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r Are You From ? – ssaannggyyuunn

크리슈나무르티의 책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우리는 온갖 영향의 결과일 뿐’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사방이 이해관계로 둘러싸인 우리의 삶에 적용해보면 어느 정도는 쉽게 수긍이 가는 문장이다. 이어서 작가는 그대로 몸을 맡기면 수동적인 인간이 되기 마련인 영향의 늪에서 벗어나 오롯이 본인이 되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 주변으로부터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과 열정을 바친 이후에야 점차 내적인 성숙에 이르게 된다고.

다섯 번째 ‘Wear are you from?’은 을지로에 자리한 빈티지 숍 세메터리 파크(Cemetary Park)의 주인장 김상윤에게 옷에 관한 사연을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몹시 궁금한 채로 에세이를 전달받았는데, 본문 내 그는 처음 옷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서 만난 영향들을 빼곡하게 서술한 끝에 옷을 입는 일에 개인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표현했더라. 기획자는 그가 개인성을 갖게 되기까지의 일대기를 쭉 읽고 나서야 숍을 방문했을 때마다 그 차림새가 오롯이 본인처럼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느껴졌던 이유를 잘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세메터리 파크를 방문해 본 이라면 읽은 후 기획자의 생각에 공감할지도 모를, 김상윤에 얽힌 옷의 서사를 아래에서 확인해보자.


김상윤(@ssaannggyyuunn)

아버지의 스톤 아일랜드 재킷입니다. 30년 가까이 됐대요.

예술, 문화 같은 것에 자연스레 반응하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다. 아버지는 건축 디자이너, 어머니는 미술 선생이었고, 두 분 다 사대주의가 강한 데다 사치스럽고 패셔너블했다. 서적이니 뭐니 물 건너온 것들이 도처에 있었고,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에 가는 등 문화생활도 잦은 편이었다. 업무차 외국을 오가던 아버지는 수입도 되기 전에 스톤 아일랜드나 무인양품의 제품을 입고 있었으며 우리 것(형과 나)도 사 왔다. 그것들을 어머니의 연출력으로 입혔다. 즉 어머니도 심한 옷쟁이란 말이다. 당시에도 어머니는 마르지엘라나 언더커버 아크네처럼 그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한 제품들을 입고 보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에크루에서 세일 문자가 날아오면 종종 가자고 하신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스스로의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돌아보니 이러한 환경과 분위기가 지금의 가치관과 감각에도 적잖이 영향을 끼친 듯하다.

옷은 특정 시기까지 거의 주는 대로 입었고 그보다는 만화, 영화, 만화책, 피규어, 프라모델, 축구에 크게 빠져있었다. 이것 저것을 수집했고, 용산이나 국전을 드나들며 피규어나 프라모델을 모았다. 게임엔 그다지 관심 없었다(위닝, 디아블로 제외). 중학생이 되어 목소리가 갈라지고 이런저런 곳에서 털이 자라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발달이 덜 된 상태였으니 생각은 여전히 직관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또래들 사이에선 집단 내에서 누가 더 낫다, 멋진 사람을 알고 싶다, 친해지고 싶다 등 관계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옷이 주요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옷에 대한 자의식이 생긴 것은 이 학교라는 집단에 들어가면서부터,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때부터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절대 알지 못하는 동시대 속 동세대, 집단속에서 찐으로 통하는 것들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구매한 리바이스 골덴 재킷입니다. 못 버리겠어서 갖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폴로와 리바이스가 인기였다(501보다도 타입원이나 엔지니어드 진). 폴로나 타미 아니면 빈폴이나 노튼. 나도 열심히 사긴 샀는데 아직 애라서 사이즈나 느낌이 여러모로 나에게 맞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집단보다 우위에 소속되기 위해서 일단 진짜만 입는 것을 선택했다. 가짜냐 진짜냐는 문제도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이슈였으니까.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그렇게 브랜드를 입고 유행을 빨며 어쨌든 옷에 관련된 이런저런 것들을 느끼게 되고 슬슬 조합도 괜찮아지면서 관심을 받았다. 그게 좋아서 더 앞선 무언가를 치열하게 찾아다녔다.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내외의 정보를 수집하는 식이었다. 게임을 안 해서 PC방에 가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친구들 무리에 휩쓸려 가게 되면 줄곧 검색질만 했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스트리트’였다. 그렇게 슈프림 등 해외의 각종 스트리트 브랜드의 짭을 팔던 ‘스페셜 소스’나 ‘온스트릿’과 같은 사이트를 접했다. 

