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나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곡

EDITOR’S DELIGHT : 매 회 다른 즐거움, 관심에 관한 범주를 설정하고, 비즐라 매거진의 에디터 중 3명을 선정하여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음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난 없다. 그런 상상을 시도할 생각조차 들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 바로 음악일 것이다. 또한,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뮤지션들은 음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인간은 음악을 만들어 왔을 것이고, 세월이 흘러 그 음악들은 사막의 모래 알갱이처럼 많을 것. 그 수많은 음악 중 비즐라 멤버들의 마음을 울린 곡은 무엇일까. 마음을 울린다는 주관적인 기준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차마 한 곡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음악 에디터 황선웅의 글도 놓치지 말자.


최장민(Director)물도둑 – 바닥

이번 주제 ‘울림을 주는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는 또 다른 주제라 스스로 생각을 하는 과정이 매우 재미있었다. 울림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음악을 들었을 때의 울림일 수도 있고 어떤 개인적인 사연이 겹쳐지며 울림을 받을 수도 있다. 오늘 내가 고른 음악은 특정한 개인적인 상황에서 울림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들을수록 그 묘한 감정이 내게 전해지게 되어서 선택했다. 본 곡은 예전에  촬영 일로 한동균이라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던 중 그가 속한 연남동 물도둑(후에 그룹 이름은 ‘물도둑’으로 변경되었다)이라는 밴드의 곡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밴드멤버인 김영생 형님의 긁는 보컬이 매력적인 “바닥”은 나를 감정적으로 만들어주는 훌륭한 곡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선이 더 고조되는 느낌을 주는 이 곡은 마치 내가 청춘물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게 하고 이러한 느낌은 거대하지는 않더라도 근래 내게 작은 울림을 주곤 한다. 음악에서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데 익숙해졌지만, 물도둑의 “바닥”과 같은 노래는 나 스스로를 더 유연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잠수를 타게되어 멤버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찍은 클립들로 직접 만들었다는 본 곡의 뮤직비디오도 시간이 된다면 감상을 추천한다.


권혁인(Editor-in-Chief) – Bastien Keb – Lucky (Oldest Grave)

글이나 그림과는 다르게 음악을 창작하는 행위는 적어도 나에겐 저 먼 세계의 일처럼 들리는데, 이유인즉슨 듣는 이에게 감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소리들을 배치하는 일이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막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단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펜을 들면 일단 뭔가는 끄적이거나 그려볼 수는 있지만, 늘 음악을 곁에 두고 즐겼음에도 어떤 악기를 가지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따라서 음악가들이 음악을 창작하는 과정은 여전히 쉽게 유추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지만 한 가지, 그들이 ‘영감’이라고 말하는 창작의 동기에 귀 기울여 보면 대체로 글이나 그림의 시작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경험의 우물이 고갈되는 순간이 음악가에게도 찾아온다면, 어떻게든 창작 욕구를 끌어올리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될 텐데 아이디어라는 것은 오히려 너무 자유로울 때보다 일정한 규격의 틀로 가두었을 때 더 집중할 수 있는 창작의 형태로 발전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근래 밤 산책의 좋은 친구가 돼주었던 바스티앙 켑(Bastien Keb)의 [THE KILLING OF EUGENE PEEPS] 역시 음악가들에게 재밌는 작업 동기가 될 수 있는 영화 사운드트랙, 그중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영화의 OST라는 콘셉트를 차용한 앨범이다. 이 미스터리한 영화의 구체적인 스토리라인은 알려진 바 없지만, 나는 18개의 풍성한 트랙을 들으며 마치 흑백 스크린 시대의 우울한 누아르,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이 앨범은 수십 년 전 레코드의 먼지를 터는 듯한 아날로그의 정서가 자욱하게 깔려있으면서도 마치 옴니버스 구성의 영화처럼 각각의 트랙이 산발적이며, 거듭 변화를 시도한다. 나는 여기에서 “Lucky (Oldest Grave)” -> “Rabbit Hole”로 이어지는 일명 ‘우울의 구간’을 주목하고 싶은데, 보통 2시간 여의 산책이 끝나고 귀가할 때 한강에서부터 집까지 걸리는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에는 꼭 어딘가 마음속 깊은 영혼까지 매만져주는 음악을 찾게 되는 습관 탓이다. 힙합에서 장르적인 희열을 느끼거나 전자음악의 신비로움에 경외감이 들다가도 꼭 정처 없이 떠도는 일요일의 마지막 순간에는 포크, 블루스와 같은 장르의 거부할 수 없는 중력에 끌려가고야 만다. 고요한 종소리, 어쿠스틱 기타가 불러일으키는 애상감, 현악기의 처연한 음색 같은 것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행함으로써 내게 시간을 일깨운다. 처음 이 곡을 접한 12월, 마치 오래된 무덤처럼 죽음의 흙냄새를 품은 겨울의 심연으로부터 헐벗은 나뭇가지가 다시 푸른색의 생명으로 뒤덮이고, 산들바람이 목을 간지럽히는 4월의 봄으로 순환하기까지, 나는 매번 다른 심정으로 변화무상한 삶과 시간을 곱씹을 수 있는 것이다.


