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영감│2020년 9월호

네이버 어학사전에 영감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이 뜬다.
1. 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 2.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영화, 드라마. 무엇을 봐도 더는 새로운 것은 없는 듯하다. 답습의 답습의 답습이고 기존의 것을 살짝 틀어서 우리의 뇌를 자극할 뿐이다. 디지털 미디어는 수십억 인구, 아니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과거 수백억의 인생들까지도 단편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이 엄청나게 늘어난 영감의 창구를 통해 우리는 과연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을까. 창작의 기운이 깃든 친구들이 적어놓은 9월의 영감을 살펴보자.


사이드 미러 – 이철빈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얼마 전 질주하는 택시 안에서 창밖으로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보던 중 문득 보인 사이드미러(Side Mirror)의 안내 문구가 인상 깊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시대적인 상황에서부터 적지 않게 세월을 흡수하고 있는 내 개인적인 시기까지, 적당한 의미부여가 된 것 같다. 올해의 시간은 BPM 140에 달하는 전자음악과도 같다. 빠르고 또 변칙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매 순간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의 연속이다. 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급변하고 있는 사회와 산업 그리고 문화를 두고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지없이 맞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 어느 한켠에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거나 미래에 사라질 것들을 운운했다. 단지 그런 상황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만 모르지 않았을까?

그래서일까. 나는 예전보다 조금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만큼 굼뜬 시간 탓에 스스로 질문을 많이 던지게 되는 것 같다. 고찰이라고 해도 별거 없지만 자신을 되돌아보고 주변을 살피게 된다. 종종 친구들을 놀릴 때 “너도 이제 어른이야”라는 말을 했는데 어느 날 더는 장난스럽게 느껴지지 않더라. 아이러니하게도 어른이 되고 십여 년이 한참 지나고서야 드디어 내가 어른이라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안정성, 책임감 등 이러한 어른의 덕목과 자질에 관심조차 없었는데 불현듯 이제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지만, 나는 분명 사랑하는 그녀, 가족, 친구 그리고 그 누구에게나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엿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되뇐다. 누구나 휩쓸려 방황하기 마련이지만, 조금씩은 달라져야 한다.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느끼는 것보다 내가 갖춰야 할 미래는 더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니.


일과 생활에 새로운 영감을 준 코로나19 – 박다함

올해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 혹은 일을 언급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뭘 굳이 생각을 해야 하나 싶었다. 난 정말 집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스트리밍 라이브를 할 줄 몰랐고, 양파와 감자를 수두룩하게 사서 맨날 집에서 카레를 만들어 먹을 줄 몰랐고, 평소라면 연락할 일이 없을 사람들과 일을 만들게 될 줄도 몰랐다. 코로나19로 겪게 된 수많은 변화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중 크게 두 가지를 말해보면 아래와 같다. 

을지로에 자리한 신도시 5주년 기념 릴레이 공연은 다시 부흥한 바이러스 전파로 마지막 주 공연이 취소/스트리밍 공연으로 대체되었다. 잠시 쉬던 오프라인 공연을 다시 진행하면서 새삼 우리가 굉장히 실존적인 방법에 기대어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장비를 들고 와서 리허설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그 나라에 도착해서 공연을 하고, 사람들은 공연장으로 와서 다 같이 경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게 실존하는 체험을 기반으로 묶여있다는 생각. ‘20세기적 체험/경험을 하고 살았구나’라는 말이 머릿속에 하염없이 맴돌았다. 

한편으론 집에 계속 있다 보니 음식을 만드는 일과 가까워졌고 또 궁금해졌다. 평소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오르는 편인데, 특히 요리를 하면서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스트레스에 대한 고민이 날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자주 하게 되었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주변 디제이들도 자신의 레시피를 올리곤 했고, 그것들을 보면서 음식을 만들어먹기도 했다. 작년 VISLA 매거진 연말 정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카레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원래도 자주 만들어 먹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거의 연구자의 마인드로 미친 듯이 카레를 만들어먹고 있다. 게다가 최근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레 식당을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한 입 먹는 순간부터 너무 맛있어서 그야말로 할 말을 잃어버렸고 배우는 자세로 카레를 먹고 나왔다. 그 후 유튜브를 보면서 나만의 카레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모두를 반강제적으로 새로운 인식점으로 끌어당기는 게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현실은 위험 지점에 가까워지고 있는 걸 목격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그 누구보다 많은 영향을 주는 게 분명해 보인다.


