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시위를 이끄는 노래, “Patria y Vida”

지난 11일,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식량과 의약품 부족, 잦은 정전 등의 문제가 더욱 심화된 것이 시위의 주요 원인이 됐다. 쿠바인들은 이러한 사태로 이끈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며 거리로 나섰고, 그들의 분노를 표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는 쿠바의 힙합 음악 “Patria y Vida”이다.

곡의 제목인  “Patria y Vida (파트리아 이비다: 조국 그리고 삶)”는 카스트로 혁명 당시 구호인 ‘Patria o Muerte : 조국 아니면 죽음’을 비튼 풍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 “Patria y Vida”는 직설적인 가사를 통해 쿠바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현 공산 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했고, 이러한 메시지는 변화를 원하는 쿠바인이 결집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거리에 나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시작된 ‘Patria y Vida : 조국 그리고 삶’ 구호는 시위대 사이에서 급격히 퍼져나갔고, 시위를 대표하는 곡이자 구호가 됐다. 

이 곡은 마이애미 기반의 레게톤, 힙합 아티스트인 ‘Youtel Romero’, ‘Gente De Zona’와 쿠바의 래퍼 ‘Maykel Osorbo’, ‘El Funky’가 협업했다. 해당 곡은 올 2월 발표와 동시에 화제가 되었고, 유튜브에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현재 6백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곡의 내용과 완성도라는 요인 외에, 이 곡이 쿠바 시위를 대표하는 곡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곡에 참여한 오솔보(Osorbo)와 요투엘(Yotuel)이 지난 몇 년간 활발히 진행된 쿠바의 반체제 운동을 주도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쿠바 시위에 이르기까지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결집하기 시작한 것은 쿠바의 예술인들이었으며 그 중심에 오솔보와 요투엘 두 사람이 있다.

곡에 참여한 요솔보와 요투엘은 ‘산 이시드로 운동(San Isidro Movement)’라는 이름의 그룹 멤버로서 지난 몇 년간 음악과 예술 퍼포먼스를 통한 반체제 운동을 주도해 왔다. ‘산 이시드로 운동’ 의 기원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쿠바 정부는 ‘Decree 349’라는 정책을 통해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한 아티스트는 작품을 판매하거나 공연할 수 없도록 했고, 오솔보를 비롯한 20여 명의 예술가들은 이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산 이시드로 운동’을 결성했다. 단체의 이름은 오솔보가 거주하는 지역명인 산 이시드로(San Isidro)에서 따왔다. 

‘산 이스드로 운동’ 포스터를 들고있는 지지자들

‘산 이시드로 운동’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갤러리의 예술 작품을 가져와 길거리에서 전시했고, 음악과 퍼포먼스를 공공장소로 옮겨 공연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당시에 오솔보는 이미 정부에 저항하는 가사로 지역 사회에서 명성을 얻고 있었던 인물로, ‘산 이스드로 운동’ 활동을 통해 그룹 멤버 중 처음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Decree 349’정책을 비난하는 곡을 공공장소에서 공연한 것을 이유로 체포되어 18개월 형을 받은 것이다. 

이후에 ‘산 이시드로 운동’ 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하나둘씩 체포되기 시작했고, 남은 멤버들은 수감된 동료들의 석방과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에 들어갔으나 이내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600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문화부 장관의 사무실 앞에 모여들어 ‘산 이시드로 운동’ 멤버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 사건은 쿠바에서의 흔치 않은 반체제 시위라는 이유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대중의 불만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정부는 구금된 ‘산 이시드로 운동’ 멤버들은 석방시켜 주었다. 하지만 예술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였고 ‘산 이시드로 운동’를 선동 단체라고 단정 지었다.

‘산 이시드로 운동’ 멤버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들

이후 ‘산 이시드로 운동’은 정권의 단속을 피해 지속적인 반체제 운동을 이어나갔고, 전국적으로 지지자를 모아 왔다. 특히 “Patria y Vida”는 쿠바 국민들의 쌓여온 불만을 터트리고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를 알 수 있는 대목 중 하나로, “Patria y Vida”가 발매된 지 몇 주 후 오솔보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들이 그의 거주지에 들이 닥쳤을 때 수백명의 산 이시드로 주민들은 오히려 경찰을 위협하며 물러갈 것을 요구했다. ‘산 이스드로 운동’이 지역 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해당 사건을 기록한 비디오 영상 속에서 오솔보는 한손에 수갑을 찬 채 길거리에 서서 “Patria y Vida” 노랫말을 뱉었다. 그리고 오솔보를 중심으로 둘러선 산 이시드로의 주민들은 열정적으로 “Patria y Vida”를 따라 불렀다.

‘산 이시드로 운동’의 등장 이전까진 쿠바의 유명 음악인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공산 정권을 비난할 경우 정부의 보복을 당할 게 분명했고, 친정부적 발언을 한다면 전 세계로 망명한 쿠바 이민자에게 미움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산 이스드르 운동’은 권력 안에 숨어 살기를 거부하고 길거리로 나섰고, 변화를 위한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쿠바의 거장 음악가들은 이에 응답하듯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미를 수상한 쿠바의 살사 밴드 ‘로스 반 반(Los Van Van)’은 트위터를 통해 시위를 지지하는 의견을 내보였고,  쿠바의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Chucho Valdes)는 페이스북을 통해 쿠바 국민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산 이스드로 운동’이 보여주는 것은 권력에 저항하는 문화 운동으로서 음악의 힘이다. 펑크록은 1950년대 런던의 도시 개발로 계급 공동체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생겨났고, 레게는 카리브 해 연안에 사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아프리카로의 귀환을 꿈꾸며 탄생했다. 미국의 힙합 문화 역시 70년대 뉴욕의 브롱크스를 중심으로 빈민 지역 소외 계층이 느낀 절망과 반항의 정신에서 시작되었다. 각각의 장르가 다루는 주제와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문화’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연대를 이끌어낸 수단이라는 점은 같다. 음악은 저항하고자 하는 혹은 향유하고자 하는 사회 문화적 특성과 연결되어 연대를 만들었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내왔다. 

‘산 이스드로 운동’의 “Patria y Vida” 역시 힙합과 레게톤 장르 위에서 시대의 울림을 구체화했다. 쿠바인이 삶을 자율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문화를 내세웠고, 구체적으론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가치와 신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설명했다. ‘산 이스드로 운동’을 이끄는 오솔보는 현재까지 75번 이상 구금되었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시대를 노래하고 있다. 그의 노래가 쿠바를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미지 출처 | WSJ,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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