황선웅(Editor)

나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준 곡이라… 정말 좋아했던 음반, 고요 속에서 큰 진동이 느껴지는 엠비언트, 아니면 명상이 테마인 음악을 골라야 하나? 감이 잘 안 잡혔다. 그래서 조금 직선적으로 나를 진짜 ‘울린’ 곡을 돌이켜 생각해보기로. 그래, 사실 ㄴㅏ는 ㄱㅏ끔 눈물을 흘린ㄷㅏ. 음악을 들으며…

여러분은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려본 적 있나? 어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소름이 돋고, 심지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이는 슬픈 영화를 봐도 울어본 적이 없는 감수성 제로인 내가 몇 번 경험했을 정도로 누구나 느끼는 당연함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에 몇 번 물어본 결과, 의외로 음악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경험한 이들은 흔치 않은 것 같더라. 물론 통계적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일단 본인 주변에서는 “영화를 보고 운 적은 있는데, 음악을 듣고 울어본 적은 없다”라는 답변이 다수. 아무튼 그 덕분에 내 눈시울을 붉힌 소리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따라서 나를 울린 몇몇 음악을 평생 기억할 것 같다. 얼마나 좋았으면 눈물을 흘렸을꼬… 소개하기 낯간지럽지만, 이번 기회에 나를 ‘울린’ 음악들 중 네 곡만 꼽아 소개해보자고 ━ 사실 어떤 울림을 주는 곡 대부분은 VISLA 음악 카테고리에 올린 것 같으니 체크하자 ━.

난 보통 서사적 구조를 지닌 음악을 듣고 감탄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잔잔한 시작, 반복을 통해 점점 웅장해지는 크레센도. 드라마틱한 전개의 음악. 고요와 웅장함, 그 대비에서 느낄 수 있는 전율의 카타르시스가 포인트. 이를테면 카마시 워싱턴(Kamasi Washington)의 대곡 “Truth”.

밝히기 다소 민망하지만, 일몰과 일출 시각, 바다에서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몇 번 있었다. TMI지만, 본인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영일대라는 해수욕장 바로 옆에 살았다. 비록 넓은 지평선이 보이는 바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볼만한 풍경이라 생각했기에 자주 바다를 산책했다. 그리고 어느 일몰 시각, 바다에서 보즈 오브 캐나다(Boards of Canada)의 “Dayvan Cowboy”를 들으며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다. 중반부 잠깐의 정적 이후 숭고한 스트링이 등장할 때 붉은빛 노을이 겹쳤고, 이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려버린 썰.

한번은 어느 새벽,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술 취한 노숙인 아저씨가 하모니카를 물고 안치환 선생의 “똥파리와 인간”을 거칠게 부르는 걸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힌 적도 있었다. 순탄치만은 않았을 인생, 그간 겪은 우여곡절의 이야기를 부르짖는 것 같았달까. 심지어 오리지널을 초월한 커버라 생각돼서 더는 원곡을 듣지 못하게 됐다는 후일담.

아티스트의 작사 능력에 늘 감탄하지만, 가사를 곱씹으며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연주곡, 또는 가사가 있더라도 대부분 내가 알아먹을 수 없는 영어가 대부분인 곡이 취향인 이유다. 그런데 유일하게 김민기 선생의 “봉우리”를 듣고 굵은 눈물을 뚝 흘린 적이 있었다. “봉우리”는 어떤 욕심이 생길 때 그 욕심을 차분히 내려놓게 만드는 참회적인 곡이라 생각된다. 허나 아이러니하게 이 곡이 수록된 김민기 [4집]을 구하고자 하는 소장욕에 큰돈을 주고 앨범을 구한 적이 있다. 취미로 조금 무리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후회하진 않기로. 김민기 선생의 목소리는 울림의 깊이가 차원이 다르니. 그는 포크계 마리아나해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야.


에디터│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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