 패안입(패딩 안 입음)의 합리적 밸런스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모델을 발견하고 충격을 먹었다. 바로 2018년 겨울 발매된 실험적 일본 브랜드 사카이와 더플코트로 유명한 영국의 글로버올의 협업 제품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인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진짜로 패딩과 코트를 잘라다 붙인 이 외투는 마치 내게 ‘믹스견이 더 건강한 것처럼 나도 굉장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st는 보통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 옷이 아무리 자신 철학과 맞아떨어진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실험적이고 튀는 이 디자인을 입고 바깥을 나서는 건 조금은 무리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무난한 남색을 하나 구매하여 옷장에 걸어두고 왠지 입을 용기가 나는 날을 기다리면 흥분될 것만 같다.

SACAI X GLOVERALL C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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