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ror / Window – 허신구, 한재훈

거울: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음악. / 음악(거울)으로 동기화되는 개인의 내밀한 여정.

창: 세상을 바라보는 매개로서의 음악. / 음악(창)을 통해 세계를 들여다본 경험.


Mirror

허신구

Verbal Jint – Radio

정확한 시기는 기억 안 나지만, 내가 중학생 때 들은 한국 노래가 있다. 그 당시는 조피디가 1집을 내고 욕 담긴 랩이라며 대중의 질타와 관심을 받으며 2집을 냈고(당시 어린 나이의 나에겐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말달리자”라는 곡을 대한민국의 애창 트랙으로 만들고, 펑크라는 장르의 존재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크라잉넛이 2집 앨범을 발표하며 “밤이 깊었네”를 불렀다. 지금에서 보자면 그 당시는 서브컬처의 황무지였던 우리나라에 언더그라운드가 조금씩 조금씩 제법 형태를 갖추고 성장을 하고 있던 시기였고, 나름 날 것의 낭만이 있었다. 대중음악을 듣던 초등학생에서 위에 언급한 아티스트들 덕에 그와 반대되는 그런 ‘음악’의 맛에 깊이 빠져들고 있던 당시의 나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즐겨 듣던 노래들을 부르곤 했는데, 크라잉넛의 노래들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을 친구들이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사춘기였고, 뚜렷한 방향성이 잡히기 전의 나였기에 당시의 인기 가요들도 찾아 듣기는 했지만(임창정 같은 가수들은 좋아했다), 독립 음악이나 언더그라운드에서 흑인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의 것을 본능적으로 더 많이 찾아 들었다. 이런 상황이 겹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물론 남들과 지내기 위해서 좋아해야 하는 것이 따로 있어야 하나?’라는 의문점도 생기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춘기는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발견하는 시기라고 흔히들 말하듯, 그 시절 나는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알아가고 ‘자아’가 무의식적으로 형성이 되어가며 충돌이 있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던 중학생 시절 어느 여름, Verbal Jint의 ‘Modern Rhymes EP’라는 앨범의 4번 트랙 “Radio”라는 곡을 듣게 되었고, 무언가 가슴속에 강하게 맞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힙합 음악과는 다른 상당히 진보적이면서 감각적이었던 비트 때문은 아니고 이 곡의 심도 있는 가사가 마치 나를 대변하는 듯했다(이 노래 덕에 Bjork도 알게 되었다). 사실 이 곡을 포함한 이 앨범은 나에게 타인들과 취향 차이에 대한 인정, 그 취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진보적인 설계 그리고 남과 다름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구분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까지 품게 만들어 주었다. 세상에는 큰 획을 그어놓은, 누구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수많은 명곡이 있겠지만, 어린 나에게 충돌의 시기에 남들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지 않은 ‘나는 나’인 상태로 살아가게끔 내 자아 형성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된 이 곡이, 나는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WINDOW

한재훈

Madvillian – All Caps

음악을 접하는 데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어린 시절 내가 새 음악을 접하는 창구는 BMX 비디오였다. 특히 메탈과 하드코어로 가득했던 당시 묘기 자전거 비디오의 사운드 트랙은 2005년 한 비디오의 등장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면서 내가 듣는 음악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 비디오의 제목은 “Voices”로, BMX의 발원지인 미국이 아닌 영국의 셰필드라는 곳의 라이더 크루가 만든 숏 필름이었다. 이 비디오에는 영국의 락밴드는 물론 Madvillain, Modest Mouse 그리고 Lost in Translation의 OST 같은 록, 힙합, 전자음악이 뒤섞여 있었고, 이 영국의 시골 친구들은 뉴욕의 라이딩 스타일로 자전거를 탔지만, 옷은 쫄바지에 셔츠를 입고 모자는 뉴에라, 신발은 나이키 덩크를 신고 있는 끔찍한 혼종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비디오를 보고 왠지 모를 매력을 느끼는 동안, 이 비디오는 나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었다. 이후 나오는 대부분의 미국발 BMX 비디오들도 메탈 사운드가 아닌 Emo 사운드와 모던 록, 재즈와 힙합, 펑크 등 다양한 사운드 트랙으로 꾸며져 있었고, 그 비디오에 나왔던 영국 라이더들은 미국 BMX 컴퍼니에 픽업되어 프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비디오를 만든 Joe Cox라는 친구는 BMX 매거진에서 영국 BMX 신의 구세주라고 치켜세운 뒤로 미국에서 비디오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BMX의 본토가 아닌 영국에서 만들어진 작은 비디오가 전 세계의 BMX 트렌드를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순간 나는 뉴에라에 셔츠와 쫄바지를 입고 있었다. 즐겨 듣는 음악도 전부 바뀐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큰 관심을 얻지 못하는 작은 BMX의 비디오 신이었지만, 그 작은 움직임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난 그때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내가 표현하는 작은 움직임들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이들을 존경한다. 이 글을 적는 이유도 마찬가지.


*지난 VISLA 매거진 13번째 이슈에 실린 에세이입니다. VISLA 매거진은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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