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2020년 5월호

거짓말처럼 과거의 일상이 사라진 오늘을 살고 있다.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우린 전부다 마스크맨이 되었다. 왠지 미래를 향한 기대감이 하루하루 조금씩 상실되어가고 있는 듯한 막연한 하루가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는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이번 5월의 ‘월간 영감’은 포토그래퍼 김도예, 프로듀서/DJ 자넥스, 이태원의 바 ‘232’의 대표 최재형이 함께했다.

글을 죽 살펴보니 소소하고 귀여운 생각도 하고, 시팔 조팔 멍청한 세상 같은 생각도 하고, 난 왜 병신이지라는 생각 등 다양하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인류를 영원히 보존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는 생각은 너무 귀엽기 때문이다.


대화 / 최재형

232를 오픈한 지 벌써 4년차가 되었다. 오픈 준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 대화란 내가 주체가 되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주체가 되기도 하며, 개인과 개인, 단체와 단체, 개인과 단체 등 다양한 인원과 주제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난 그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화한다. 232는 나에게 물질적인 이윤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창구가 되어 주었다. 고객 혹은 지인들은 클래식 바? 펍? 카페? 음식점? 등 232는 무엇인지 물어보곤 한다. 심지어 레코드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티셔츠도 만들며 전시회도 연다. 물론 바(Bar)라는 인식이 가장 강하지만, 위 내용 전제하에 232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경우 나는 우리만의 개성을 가진 공간이라고 대답한다. 232는 나 혼자만의 아이디어나 기획으로 생긴 공간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영감을 받고 생긴 공간이다. 앞으로도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232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산책 / 비전

여름 산책은 덥고 겨울 산책은 춥다. 봄, 가을 산책이 좋지만, 그것은 짧다. 산책은 머무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걷는다. 나는 산책을 즐겨한다. 삼십 분에서 길게는 두세 시간까지 이어지는 나의 산책엔 주로 음악이 함께한다. 무언가를 먹기도, 주변을 구경하기도 한다. 나에게 산책은 일종의 여행이다. 산책하는 동안 나는 이방인이라도 된 듯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산책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목적을 둔다면 운동에 가까워질 것이고, 결과를 바란다면 노동이 될 것이다. 산책은 과정이다. 결과주의적 관점에서는 남는 게 없는 일이긴 하다. 집에서 출발해 집으로 돌아오니 말이다. 그렇다고 산책의 효과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산책엔 정해진 시간이 없다. 잠들어 있지 않다면 언제든 산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든 하지 않는 것 또한 산책이다. 산책 중 방향감각은 상실되고 길의 의미는 없어진다. 가끔은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향하는 듯하지만 나의 무의식은 그렇게 대범하지 못하다. 한번 늘려놓은 범위는 좀처럼 변하질 않고 끊임없이 맴돌 뿐이다. 어떨 때는 같은 길을 서너 번 배회한다.

산책은 나에게 명상적 시간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시간은 신의 언어라고 믿는 나에게, 산책은 그의 말을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창조를 모방하는 우리에겐 그의 언어를 듣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물고기가 숨쉬기 위해 수면으로 떠오르듯, 우리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지만 틈에 걸쳐 호흡할 수 있다. 그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우리의 시간은 상대적이고 비선형적인가.

최근엔 산책하다가 박찬욱 감독님을 마주쳤다. 산책 중 그렇게 내가 동경하는 것과 마주칠 때면, 마치 서로서로 이끄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단단한 착각이다. 하지만 그렇게 불어오는 바람을 난 손으로 막고 싶어도 막질 못한다. 나에겐 영감은 그렇게 온다.


자화상 / 자넥스

과거를 돌이켜 회상하자면 그 당시에는 순수한 예술적 갈망에서 비롯된 탐구보다 잡다한 허영심을 작업으로 풀어나가지 않았나 싶다.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모습이 예술가들에겐 매력적이고 초창기엔 그런 힘으로 발전해나가는 거라 그 부분을 성장기에서 아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며 다시 돌아봤더니 내 열정은 어떤 순수한 예술적 갈망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열정뿐이었던 거 같아서 자괴감이 든다. 간단히 말해서 허세와 허영심이다. 난 또 그걸 어린 나이에 허세와 허영심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엔 진심이었지만 나이 든 내가 볼 땐 그저 어린애가 포장하는 행동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허세와 허영심에서 나온 성과는 꽤 들을 만했다.

