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쳐 도망치고 싶었던 경험이 있는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난감한 상황… 이를 접했을 때 우리 대다수는 빠르게 상황을 모면하곤 하는데, 그 불편함의 정도는 각자가 지닌 패션에 대한 관심에 비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옷 못 입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패션을 향한 관심이 상위 평준화되어있다.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 비슷한 착장의 무리가 형성되고 또 빠르게 흩어지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는 지하철이나 거리, 카페 등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걸 모순이라고 해야 하나. 잘 입으려는 욕망과 못 입지만 않으려는 마음의 합산이 결국 모두가 비슷해지는 현상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자의로 흔해지는 과정을 택하지만 똑같은 옷을 마주치는 상황은 지극히 불편해하는 우리의 시선은 결국 가장 ‘본인답게’ 옷을 입는 이에게 쏠리게 된다.
이에 기획자는 무뎌질 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유행의 늪에서 모델 겸 창작자로 활동, 하나의 개성적인 아이콘을 구축한 박미정(@m__im_i)에게 생각을 묻기로 했다. 우리에게 @m__im_i라는 인스타그램 아이디명으로 더 알려진 그녀는 소셜 미디어 내 이미지를 통해 쥐도 새도 모르게 많은 이들의 패션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런 그녀는 어디에서 영향을 받아, 지금의 ‘본인다움’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을까. 박미정의 이야기는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미정(@m__im_i)
살아오면서 몇 번의 스타일 변동이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어서 짧고 딱 붙는 힙합 느낌의 옷을 많이 입었는데 아마 투에니원 박봄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오이 유우나 그라임스에 빠져서 보헤미안인데 엄청 그런지한 스타일로 지냈죠. 빈디(Bindi)도 붙이고 레이어드 룩에 파스텔톤을 주로 입었어요. 고등학교 때 미국에 있을 때 제 옷장의 80퍼센트는 빈티지숍에서 구매한 것들이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스타일이 계속 조금씩 바뀌다 보니 옷은 새로 사고 싶은데 돈은 모자라서 정말 창고 같은 곳에서 2~3만 원 정도 내고 한 무더기씩 구매했죠. 이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지금도 제 옷장을 보면 거진 90퍼센트가 세컨핸드 빈티지예요. 조금 색이 바래고 천이 늘어진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고 패션산업이 지구환경에 제일 큰 오염원이니 이미 있는 옷들을 잘 보존하고 기워입으며 팔고 구매하는 게 이제는 제 스타일의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답니다.
주변에 옷과 액세서리 만드는 친구들이 많아요. Lucky Jewel(@lucky__jewel)은 친구들이 운영하는 DIY 패션 이벤트인데 여기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는답니다. 이미 있는 옷들을 해체하고 새로 재봉한 후 손으로 염색해서 완전 새로이 탄생시키는데 딱 보면 그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담겨있는 게 느껴져요. 사연과 제작자의 손 그리고 시간 이게 적절히 어우러져 평생 고이고이 잘 입고 싶어지죠. 한 철 입고 바로 싫증 나는 옷들이 아니고요. 이미 너무나도 공론화되어 다들 아실 테지만 패션산업은 정말 쓸데없이 커요. 특히나 패스트 패션 시스템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값어치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요. 옷이 비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원(₩) 앞에 붙어있는 숫자의 수가 낮더라도 우리 개인이 그 물건에 대한 가치를 새로 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구에 아직 헌 옷들을 버릴 수 있는 공간이 많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렇게나 버리고 언제나 옷을 만들 수 있는 자원이 우리 바로 곁에 있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구매하죠. 도처에 깔린 게 소비를 촉진하는 광고와 가게뿐이니까요.
