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2021년, 이거 꼭 한다

EDITOR’S DELIGHT : 매 회 다른 즐거움, 관심에 관한 범주를 설정하고, 비즐라 매거진의 에디터 중 3명을 선정하여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2021년 첫 번째 에디터스 딜라이트의 주제는 ‘2021년, 이거 꼭 한다’로 정했다. 1월은 누가 뭐래도 지구인의 결심, 다짐의 총량이 가장 많은 달이다. 언제나 ‘해도 안 되겠지’보다는 일단 해보는 편이 좋으니까. 작심삼일로 끝나면 어떠하리. 그 사이 얻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번 에디터스 딜라이트에는 박한수, 황선웅, 한지은 에디터가 출동했다. 그들의 뜨거운 결심을 한번 구경해 보자.


박한수(Contributing Editor)재테크(財Tech)

2021년이 되었지만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새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2020년 13월로 느껴지는 건 COVID-19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 2020년 새해에는 많은 목표(이직, 영어 공부, 다이어트 등)를 세웠지만, 뒤돌아보면 ‘코로나인데 뭘 해~’라는 핑계로 팬데믹 상황을 은근히 즐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타이슨의 명언처럼 그럴듯한 계획이 코로나에게 한 대 처맞자마자 개박살난 걸 1년 동안 느껴서일까? 2021년에는 아무런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에디터스 딜라이트 주제를 받고 올해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보았다. 2021년 내가 꼭 하고자 하는 것은 ‘재테크’다.

서브컬처 매거진에서 ‘돈’ 얘기라니. 뭔가 속물적이기도 하고 내가 생각해온 멋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간 스스로 멋이라는 기준을 세워서 이에 부합하지 않는 건 멀리하고, 멋이라 생각하는 것에는 소비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불러온 변화의 가속은 생활뿐 아니라 멋의 개념도 바꾸어 놓은 듯하다. 2021년 대한민국에서 멋이란 무엇일까? 지금 상황에서 나는 ‘생존’이 최고의 멋이라 생각한다. 코로나로 중지된 문화 활동은 여러 가치를 무력화시켰고, 마치 겨울잠을 대비하는 동물들처럼 어려운 시기와 맞물리며 본능적으로 재테크 욕구가 생겨난 듯하다.

재밌게도 재테크를 공부해 보니 서브컬처적인 요소와 접점이 많았다. 돈이란 인류 문명과 함께 생겨난 개념이기에, 무수히 많은 경제 이론과 투자 전략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이야기가 넘쳐난다. 특히, 요즘같이 과열된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서 퇴근하고 보는 경제 유튜브 영상은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의 공포를 줄여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어쩌면 진정 하고 싶은 건 재테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뒤쳐지지 않고 있다는 위안을 주고 싶은 걸지도.

그럼에도 최근 카브엠트가 개설한 아카이브 페이지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여전히 멋에 대한 설렘이 있다는 걸 느꼈다. 이 설렘은 나에게 지금은 그저 재미있는 게 없을 뿐 내 안에 있던 게 다 사라진 건 아니라는 반증으로 느껴져 꽤 흥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가 다시 정상화되고 여러 가치를 동반한 멋이 돌아오면 예전처럼 흥미를 느낄 만한 것들이 다시 많아지지 않을까.

평소 글을 쓸 때 이센스의 노래를 들으며 쓰는 경우가 많다. 그의 랩에 편승해 내 필력이 올라가길 바라는 행위인데, 요즘 내 머릿속에 박혀있는 그의 가사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하루빨리 팬데믹이 종료되고 재미난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요새 뭐가 재밌어? 몰라, 돈이나 더 모아 놓는 거지”

E SENS – “DANCE”

황선웅(Editor)Joe Satriani – “Ten Words” 기타 커버하기

2021년 새해 첫눈이 쏟아진 날, 낙원상가로 향해 일렉 기타를 구매했다. 그리고 요즘 틈만 나면 자취방에서 홀로 헤드셋을 쓰고, 기타 연습에 매진한다. 기타가 올해의 큰 목표로 자리 잡은 이유가 사실 즉흥적이며, 감정적이었기에 언짢은 느낌이 있다. 스스로 납득할만한 계기나 명분이 마련되어야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라 어쩔 수 없다.

올해는 시작부터 감정적이다. 잡념과 망상이 자주 들었던 연초다. 평소와 다르게 평온하지 못하고 감정이 요동쳤다. 생각을 그만하자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된 때를 떠올렸다. 진득하게 앉아서 레고를 조립하던 어린 시절이다. 또한 생각했다. ‘새롭게 몰두할 취미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감정과 잡념을 컨트롤하기 위해 새로운 취미는 어릴 적 레고를 조립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롭고 즐거워야 할 것. 그 기준에 가장 적합한 게 새로운 악기, 즉 기타를 새 취미로 맞이하는 것이었다.

