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r Are You From ? – JANGSTER

패션의 취향과 가치관은 상대적이다. 어떤 이는 슬리퍼 하나에 20만 원을 투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20만 원으로 슬리퍼도 사고 티셔츠도 사고, 남방도 산다. 너덜너덜한 티셔츠를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이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옷은 이렇게까지 논할 거린가 싶을 정도로 단지 생필품에 지나지 않는다.

제 아무리 가치관이 다양하다 해도 역시 사회는 1등을 선호하는 걸까.. 잡지는 트렌드를 좇고 트렌드는 최신 동향을 반영한다. 각종 매체는 패션 인플루언서를 다루고, 저마다 자신을 뽐내기 바쁘다.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옷’을 통해 본능적인 미적 욕구를 실현하려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 그게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막상 새로운 뉴스와 패션 동향을 매번 살펴야만 하는 상황이 주어지니 가끔은 ‘잘’ 입기 위한 정보 싸움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어찌 됐든 우리는 모두 옷을 입는데 말이다.

‘Wear Are You From’은 쏟아지는 발매 소식과 스타일 정보에 피곤함을 느꼈을 독자를 위해 패션보다는 옷과 그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구매 이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흑역사를 남긴 옷, 현재 가장 아끼는 옷, 구매하지 못해 후회하는 옷 등… 사연의 제약은 없다.

누군가 왜 이 기획을 진행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가 궁금해서라고 답하겠다. 우리 인생에 끝없이 동반되어온 옷에는 당연히 저마다의 경험이 스며들어있지 않을까. 불특정 개인을 거친 옷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알아갈 수 있는 지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첫 타자는 VISLA에 출근하게 된 이후 많게는 일주일에 다섯 번 뵙는 VISLA 매거진의 디렉터 최장민이다. 독특한 의류를 소개할 것 같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그는 리바이스 501을 선정했다. 아래 글을 통해서 특정 옷에 얽힌 그의 이야기를 확인해보자.


최장민(@Jangstersf)

먼저 옷에 대한 글을 쓰게 돼서 기분이 묘하다. 의류를 소장하는 것, 그리고 외출 전 그 옷을 어떻게 입을지 생각하는 찰나의 고민은 내 삶의 작은 기쁨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옷장을 채운 옷의 개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구매한 의류는 손에 꼽는다. 그 중엔 내가 가장 오랜 시간 재구매를 반복한 리바이스 501 검정 청바지가 있다.

처음 리바이스 청바지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지금에야 오래된 단어지만 당시 패션은 힙합, 세미 힙합, 캐주얼 등으로 구분되었으며 인터넷을 통해 ‘니뽄삘’이라 불리는 도쿄 스트리트 패션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서울을 대표하던 스타일(힙합, 세미 힙합, 캐주얼)보다 세련된 것처럼 느껴진 의류와 아이템, 헤어스타일을 그렇게 불렀던 거 같다. 아직도 니뽄삘에서 볼 수 있던 바람막이, 힙색, 나이키의 덩크 또는 알파 프로젝트 신발, 두 번 롤업해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리바이스 팬츠 등이 기억난다. 대부분은 서울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제품이었고, 중학생인 내가 그런 제품을 살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다른 제품은 몰라도 리바이스 501은 근처 백화점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01년, 분당 서현역 삼성 플라자(현 AK 플라자) 리바이스 매장에서 무려 10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501을 구매했다. 아무리 프리미엄 진이 아니라해도 당시 501은 중학생이었던 내가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중3 겨울 내내 청바지 하나로 멋쟁이가 된 듯한 뿌듯한 느낌을 만끽했다. 친구 누군가에게 얻은 슈퍼스타 흰/빨에 이 리바이스 바지를 입었을 땐 슈퍼 패셔니스타가 되었다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뭔가 멋을 부리기 시작한 중3으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우리 가족은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간은 옷에 대한 관심보다는 미국 생활의 적응이 훨씬 큰 우선순위였다. 그때는 오히려 컴퓨터를 많이 하며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다양한 것을 접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러 21살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야 제대로 미국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7년, 스키니 진이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난 주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친구들의 패션에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건너온 더블 웨이스트 팬츠를 끝으로 특이한 바지핏과의 작별을 원하고 있었다(더블 웨이스트 팬츠는 일본에서 탄생한 허리 2개가 달린 새로운 바지였다). 백 투 베이직하고 싶던 나에게 리바이스 501과의 재회는 운명과도 같았다. 당시는 면바지보단 여전히 청바지가 강세였고, 검은색의 청바지가 흔하지 않을 때였다. 그 점이 좀 더 내 관심을 끌었다.

이건 약간 TMI지만 검은색 바지를 선택한 이유로는 핏이 좀 더 여유로워 보인다는 점도 한몫했다. 실제로 같은 501 바지라도 청색의 경우 핏이 너무 붙는 것 같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게다가 검은색 바지는 왠지 다른색 바지보다 무릎이 덜 나와 보이는 느낌이다. 바지를 너무 새 제품으로 자주 바꿔 입고 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무릎이 나와 보이는 바지를 입고 싶진 않기에, 검은색 청바지야말로 만족스러운 선택이 된다.

핏도 핏이지만 비싼 의류를 사지 않는 나에게 미국 가격으로 50불 수준이었던 501은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리바이스 501의 핏은 스탠다드 스트레이트로 큰 특징이 없는 편이다. 다양한 바지핏 사이에서 오랜 역사와 함께 가장 스탠다드한 핏을 지닌 501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내게 가장 클래식한 청바지로 남았다. 마침 몇 개월 전 무릎이 너무 나온 탓에 501을 버린 이후 아직 새로 구매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며 다시 하나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저렴한 가격에 리바이스 501 검은색을 살 수 있는 곳은 어딜지 고민하며 오늘 웹서핑을 해봐야겠다.

최장민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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