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겨워 죽겠다. 코로나가 또 터졌다. 서두에 코로나 좀 그만 언급하고 싶다. 어쨌든 코로나 이후 다들 냉정한 사람인 것처럼 차분히 뉴 노말, 뉴 노말을 말하지만, 스스로도 인지 못 한 스트레스 덩어리를 엄청나게들 이고 있을 것이다. 그 피로도는 네이버에 ‘마스크 착용 요구’라는 뉴스를 검색하면 나타난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한테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했다가 폭행 사건이 일어난 게 벌써 3달 새 160건이 넘는다는 뉴스가 검색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코로나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누그러뜨리고 끈질기게 행복을 추구했으면 한다. 2020년이라는 신세계가 열린 지 8개월차! 친구들은 어떤 영감을 받았을까. 더컷 스튜디오(The Cut Studio)의 정지윤과 그래픽 디자이너 신재호, VISLA의 편집장 권혁인, 그래픽 디자이너 박진우가 함께했다.
고통 – 신재호
서울에 작업실을 구했다. 이제 두 달 뒤면 1년이 된다. 작업실이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식주 걱정 없이 집에서 편하게 작업하던 나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고 일거리마저 떨어져 나갔다. 당시 상황에서 내가 변화하려면 무엇인가 나를 지속적으로 긴장하게 할 수 있는 큰 고통이 필요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작업실을 질렀다. 월세를 잘 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일단 ‘살려면 뭐든 못하겠나!’라는 생각으로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아직까지 서울 한복판에서 버티고 있는 내가 다행(?)이면서도 걱정이다.
예전엔 ‘즐거운 일’이라고 여기던 내 일이 ‘의무적인 일’이 되면서 즐거움을 잃어버린 적도 많지만 요즘엔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기, 청소하기, 컴퓨터에 앉아 밤을 새우는 일 모두 즐거운 일이 되었다. 요즘 생각해보면 무리해서라도 서울에 작업실을 구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정되기까지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덕분에 나는 더 강한 생존력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다. 그래서 고통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잠시 고통을 이겨냈을 때 만족감이나 행복이 오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잠깐의 행복에 빠져있지만 곧 고통을 찾고 느끼며 다시 돌아올 잠깐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발전하기를 반복하며 지내고 싶다.
비현실적 감정 이입 – 정지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사소한 사물에 감정 이입해서 그것들의 삶을 상상해버리고 만다. 이를테면 치킨의 ‘윙’과 ‘다리’만 담은 콤보 치킨을 시킬 때마다, 이 사실이 만약 닭장에 갇혀 있는 닭들에게 알려지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분명 어떤 예리한 닭 한 마리가 친구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너네도 요즘 돌고 있는 그 무시무시한 소문 들었지? 월말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닭들 말이야!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우리한테 음식을 공짜로 주는 그 생물체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 토막을 내서 튀겨 먹는데!”
이 말에 그 구역 닭장에 갇힌 닭들은 패닉한 채 차라리 굶으면서 저항하지만, 결국 똑같이 잡혀가 날개와 다리로 분리되고 종이박스 안에 포장되어 우리 집 앞까지 배송된다. 참으로 가여운 운명이다. 그들도 나름의 가족애, 사랑, 배신 등의 감정을 느끼며 본‘계’들의 삶을 살았을 텐데, 하고 이따금 진지하게 애도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음식들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꼭 슬프지만은 않다.
얼마 전에 갔던 일식집에서 네기토로 바게트 전체를 주문했다. 기대를 품고 그릇이 등장하기를 기다렸는데, 참치의 느끼함이 생각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거북한 요리였다. 실망감을 감추며 참치 밑에 깔린 시소를 다른 요리에 딸려 나온 딸기에 돌돌 말아 입안에 넣었는데, 순간 귀에 환청이 들렸다. ‘마녀사냥’에서 그린라이트 폭죽이 터질 때 나는 그 소리다. 심지어 폭죽이 눈앞에서 보이는 환각까지 일어났다. 이에 난 감탄하며 시소의 인생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시소가 고등학교에 다녔다면 에너지 넘치고 팀플을 되게 잘할 거 같은 그런 똘똘이였을 거 같아!”
“딸기는 왠지 고등학교 때 안경을 낀 못생긴 너드(Nerd)였지만, 대학교에 가서 탈바꿈해 인기 많아진 그런 여자였을 거 같아”. 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하자, 남자친구가 맞장구쳐주었다.
“토마토는 과일한테도 집적대고 채소한테도 집적대면서 몰래 이간질했을 루저였을 거 같고…”
“포도는…”
“와사비는…”
이렇게 우리의 대화는 30분째 끊어지질 않았고, 식탁에 놓인 음식을 한 번씩 다 훑고서야 멈췄다. 그리고 이 대화가 끝날 때쯤, 우리 앞에서 묵묵히 요리하던 셰프님이 슬그머니 시소를 접시에 가득 채워서 리필해주셨다. 코로나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는 덕분에 나는 전혀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확실히 삶이 풍부해지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한다. 재료를 사람 취급하다 보면 결국은 대화까지 시도하는 게 아닐지, 하고 말이다.