기록에 관하여 – 최지형

일어난 일들에 관한 기억을 어떠한 매체로 남기는 것을 기록이라고 한다. 블로그, 체크인 앱, 10개 가까이 되는 다른 자아의 인스타그램 계정, 테마 별로 나뉜 종이노트들… 개인의 일상도 기록이 될 수 있고 업무 과정도 기록이 될 수 있다. 즉, 내용과 매체가 결합되어 미래의 참고를 위한 활동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은 즐거운 일이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꿈꿔왔던 희망이 나를 배신하는 일이 많아져서일까? 앞보다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기보다는 집에서 인터넷을 켜는 시간이 더 소중했다(아마 요새는 당연한 일이려나?). 이때는 다른 사람들이 올리는 기록물을 들여다보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디저트를 먹는 어른의 일상을 부러워하고, 좋은 취향의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닮고 싶었으며, 나무가 많은 해외의 풍경을 보며 자유로운 여행을 꿈꿨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도 기록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스스로를 위함도 있었지만 나와 같은 독자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 공유하고 싶었다. 다만 소통은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대로 시작하게 된 것은 아마도 16살 즈음,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헤어지기 싫은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어디서 무얼 먹었는지 기억하기 위해 집착적으로 블로그에 기록했다. 추억을 되돌아볼 수단이 있다는 것은 향수병에 도움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기록의 효능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나는 별반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시도했고, 귀여운 열쇠고리와 필기구를 모아왔고, 단 한 번도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보지 않은 적이 없으며, 꿈이 없었던 적도 없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오래된 일기 안의 변하지 않은 나를 보니 위로가 되었다. 

물론 기록은 업무 과정 속에서도 필요한 부분이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라든지, 어떤 프로세스의 작업을 했는지 등.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이 또한 새로운 영감이 된다. 여러모로 참 재미있다. 예전에 아이웨이웨이가 자신의 블로그를 엮은 책에는 나의 뇌리에 남은 문장이 하나 있었다. “인터넷은 나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기억력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계속 인터넷을 할 것이다”. 

알고리즘과 무수한 정보들로 어지럽혀진 지금 이 디지털 시대에서, 이왕이면 우리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과 관심사 그리고 취미를 남기고 지켜내면 좋지 않을까? 나 자신과의 연결이 끊기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이 ‘영감’이라는 플랫폼에 기록을 해본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또 다른 재미와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코인 빨래방 – 한지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새롭고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눈을 번뜩이던 2019년을 지나 멋모르고 상경한지도 어언 10개월이 흘렀다. 이제 거의 1년이란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으니 내게 이곳은 더 이상 새롭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애매한 장소가 된 셈이다. 그러고 나서야 드는 생각은 꿈만 같던 상경이 이젠 게으른 나를 채찍질하는 하나의 방편, 또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 가족도 친구도 없는 서울 생활은 마치 감내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든 후 그 안에서 나를 시험하는 과정 같다고나 할까. 상황을 극복한 후 나의 모습에 대한 막연한 상상과 기대에 기대어 때때로 무언가를 더 빨리, 더 잘 해내야만 할 것 같은 욕심과 그로부터 오는 부담감을 직면한다. 이럴 때의 내 기분은 그 나라의 언어를 하나도 배우지 못한 채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의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걸까, 끝까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끓다가 식다가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천천히 하자고 되뇌며 서울의 언어를 배워나가는 중인 나에게 가장 위안을 주는 장소가 코인 빨래방이다.

빨래가 마르기만을 기다리는 불가피한 기다림 속에서 나는 모처럼의 여유를 즐긴다. 그저 기계를 신뢰한 채 더는 어디로 향할지 방향성을 의심하지도, 고민하지도 않는다. 40분 남짓한 시간은 지금 당장 어디로 향할 필요 없다고, 지금은 단지 과정이란 길에 서있는 것뿐이라며 잔잔한 위안을 건넨다. 근처 카페에서 산 3,000원짜리 카페라테와 집에 처박아둔 책을 가져와 한두 페이지를 깨작거리기도 하며, 지금 상황이 여행하는 중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그러다 보면 나는 정말 서울로 긴 여행을 하는 중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행 중이라는 착각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기도 하더라. 그렇게 40분간 숨통 트이는 기다림은 내 일상에서 하나의 소중한 시간으로 자리 잡는다. 빨래 시간의 여유를 활용할 계획 또한 즐겁다. 오늘은 빨래할 때 “비밀의 숲”을 볼 계획이다.


에디터│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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