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당신에게 취미란?

EDITOR’S DELIGHT : 매 회 다른 즐거움, 관심에 관한 범주를 설정하고, 비즐라 매거진의 에디터 중 3명을 선정하여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취미란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이다. 왜냐면 취미이기 때문이다. 취미가 왜 취미라서 재밌느냐면, 어떤 엄청난 목표를 잡을 필요가 없어서다. 어디까지나 취미니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정도로만 계속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경쟁할 필요도 없고, 원하지 않는 숙제를 할 필요도 없다. 억지로 결심한 취미라도 하다 보면 재미가 붙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팍팍한 요즘 세상에 취미란 생각보다 인생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라는 생각에서 멤버들에게 “당신에게 취미란?”이라고 물었을 때 답변이 궁금해졌다. 그들에게 취미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김다울(Contributing Writer) – 넷플릭스

“아, 이거 진짜 재밌겠다.” 넷플릭스를 켠다. 상위에 떠 있는 몇몇 영상의 썸네일과 제목을 보고, 재밌어 보이는 걸 클릭한다. 나는 그걸 보고 지나치거나 ‘내가 찜한 콘텐츠’에 넣어놓는다.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와 칩거 생활이 익숙해진 한 지인도 집콕 생활에서 ‘넷플릭스’는 한 줄기 빛이라 칭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적은 비용으로 많은 볼거리를 선사한다고. 나 또한 지인의 말에 동의하며 넷플릭스로 주말의 여유를 즐긴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에서 굳이 밖에 나가는 것도 민폐일 수 있으니.

그런데 내게 넷플릭스를 보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상을 잘 가꾸는 그런 일은 아니고, 말하자면 생각의 전환을 하는 방편이겠다. 난 플롯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을 수 없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모아서 정제해놓은, 그것도 적절한 장면들로 보여주는 그런 것들. 이런 관점에서 넷플릭스라는 취미는 생각의 전환을 해주는 보물들을 모은 창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넷플릭스에 나열된 콘텐츠들을 헤치며 새로운 영상을 찾는다. 물론 뛰어난 학습 능력을 지닌 알고리즘이 이끄는 방향으로.

한 번은 넷플릭스 헤비 유저인 내 지인이 “넷플릭스 메인 화면만 봐도 네가 어떤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심리테스트도 아니고 그게 뭐야”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그런 내게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가진 데이터 원리를 길고 길게 말했다. 나는 내 취미 활동이 기업에 까발려졌다는 사실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후에도 나는 넷플릭스에 꾸준히 접속했다. 아, 나는 지금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구나. 데이터가 사람의 취미와 취향을 추천하고 자신의 입맛에 알맞게 가공할 수 있는 세계.

넷플릭스 서비스와의 상호작용(시청 기록, 다른 콘텐츠 평과 결과 등), 유사한 취향을 가진 회원 및 넷플릭스 서비스에서의 선호 대상 등 기본 정보를 시작으로 하루 중 시청 시간대,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디바이스 등도 추천 알고리즘을 만드는 소스가 된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그 소스들을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최적의 영상을 물색한다. 그리고 아마 자신들이 주력으로 내세우고 싶은 영상들을 조금 더 노출할 거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런 관점에서 ‘넷플릭스’라는 취미는 내가 선택했다고 믿어왔지만 결국 간택당한 것.

그러나 나의 또 다른 지인은 이런 넷플릭스에 반격한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말처럼 넷플릭스는 ‘풍요 속의 빈곤’, ‘볼 거 많은데 볼 건 없네’라고. 그리고 ‘넷플릭스는 뻔한 콘텐츠들만 추천한다’라고. 비는 시간에 넷플릭스 탐험을 일삼는 이들이라면 이 말에 누구든 공감할 것이다. 처음 구독을 시작했을 때는 도대체 뭘 보고 있었더라? 이런저런 콘텐츠 목록을 뒤적거린다. ‘음… 이것도 이미 봤고. 넷플릭스가 올해 한국에 투자하는 금액만 약 5,540억 원이라고 하던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거야. 도무지 볼 것이 없네.’