와인킹과 스승들 – 박진우
놀랍게도 유튜브의 와인을 다루는 채널 중 구독자 1짱 채널은 한국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와인킹’이다. 본래 와미남(와인에 미친 남자)를 주로 봤으나 최근에 와미남이 취업한 후 업데이트가 빠르지 않아서 다른 볼거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와인킹이었다. 와인킹은 유머감각이 내 스타일이 아니고, 뜬금없는 영상도 자주 올라와서 영상을 다 챙겨보진 않았다. 하지만 와인킹 선생님의 나이가 46세라고 하니, 그것을 감안하면 왠지 존경심을 갖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킹의 콘텐츠 중 굳이 챙겨보는 시리즈가 있는데, 그가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두분(?)이 나오는 영상이다. 와인킹의 스승은 마스터 오브 와인이다. 마스터 오브 와인이라 하면 1953년 이후, 366명만이 합격한 극한의 난이도의, 와인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예민하게 타고난 눈과 코 그리고 혓바닥이 없으면 불가능한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시험을 보려면 와인업계에서 5년 이상 일해야 하고, 강의 및 세미나 수강을 하는데 최소 2년이 소요된다고.
암튼 와인킹의 두 스승은 그 마스터 오브 와인(이하 MW)인데. 8월 24일 업데이트된 영상에서 그 멋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나는 와인을 가끔씩 마시면서도 값비싼 와인들은 안 마셔봤고, 그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의구심이 있었다. 아니 시발~ 얼마 이상 넘어가면 비슷해서 베테랑들도 잘 모르는 거 아니야~? 별 차이 없는데 비싸서, 브랜드 빨로 맛있게 느껴지는 거 아니야~? 했는데 이 영상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와인킹은 세 종류의 와인을 준비해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MW 할배들과 진행한다. MW 할배들은 소름 끼치게 와인의 산지, 품종, 등급 등을 귀신같이 추측한다. 그 추측해 나가는 과정도 굉장히 흥미롭다. MW 할배들의 츤데레적 거친 입담 또한 굉장히 매력적이다. 혹시나 찾아봤던 다른 와인 유튜브 채널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면, MW 할배들의 매력 속으로 빠져보면 어떨까. 부르고뉴의 포도 농장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농사꾼이 되어 하루를 고되게 일하고 담배 한 대 피우며 숙소로 돌아오는 나를 상상해본다…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FYnZrGe2ds4&t=
OKR – 권혁인
지난해 2분기부터인가, OKR이라는 목표 달성 방식을 VISLA라는 친목 집단과 회사와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 그룹에 대입하려 하고 있다. 우선 세계의 정보를 모두 수집한다는 일념 아래 차근차근 디지털 세상을 자신들의 발아래 놓고 있는 구글(Google)에서 도입한 방식이라길래 규칙과 프로세스를 다질 필요가 있던 우리로서는 마치 잘 드는 부적이나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OKR은 텍스트로만 보면 참 별거 없이 단순한 내용이다. 서적 ‘OKR’의 저자 존 도어는 OKR이 조직 전체가 동일한 사안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만드는 경영 도구라 말한다. O는 조직이 달성해야 할 목표로 구체적이고 어려운 목표를 지향해야 하며, KR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결과로 ‘측정’과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 OKR은 합리적인 판단에서 추출한 조직의 가장 중요한 목표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래서 그 OKR이라는 어딘지 사짜 같은 이 말이 우리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게 했느냐고 한다면 아직은 좀 더 실효성을 증명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하겠다. 이것이 우리의 다음 단계를 담보한다고는 확답할 수 없지만, 적어도 눈앞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해질 때 마치 이정표처럼 수시로 들여다보면 그럴듯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효험은 있다.
그렇게 OKR을 생각하다 문득 어느 일요일, 대청소를 마치고 하릴없이 누워서 책장이나 몇 장 펼치다 말다 아무 외부 요인도 없이 괴로워하고 있는 나를 보니 과연 나라는 인간의 OKR은 왜 없는 것인가? 혹은 그런 계획이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맴돌았다. 나는 불만족스러운 몸뚱이와 정신을 지닌 채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또한 20대 대부분의 세월은 술과 친구들로 보냈기에 딱히 특정한 목표를 세우고 살아왔다고도 할 수 없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피 끓는 청춘으로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거나 심지어 약관의 나이에 무언가의 성취를 이뤄낸 이들도 있는 반면에 나처럼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술과 담배만 푸던 청춘도 있는 것이다.
VISLA라는 배에 올라타면서부터 나는 어릴 적에는 알지 못했던 철학자, 사상가, 작가, 예술가 등 온갖 옛사람을 책으로 접했다. 번개장터에서 구매한 중고 소파를 통해 짧게는 20세기부터 길게는 몇백 년의 세월을 거스르는 동굴을 지나 그들의 삶과 철학을 미약하게나마 추체험하는 그 시간이 내게는 처음으로 내 의지에서 비롯된 공부 같아서 때로는 즐겁기도 하고 때로는 ‘왜 내가 이 지랄병을…’이라며 뇌까릴 때도 있다. 동시에 그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리 또한 체감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의 업적이 나로서는 수백 개의 KR을 달성하더라도 결국 따낼 수 없는 O는 아닐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나는 시간을 쪼개어 쓰다가도 또 어디에선가 쉽게 만족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불현듯 범인의 숙명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또 그럭저럭 살다 보니 삶이라는 건 OKR이라는 목표 달성 도구보다는 천천히 그려나가는 지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성취에 목매다가 눈앞의 즐거움까지 놓치지는 말아야겠다며 글 말미에서 안쓰러운 내 몸뚱이를 또다시 위안해 본다. 만약 나라는 사람의 OKR이 있다면 그 O에는 내게 열등감을 안겨주는 이름이나 그들의 성취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 자신 그리고 VISLA라는 이름이 표기될 일이기에 지금 이 시간부터 영원히 무덤으로 먼저 보낼 나를 갉아먹는 열패감에 한 줌의 위로를 보낸다.
에디터│박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