기타를 구매할 때, 장민이 형이 사무실에 기증한 통기타를 생각했다. 장민이 형의 통기타는 작년 1월 기증된 이후로 아무도 만지지 않았기에 사무실 인테리어 소품에 불과하다. 반면 난 기타 시작 비용을 아꼈다는 옹색한 생각과 기타를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내가 통기타가 아닌 일렉 기타를 장만한 이유다. 유튜버 대부분이 입문으로 통기타를 권했지만, 사무실엔 통기타가 있으니 집에선 일렉 기타로 연주하자고 생각했지. 또 집에서 통기타를 연주하면 내 볼품없는 연주가 윗집으로 흘러갈 것이 뻔했기에, 혼자 조용히 헤드셋을 쓰고 연습하고 싶었다. 그리고 만약 에이블톤을 다시 시작한다면 기타 엠비언트 트랙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호기로운 미래도 그려봤다. 공교롭게도 기타를 처음 만지기 시작한 그 주말에 박다함에게 야마모토 세이치(Seiichi Yamamoto)라는 엠비언트 기타리스트의 음반을 추천받고 왔다.

“이것도 음악이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을 정도의 우리 주변 소리, 소음이 담긴 엠비언트가 내 취향이다. 그러나 매번 차분한 음악만 좋아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저릿한 일렉 기타 블루스를 좋아한 시절도 있었으니, 때는 스무 살이 막 됐을 때. 특히 좋아한 트랙은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의 “If I Could Fly”. 쾌청한 하늘을 활공하는 상상과 동시에 일렉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꿈도 가졌었지. 따라서 요즘은 기분이 좋다. 영원히 꿈으로 남을 뻔했던 ‘기타 배우기’를 이렇게나마 시작하게 됐으니. 수동적인 계기야 어찌됐든, 새 취미를 갖는 것은 즐거운 거다.

크로메틱을 시작으로, 지난 3주간 책을 보며 코드를 쥐는 법을 외웠다. 일주일 정도 연습했을 때, 악기다운 소리를 낼 수 있게 됐고, 손끝의 촉각이 무뎌진 것을 느끼며 뿌듯함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코드 체인지 중에 손이 꼬여 박자를 놓치고, F코드를 오래 잡기 버겁기도 하다. 이러한 자각과 자극을 통해 지금처럼 꾸준히 연습하면, 2021년이 지나갈 무렵엔 조 새트리아니의 “Ten Words” 정도는 칠 수 있으리라 가늠한다. 곡의 커버 영상을 찾아보니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또 훗날엔 기타가 일상이 되길 바라며, 언젠간 존경하는 기타리스트 짐 홀(Jim Hall)처럼 “Concierto De Aranjuez”도 맛깔나게 뜯을 수 있길 바란다.


한지은(Editor)니체 전집 독파

2021년이 되었고 어느덧 까마득하다고 생각했던 20대 후반이다. 불과 몇 년 전 상상했던 스물일곱 살의 나는 몇 발치 앞을 내다보고 모자람은 잘 숨겨서 적어도 지금보다는 노련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글쎄… 정신없이 하루 이틀 까먹다가 막상 닥치고 나서야 보니 나는 예상과는 다른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어딘가 머물러 있는 나를 이상적인 스물일곱 살에 데려다 놓기 위해 어느 순간 독서는 꼭 해야 할 일로 분류되었다. 마음의 양식, 삶의 지침이라고 불리는 말을 꽤나 신뢰하고 있달까.

그러나 여기저기서 좋다는 책을 주워 담아봤지만, 주입식으로 읽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천성이 독서랑은 맞지 않는 건지. 낯가리는 성격은 여기서도 느닷없이 발동하는 건지,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독서와 친해지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생각으로 덮었다 열었다 앞장만 너덜너덜한 책과 책을 ‘구매’하는 데서 오는 기쁨에 매료되기 바빴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뭐가 됐든 독서에 관해선 어느 한 부분도 자신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새해 들어 읽은 첫 책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제목은 ‘니체의 인생론’. 말 그대로 니체가 실제로 이런 책을 낸 건 아니고 생전 집필 한 여러 권의 책에서 인생을 논한 부분만 어느 출판사가 보기 좋게 엮은 것이다. 평소 독서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런 책을 영양가는 없고 편리하기만 한 인스턴트식품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순서는 바뀌었을지라도 이 책을 읽고 몹시 감명받은 나는 올해의 목표를 ‘니체의 전집을 독파하겠다’라고 정해버렸다.

그러나 모처럼 세운 새해 목표에 뿌듯한 기분도 잠시, 니체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스스로 자문해봄을 반복한 결과일까. 이내 내가 원하는 게 정말 책을 ‘읽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찾아왔다. 나는 그저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지는 걸 목표로 독서를 시작하지 않았던가. ‘여러 가지 의견과 잠언’ 중에서 니체는 책을 읽을 때 어느 특정 구문이 자신에게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게 마치 그 책의 전부인양 받아들이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건 책을 쓴 사람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 모두를 향한 모독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글을 쓰고 그의 구절에 감명받아 모든 책을 독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려 했던 나의 안이한 독서태도를 꼬집는 니체의 말에 한 대 맞은 듯한 와중에도 이 책을 읽고 하나 정도는 정확하게 깨달은 바가 있다. ‘진정으로 기뻐하는 일로 향하라’는 것. 그는 다수의 책에서 각자 다른 언어로 줄곧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 그의 책을 계속해서 읽을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2021년을 보다 즐겁게 보내기 위해 나는 독서를 영원한 숙제로 남기기보다는 그 조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정하려 한다.


에디터│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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