탐색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 때마침 “러브데스로봇(Love, Death+Robots)” 시즌 2가 릴리즈된다던 소식이 생각난다. 오, 맞다 이거. 이번에도 “파이트 클럽”, “맹크”의 데이비드 핀처와 “데드풀” 감독 팀 밀러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만큼 하드코어한 주제의 SF물로 구성됐을 것이다. 시즌 1을 재밌게 봐서 시즌 2의 트레일러부터 챙겨봤던 리스트다. 근데 얘 하나도 제대로 추천해주지 못하는 넷플릭스 알고리즘. 내 생각만큼 똑똑하진 않을까나.

코로나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체계화된 데이터 속에서 우리의 활동도 정제화되고 단순화돼간다. 취미 활동도 마찬가지다. 내게 넷플릭스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고로 내 취미는 단순하지만 복잡하다. 내 현실에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가끔은 생각의 전환도 시켜주는 그런 것. 그 생각을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일정 부분은 간택당했던 것. 그래도 재밌나. 재밌었을까. 재밌었다. 방구석 하루의 틈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내가 발견하는 알고리즘의 추천.


김혁진(Contributing Writer) 예술멍, 그레일드

저에게 취미란 ‘시절’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나이라는 숫자를 중심으로 아주 가볍게 그 의미를 풀어본다면 각 ‘시절’마다 취미가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기마다 금전적, 시간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여유의 스케일이 달랐고 생각도 변해서인지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소비하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기에는 시간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또 다른 어떤 시절에는 경험이 가창 최우선의 가치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라 돈이나 시간을 소비하는 데 주저함이 없기도 했습니다. 연애를 길게 하는 편이라 연애가 취미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나의 취미가 곧 ‘연인’으로 포커싱되어 그녀와 공감할 수 있는 이슈를 찾았고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이 곧 취미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각 ‘시절’, ‘상황’, 시간의 경과마다 변화한 나의 ‘가치관’이 나의 취미를 결정해왔고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진화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지금 나의 취미는 무엇이며 그것에 대한 나의 이런저런 이유가 무엇인지가 다음 내용이 되면 좋을 듯하여 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 볼게요.

저는 요즘 ‘예술멍’에 빠져있습니다. 예술에 그다지 깊은 조예를 가지진 못했지만, 관심 있는 전시가 있으면 찾아다니며 다양한 예술 작품을 관람하며 ‘멍’을 때리는 ‘아트멍’을 자주 합니다. 멍을 때리기 위해 전화는 에어플레인 모드를 해놓고 오디오 가이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작품 설명 텍스트는 놓치지 않고 다 읽어서 이 부분을 보완합니다. 그런데 모든 작품에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명이 길지 않은 경우들도 많아서 작품을 눈으로만 집중해서 관람하는데, 멍을 때리기 참 좋습니다. 그리고 이를 최적화하기 위해 되도록 붐비지 않는 평일 애매한 시간을 선별하여 관람합니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3시간 동안 이렇게 작품을 관람하며 멍을 때리고 나오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그리고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이를 통해 ‘상상의 물꼬’도 조금은 트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아트멍을 끝내고 나오면 저는 자연스럽게 머천다이즈샵에 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구매합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사진을 많이 남기는 성격이 아니며, 기억력도 나빠진 이유로 MD라는 매체를 통해 경험을 기록합니다. 도록, 포스터, 아트 프린트, 가끔은 스테이녀서리 킷도 구매를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사용은 하지 않고 보관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예술 작품을 큐레이션했던 공간은 피크닉(Piknic), 롯데뮤지엄(LOMA), 서울시립미술관(SeMa), 에브리데이몬데이(Everydaymooonday) 등 다양합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전시는 김정기 작가님의 개인전이었는데, 마침 라이브 드로잉도 진행하고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현장이었어요.