그래서 예술적 허영심과 허세가 벗겨진 뒤 감당해야 하는 부분을 생각지 못 한 채로 30대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돈이나 결과론적으로 모든 게 귀결돼버리곤 했는데 세상이 기대하는 만큼 살지 못하기에 그런 질문은 나를 괴롭히곤 한다. 20대처럼 예술적 허영심에 빠져 패기 넘치게 말하기엔 스스로 사회적인 나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고 내가 활동하는 부분이라든지 실태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너무 구차했다. 하지만 그런 눈에 보이는 결과나 돈이 아닌 내 신념이나 철학을 세워서 그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삶을 관통하는 멋진 한두 마디로 소모적인 대화를 정리할 수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보이기에 열중한 나는 결론적으로 스스로도 그런 쓸데없는 자극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남들에게 보이기 급급하며 편법과 술수만 반복하며 진짜인 척을 하려던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할 시간이 있겠는가. 생각할 시간은 둘째치고 생각이나 있었나. 어쩌면 과거 예술가들이 다들 미친 적 술독에 빠져 사는 모습도 속세의 일을 다 잊어버리려 그런 건 아닐까 싶다. 그래야 철학도 필요 없고 온전히 탐미적인 미를 추구하기 위해 작업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사실 남에게 한방의 펀치 라인을 보여주고 내가 편하기 위해서 그런 철학과 신념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 허영심을 뽐내며 살 수 있는 자리들을 내어주고 있는 터라 새로운 연료를 주입해야만 한다. 정말로 강력한 연료가 필요하다. 앞으로 평생 음악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 말이다. 짧은 시간 안에 생각할 수 없겠지만 계속 생각하고 작업에 옮기고 싶다. 또 이렇게 생각하는 게 진짜인 척을 하려는 하나의 술수일 수도 있다고 느낀다. 일차적으로 몇 년 안에 자신을 검열해서 이 질문에 답하고 음악가로 계속 갈 건지 멈출 건지 스스로 물어볼 예정이다. 그전에 생각보다 볼만한 작업을 끝낼 것이다. 이왕 비상업적인 바닥에 발을 들여댔으니 이 정도 생각은 해야 하지 않을까.


목표의식 / 박진우

‘흔들림 없는 목표의식’이라는 가사가 포함된 주석의 노래가 떠오른다. 무슨 노래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저 아홉 글자와 주석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최근 목표의식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한다. 맨 처음 비즐라를 시작한 20대엔 ‘우리도 외국의 뭐뭐처럼 해보자’, ‘한국엔 이런 게 없어. 이런 멋있는 걸 해보자’, ‘저 형들은 따분해, 우리가 더 잘해보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비즐라. 웹진의 안정적인 유지와 정기적인 책을 만들자는 데 큰 목표를 두고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실제로 하나둘씩 달성되어 버리니 나는 개인적인 목표가 없어졌다. 이게 롤이면 골드니 플레니 심플하게 목표를 잡을 수 있겠지만, 단순 명료했던 목표는 ‘목표들’이 되고 너무 많고 복잡해져서, 목표를 잡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막연히 향할, 막연히 바라볼 곳이 없어진 것이다.

비즐라 친구들은 잘하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코로나의 예상치 못했던 괴롭힘이 추가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새로운 목표 설정으로 고군분투한다.

비즐라의 혁인이가 나한테 “형은 자꾸 외딴섬에 있으려고 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형한테 말이 좀 심하지 않나. 농담이다. 나는 근래 아니 여태껏 복잡함과 피곤함을 기피해왔고, 도전의식이 사라졌다고 느낀다. 새롭고 명확하고 발전적인 목표를, 구체적인 명제를 머릿속에 그려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는 지점이 바로 ‘내 방식대로’다. 안 그러면 억지로 하게 되어 일을 그르친다.

이쯤 돼서 처음에 말한 ‘흔들림 없는 목표의식’이라는 가사가 포함된 주석의 노래가 무엇인지 찾아본다… 그렇구나. 이 노래는 “정상을 향한 독주”였구나. 많이 들었는데 왜 몰랐지. 아무튼, 흔들림 없는 목표의식이란 말은 목표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자, 이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노트와 연필을 꺼내서…


꿈 / 김도예

난 개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악몽도 정말 많이 꾸는 편. 그래서인지 꿈에 관해 항상 궁금증이 많았다.