인스타그램과 셀럽 문화도 큰 몫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 일부분이고 저 자신을 엄청나게 검열하려고 합니다. 한참 멀었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요, ‘우리가 개인에게 얼마만큼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요. 우리가 욕망하는 것에 다다르고 싶어 하고 욕망 당하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중심에는 우리를 인형처럼 움직이게 하는 거대 자본이 뒤에서 떳떳이 버티고 있는걸요. 아이언맨에서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쌔끈하고 미끈하게 코팅된 빨간색의 엄청나게 비싼 강철 슈트는 우리는 언제나 새것과 럭셔리한 것들을 욕망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성공’을 위해선 그것들을 소유하거나 곁에 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죠. 저도 너무 많이 부족하고 환경오염에 손을 더하고 있으면 있지 덜 하고 있진 않다는 걸 알아요. 자본주의 시스템 밖으로 떨어져 나와 부의 재분배와 환경보호를 외치면서도 저 자신조차 안락함과 사회에서 습득한 욕망을 채웠을 때 오는 만족감에 질 때도 자주 있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검열하려 합니다. 대신 그 검열이 계속 욕망과 싸워야 하는 방법보단 욕망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만족과 행복의 기준이 좀 더 개인으로 돌아오는 거죠.
• 아끼는 옷은 제 친구가 만들어준 바지예요. @xxmaevexx9620에게 기장을 좀 길게 만들어달라 부탁했는데 제가 소유하고 있는 바지 중 단연코 제일 긴 바지입니다. 아무래도 친구가 만들어준 바지다 보니 다른 바지에 비해 몸에 착 감기는 느낌도 훨씬 좋고 운동복 바지 재질이라 편하게 잘 입고 다니는 옷이에요.
• 특별한 추억이 있는 옷은 온라인 빈티지숍에서 구매한 베르사체 핑크 탑이에요. 사랑하는 사람과 첫 만남 때 입었던 옷이랍니다. 여러 가지 폰트에 관심이 있는데 이 탑에 쓰여 있는 글자들이 ‘Rasom Effect’ 폰트인 게 마음에 들었어요.
• 현재 가장 아끼는 옷은 aplain.kr에서 구매한 노란색 바지요. 평소에 무채색을 많이 입는 편인데 최근 옷장에 다양한 색들을 채워 넣는 중이에요. 알맞은 명도와 채도의 밝은 옷들에 계속 관심이 가요. 다홍색, 주황색, 핑크색, 노란색 등등 제 퍼스널 컬러가 여름 쿨톤이라고 해서 항상 어두 튀튀 한 무채색 옷을 많이 입었는데 요즘은 입고 싶은 거 그냥 마음대로 입으려는 편이에요.
• 제가 리폼에 도전한 옷들은 @corintz에 가시면 보실 수 있어요. 위에 서술한 것처럼 헌 옷을 자르고 꿰매서 취향에 맞게 고치는 걸 좋아합니다. 사진상에 있는 앞에 리본이 여러 개 달린 옷도 제가 만든 옷이에요. 만드는 것은 재봉틀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소재료들이 구비되어야 해서 섣불리 시작하기 어려우니 동네 세탁소에서 핏만 조금 수선해도 훨씬 더 마음에 들게 입을 수 있을 거예요. 재봉할 수 있는 친구에게 수선비와 같이 수선을 부탁해도 되는 거고요. 패스트 패션을 소비하는 게 효율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계속 손이 가겠지만, ‘그 효율을 따져가며 얻은 시간으로 우리는 무얼 하고 있나?’라고 생각해보면 오래 입을 옷에 시간과 노력을 조금 투자해도 괜찮겠다 싶어요. 계속 이 얘기로 돌아오는데, 이 놈의 사회는 우리의 시간마저 자본화시켜서 항상 아까워하고 동동거리게 만들잖아요. 패스트 패션을 지양하고 기업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공동체 안에서 순환하는 옷들이 많아졌을 때 새로운 패션 흐름이 또 나타나지 않을까요.
• 여행에서 구매한 옷은 모네의 연못 시리즈 티셔츠인데, 파리에 갔을 때 어머니께서 사주셨어요. 어머니가 엄청 멋쟁이에요. 저렴한 옷을 직접 자르고 수선 맡겨서 새로운 옷으로 탄생시키는 재주가 있어서 제가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함께 파리에서 모네 전시를 보고 어머니께서 기념으로 구매한 뒤 저에게 웃으시며 건네준 이 모네 티셔츠가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옷들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을 때 훨씬 힙하고 쿨하고 멋있는가?’라고 하면 대답은 ‘아니오’인데도 불구하고 제일 아끼는 옷이자 자주 입는 옷이에요. 이런 옷들이 옷장에 많아진다면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