그리고 요즘은 그레일드(grailed)를 디깅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그레일드는 개인 간의 거래를 중개하는 마켓플레이스인데 주로 다양한 중고 패션 제품들을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이곳의 장점은 바로 아카이브 같아요. 특히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아카이브 기능이 더욱 명확하게 작용합니다. 내가 모르던 시절에 해당 브랜드가 전개했던 제품들도 디깅할 수 있는 게 너무 많거든요. 가끔 브랜드 아카이브 북도 매물로 나오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빈티지와 같은 제품들을 통해 내가 관심을 두게 된 브랜드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얻고 있어요. 바로 아카이브의 힘을 쇼핑 플랫폼에서 경험하는 느낌? 아주 가끔 빈티지 제품을 구매하기도 하는데 빈도는 매우 드물어요. 제가 요즘 관심 있게 지켜보는 제품들은 H&M의 다양한 협업들입니다. 그리고 아트멍과 마찬가지로 은근히 업무에 좋은 인스퍼레이션을 제공해주고 있어요. 이 또한 매우 유익한 기능이라 거의 매일 디깅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생긴 취미인데, 글을 조금씩 남기고 있습니다. 기억력이 조금씩 나빠지는 것 같아서 이걸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던 중, 좋은 실력은 아니지만, 나의 생각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어요. 글의 장점은 말하는 것과 달리 나의 의견 수정에 플렉서블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카이브도 참 쉬운 매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은 주로 뮤지션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독립 뮤지션의 성장과 관련된 정보와 메시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유슬주(Contributing Writer) – 결국에는 나의 색깔

나의 취미는 일상 생활에 슬며시 녹아 있다. 여러 웹사이트를 뒤져가며 음악을 찾아듣는 행위부터, 설명하기 애매한 것들까지 취미라 여겨 왔다. 정적인 것을 반복하여 즐기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들도 나에게는 취미가 되었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마을 버스 노선을 정해놓고 자주 이용하면서 그 버스가 주는 느낌을 정리해보는 것. 군 입대를 앞두고 서대문구의 한 버스를 소재로 만들어 봤던 뮤직비디오는 그런 취미를 처음 인지했던 기억이다. 바쁘게 사는 친구들이 은연중에 ‘너는 지나치게 감상에 젖어 있다’라고 내비치는 시선을 어린 마음에 괜스레 의식하기도 했던 것 같다.

마치 나를 지탱해 주기도, 내 에너지를 빼앗기도 하는 오랜 친구처럼 내게 취미는 소중하다.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줄곧 취미를 통해 용기를 얻고 평정을 되찾곤 했다. 그렇게 도움을 받았을 때엔 그 취미에게 한없이 고마워하며 오랫동안 함께하기를 기약한다. 반면에 빨리 끝마쳐야 하거나 미래를 좌우할 만한 중요한 일이 눈앞에 있더라도 취미를 놓치기 싫어서 하던 일을 미루거나 멀리 돌아간 적도 많다. 그럴 땐 어김없이 그 취미를 탓하며 조금은 거리를 둘 것을 다짐했다. 아무쪼록 일상과 취미 사이에 균형을 잘 찾아보자는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면서.

예전 일기를 꺼내 볼 때마다 자의적으로 취미에 몰입했던 시간이 어느새 나에게 다양한 형태로 돌아와 있음을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나의 색깔로 모이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요즘 들어 자신에게 취미가 없음을 아쉬워하는 친구들을 부쩍 많이 만난다. 그들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나의 취미를 물어 보는데, 그 답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걸 안다. 이런 흐름의 대화가 여러 번 지나가자 취미를 나눈다는 것이 단순한 유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취미들이 겹쳐져 형성된 색깔을 갖고 있는 나 자신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에디터│박진우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