대학생 때 아빠가 딱 하나 바란 점이 교직이수여서 여러 가지 교직 수업을 들었는데,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관한 거라 그런지 심리학 수업이 많았다. 난 평범하고 게으른 학생이라 당연히 수업을 몇 번은 가고 몇 번은 안 갔고, 하필 랜덤으로 출석하는 수업에 꼭 이름 부르는 날 안 가서 F를 맞았다. 그래도 인자한 교수님께 기회를 한번 더 받았는데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리포트 7장과 마인드맵을 A3 사이즈로 그려서 제출하면 C는 보장해준다는 것. 이왕 시작한 김에 수업 하나로 다 된 거 못하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책 제목이 평소에 흥미 있던 주제라 해보겠다고 했다.

학자가 꿈에 관해 쓰다니 내 꿈에 대한 궁금증도 풀릴 거 같았다. 그런데 웬걸, 철없이 할머니가 전날 꾼 꿈 해석해주는 느낌을 기대하고 책장을 폈는데, 엄청 두꺼울뿐더러 뒤로 갈수록 에고가 어쩌고 저쩌고 너무 심란해서 대충 짜깁기해서 꾸역꾸역 집어넣은 기억이 있다. 몇 년이나 지나서 최근에 중고서점에서 좀 추려지고 얇아진 ‘꿈의 해석’ 책을 봤다. 반가워서 그리고 저렴해서 다시 사봤고 요즘엔 그 책에 푹 빠져있다.

그 사람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지금은 마음의 병이 당연한 거지만, 몸의 일부가 아파야만 진짜 아픈 거라고 생각했던 옛날 시대에 프로이트는 아주 옛날부터 마음과 머릿속의 병도 실제로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때 당시에 논란이 많았던 학자다. 내용을 깊게 보면 이론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어서 다른 학자들에게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이 내용은 끝도 없으니 여기까지 말하도록 하고 어쨌든 무의식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 그의 말로는 꿈은 우리의 무의식 세계라고 한다. 얇아진 책 안에는 꿈의 세계와 무의식에 관한 내용이 재미있는 사례와 함께 어려운 부분도 쉽게 풀어서 쓰였다(동시에 최근 “Manchurian Candidate”라는 영화를 보고 CIA의 무의식 중 인간 세뇌에 관한 미스터리에도 같이 빠져있었다).

책 중 초반 부분에 나온 재밌게 읽은 부분은 우리가 아는 영화 “매트릭스(Matrix)”의 모피우스가 우리가 초등학생 때 읽었던 그리스 신화 중 꿈의 신 모르페우스의 영어식 명칭이라는 거. 모르페우스는 꿈을 꾸는 사람과 관련된 모습으로 꿈에 등장해 중요한 얘기를 해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한 가지 일화는 배를 타고 떠나서 바다에 빠진 남편을 살아있다 생각하고 매일매일 기다리는 부인이 너무 가여워서 꿈의 신 모르페우스가 남편의 모습으로 그 부인의 꿈에 나타나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해줬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내용들을 읽으며 잠깐 옆으로 새서 “매트릭스” 해석을 또 찾아보고 내가 네오라면 파란 약 빨간 약 중 그러니까 꿈(가상 세계)과 현실 중 뭘 택했을지도 상상해보고, 그럼 이 감독도 나처럼 개꿈을 많이 꿔서 모르페우스 이야기까지 알아냈던 건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름의 조사(?) 끝에 결론은 하나도 없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왜 그런 꿈을 꿀까? 왜일까? 하는 생각에서 책도 보고 그렇게 또 연관된 영화로도 넘어갔다가 또 연관된 노래의 가사도 찾아보고, 나에게서 시작됐지만 다른 사람들도 하는 이런 잡생각과 그렇게 쓸모 있지는 않은 수다들이 항상 흥미롭고 재밌다. 한참 그러고 있다 보면 본업인 사진으로 돌아와 사진도 그런 맥락으로 약간 덕질처럼 다시 시작한다. 리서치하는 느낌이 아니라 궁금하고 재밌어서 작가들 사진도 찾아보고 왜 이렇게 했을까 인터뷰도 찾아보고 가끔은 어디 사는지 과거는 어떨지 혼자 상상해본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나도 찍고 싶은 게 또 생기는 거 같다. 그래서 나의 영감을 생각했을 때는 그냥 이런 생산적이진 않은 딴짓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내가 하는 딴짓이 내 꿈을 분석해보는 일이어서 짧게 이야기해봤다.

이 에세이를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서 영감을 찾나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의 경우에는 아주 개인적인 경험부터 그리고 ‘왜?’에서 시작된, 즐길 수 있는 덕질 같은 딴짓인 거 같다. 그러다 보면 매번 그럴 순 없겠지만 조금은 진지하지 않아도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좋은 영감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거 같다.


에디터│박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