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사 발행을 앞두고(4월 5 일자), 넷플릭스는 4월 10일 개봉 예정이었던 “사냥의 시간” 공개를 보류하기로 했다. “사냥의 시간”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가 극장에서 넷플릭스 개봉으로 방향 전환을 결정했을 때, 해외 세일즈 담당 ‘콘텐츠판다’가 이중계약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미 1년 이상 업무를 이행해 왔고, 30개국 선판매, 추가적인 70개국 계약 예정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넷플릭스로 선회하는 건 계약 위반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결과적으로 법원이 ‘콘텐츠판다’의 손을 들어주자 넷플릭스가 ‘공개 보류’를 결정했다. 그러나 해당 글은 결국, OTT와 영화산업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영화 “사냥의 시간”의 개봉 여부보다는 산업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지난 3월 23일, 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를 통해 최초 공개된다는 뉴스가 발표됐다. 원래 “사냥의 시간”은 2월 극장 개봉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3월로 극장 개봉이 미뤄졌고,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넷플릭스 공개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콘텐츠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아닌 외부 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최초 공개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냥의 시간”은 “파수꾼”으로 뜨겁게 데뷔한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이고, 각자의 커리어를 탄탄히 쌓은 뒤, 한국 남자 배우 역사에서 새로운 세대를 구축한 것으로 보이는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등이 전면에 나선 영화다. 제작비는 총 115억 ─ 2019년 기준, 순제작비 30억 이상 상업영화 평균 총제작비는 약 101억 3천만원 –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 이다. 그렇다면 “사냥의 시간”의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가 넷플릭스에 최초 공개를 넘긴 뒤 받은 금액은 얼마일까. 영화계에 떠도는 소문을 종합하면 120억 정도로 추정된다. 거칠게 말해 본전치기한 것이다.
본전치기를 했다는 건, 제작비를 지켜냈다는 말이고, 그것은 곧 다음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이 마련됐다는 의미다. 허무한 결론이지만, 그럼 된 거다. 대중문화의 구성원(생산자와 수용자로 나눌 경우) 중 생산자에게 다음 작품 생산을 위한 자본 확보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특히나 영화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그야말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영화산업에서 본전치기를 했으니, “사냥의 시간”은 개봉 전에 이미 성공한 셈이다.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행은 제작비 보전 외에도 몇 가지 의미를 파생한다. 그간 영화산업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스크린 독과점이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관한 논의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멈춰있는 상태에 가깝다. 그 원인에 대기업의 제작 ∙ 배급 ∙ 상영 시스템 독점, 극장을 운영하는 점주 개인의 이익 추구 및 그들의 생존 등등 다양한 입장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합적인 이슈를 굳이 언급한 까닭은, 스크린 독과점이란 근본적으로 극장의 수가 제한적이란 이유로 발생한다는 지점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물리적인 제한이 없다. 넷플릭스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아닌 외부 콘텐츠의 최초 공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건, 무제한 상영관을 보유한 극장이 질 좋은 콘텐츠라면 무엇이든 24시간 상영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이를 통해 스크린 독과점이 해결될 거라 말할 순 없다. 그러나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된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느껴지는 건 분명해 보인다.
또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라는 거대한 유통의 활로가 등장했다는 건 영화산업의 한 축인 제작자들에게도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이전까지 영화계에서는 작품을 만들고도 상영할 곳을 찾지 못해 공개가 미뤄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끝내 상영할 곳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제작자는 영화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OTT라는 분명하고, 무한한 시장이 존재하게 된다면 분명 이전의 상황보다는 희망적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대단한 이익은 얻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인 창작의 발판 정도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OTT를 통한 영화 배급이 활성화된다면 해외 배급 역시 손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해외 배급 방식은 국가를 정하고, 정해진 국가에 따라 각기 다른 전략을 짠 뒤 움직여야 했다. 소규모 배급사의 경우 이 과정을 감당하는 것은 꽤나 부담이다. 하지만 OTT를 통하게 되면 단 두 단계로 압축된다. 해당 OTT 기업과의 협의 그리고 업로드. 결과적으로 시장이 확장되고, 다양해진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것은 콘텐츠의 방향성과 형식과도 연결된다. 한국 관객만을 상대할 때와 전 세계의 관객을 상대할 때 그 작품의 내러티브, 스타일, 형식을 다르게 고려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위 내용을 좀 더 풀어보자면,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는 것과 OTT를 통해 공개되는 것, 이 유통 플랫폼의 차이 자체가 영화 제작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극장은 반강제적인 공간이다. 관객이 티켓을 구입해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선택지는 없다. 극장이 마련한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영상과 소리를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린다. 그러나 OTT를 통해 영화를 보게 되면 언제든지 영화를 중단할 수 있고, 10초 후로 건너뛸 수도 있다. 즉 큰 틀에서 수용자란 입장은 변함이 없지만, 아주 미비한 정도로 참여의 여지가 발생한다. 당신이 위 두 가지의 경우 각각의 상황에서 영화를 제작한다고 상상해보자. 극장 상영을 염두에 뒀다면, 제작에서 우선되는 지점 중 하나는 ‘어떤 영화로 극장에서 관객을 마주할 것인가’가 될 거다. 반면, OTT를 통해 공개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어떻게 시선을 잡아끌고 최대한 오래 머물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거다. 같은 소재로, 같은 플롯으로, 같은 스태프가 참여해 제작하는 영화라 해도 분명 다른 영화가 완성된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와 영화가 맺는 관계 그리고 그 상호작용에서 말미암을 영화산업 전체의 변화는 사실 몇 년 전부터 현재진행형이다. 봉준호, 마틴 스코시즈, 스티븐 소더버그, 알폰소 쿠아론 등 이 시대의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이 OTT 기업과 손을 맞잡았고, “리틀 드러머 걸”의 박찬욱, “하우스 오브 카드”의 데이빗 핀처, “킹덤”의 김성훈과 같은 영화 감독이 시리즈 연출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아마 앞으로 더욱 다양한 콘텐츠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혹자는 이런 변화를 두고 ‘극장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 다른 이는 그럴수록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극장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심지어 영화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현재 상황은 영화산업의 지형, 그 변화에 관한 논의가 뜨겁게 달궈지는 중간 지점에 있다.
대중문화 중에서도 특히 영화산업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역동적인 변화의 역사를 통과했다.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흑백 영화에서 컬러 영화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3D로, 4D로. 그 변화는 대부분 영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오늘날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OTT로부터 비롯된 영화산업의 변화 역시도 훗날, 전례와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당장 답을 내릴 순 없으나, 이 격변의 과정을 좇아가다 보면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이 따라붙는다.
“영화, 또는 영화를 본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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