신발들. 그때 것들은 진작에 다 팔았고 이제야 다시 생각이 나서 한 5, 6년 전에 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 한 2년 전에 산 건 저 네이비에 회색 아트모스 덩크.

당시 동대문 외에도 홍대나 압구정 등 여러 장소에 개성 있는 숍이 들어섰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전자거래가 쉬워짐에 따라 여러 가게가 사이트를 통해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정보를 공유하는 각종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변화된 여건과 지속적인 관심으로 정보는 어느 정도 많아졌는데 뭔가 방향이 잡히지 않던 차에 중학교 2학년 때 일본으로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 이때 보고 느낀 것들이 큰 자극이 됐다. 스트리트 패션에 더 큰 흥미를 느꼈고, 특히 그 관심은 신발로 이어져 나이키 SB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이키 매니아를 통해 첫 중고 구매에 성공했는데 그게 2003년도에 발매한 그릿이라는 명칭의 SB 덩크였다. 그 SB 덩크를 시작으로 많은 신발을 사서 신어보고 팔고 신고를 반복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산 쥬욕티.
고등학교 1학년 때 산 사이러스 바지. 지금도 많이 입어요.

슈프림, 스투시, 쥬욕, 제이머니, 베이프, 네이버후드, 소프넷, 사이러스, 굿 이너프 등 다양한 브랜드와 옷에 관련된 문화를 알게 될수록 차츰 삶에서 옷 입는 재미가 크게 자리를 잡았다. 정보를 습득하다 보니 각종 이미지와 서적, 음악, 영화, 인물, 미술 유래나 역사 등 새로운 문물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고 그중 어릴 때부터 취미로 삼은 영화 보기가 취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중학교 말미,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봤다. 그게 본격적으로 옷을 좋아한 시기와 맞물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나오는 야상과 체크 셔츠 그레고리 가방. “고”에 나오는 마스터피스의 슬라브 바지나 사이러스 옷들 뉴발란스 mt580 신발,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마”의 아페쎄 재킷, “키즈 리턴”의 비니에 코치 재킷, “토니 타키타니”에 등장한 옷들. “원더풀 라이프”의 고전적인 옷, “우울한 청춘”의 분위기, 드라마는 Iwgp나 기무라 타쿠야의 히어로 등 옷 하나하나보다는 전반적인 스타일이 조성한 느낌이 좋았다. 이렇게 영화를 비롯한 관심사에 옷은 일부분으로 작용했고, 그것들이 어울려서 함께 전달되는 과정에서 더욱 큰 무게감과 색다른 감각을 전해주었다.  

20살 때 잠깐 과하게? 입을 때 산 언더커버.
21살 때 처음 산 아페쎄입니다. 왜 아직도 있지. 그때는 벨트 라인에 저 핀이 있었어요.

이렇게 쌓인 감각이 현실에 반영되기도 했다. 옷 입는 일에도 개인성이 생긴 것이다. 옷을 둘러싼 많은 것이 습관이 됐고, 멋과 관련 없어 보이는 것에서도 멋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아갔다. 다방면으로 생겨난 흥미는 옷을 벗어나 미술이나 예술과 관련된 학문으로 연결되었고 이런 방향은 후에 대학교와 대학원에서의 공부로도 이어졌다. 사실 열아홉 스무 살 초반이야말로 옷에 관한 것이라면 가장 말할 게 많은데 너무 길어지다 보니 간략하게 적자면 이 시기엔 개성 있는 유럽의 브랜드가 많이 들어왔고, 다량의 일본 브랜드와 구제, spa 브랜드, 편집숍들이 새롭게 들어섬과 동시에 서적 웹진 블로그 등 다양한 컨텐츠가 즐비했다. 이에 사람들의 감각과 표현이 다양하게, 과감해지기도 했다. 그 전보다 구매할 곳과 정보를 더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며 한정되지 않은 곳에서 취향, 취미가 맞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었다. 이게 한 2014년? 15년까지일 거다. 이후 이야기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덕분에 지금도 옷을 아주 좋아하고 재미나게 즐기며 산다. 그러나 부담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고 앞으로 더 많아질 테니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김상윤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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