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DELIGHT – 내 입맛에 딱~맞는 술

EDITOR’S DELIGHT : 매 회 다른 즐거움, 관심에 관한 범주를 설정하고, 비즐라 매거진의 에디터 중 3명을 선정하여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음악만이 유일하게 국가가 허용한 마약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담배나 술이 더 심하다. 아마 술, 담배 없어지면 알쏭달쏭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처방전 받으면서 약을 엄청나게 먹겠지. 그래서 마치 중간 단계처럼 처방전 없이도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게끔 돕는 술은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건 아닐까… 역사적으로 너무 오랜시간 인간에게 밀접하게 스며들어서 과학적으로 유해한 것을 알면서도 정부는 이것을 막을 수 없는 것… 그 강력한 것… 비즐라 멤버들에게 그 강력한 “술”이라는 존재 중에서도 자신의 미각을 자극한 술은 무엇일까 물었다. 지금 체크해보자.


한지은(Editor) 패션 후르츠, 잭 다니엘 허니

코로나 19가 없던 20대 초반 이맘때. 찌는 더위를 누르고 시원한 여름밤을 만끽할 수 있던 건 무엇보다도 한여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부산 썰스데이 파티의 롱아일랜드 티와 패션 후르츠, 소금간이 된 스파게티 면 튀김 덕분일지도 모른다. 다신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추억에 대한 미화일까… 당시 썰파를 드나들던 20대 후반 언니들을 보며 아직도 철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던 어린날을 반성하며 매 여름이 돌아오면 썰스데이 파티에서 패션 후르츠를 들이켜고 싶어 진다. 

서울에 와 사무실 추천으로 호기롭게 방문한 남대문 주류시장에서는 3만 원대의 위스키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종류와 가격을 빼곡히 비교한 엑셀표까지 공유받았지만 지갑 사정을 고려했을 때 구매할 만한 건 조니워커, 진빔, 잭다니엘, 제임슨 정도였던 것 같다. 한번 맛을 들인 이후 한동안 남대문에 방문하면 3만 원 대의 술을 한 아름 골라오곤 했다. 그중 잭다니엘 허니는 온더록으로 먹어도 무난하지만 우유에 적당한 비율로 타 먹으면 두말할 것 없이 맛있는 술이었다(그렇다는 건 아이스크림에 타 먹으면 훨씬 사기적인 맛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7평짜리 작은 방에서 간의 레시피대로 제조해 마신 칵테일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에서 작가가 이야기한 적 있는 추운 겨울, 커피에 타 먹는 럼주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뚜껑을 잠가놓으면 한 번에 먹지 않아도 되는 위스키의 특징 덕에 퇴근 후 우유를 탄 잭다니엘을 한잔씩 홀짝였던 기억이 난다. 하필이면 그때가 또 겨울이었다. 자취방에 처음 놀러 온 친구에게 내어준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내게 잭다니엘 허니는 언제 먹어도 맛있긴 하지만 겨울 기분 내기 좋은 술이다.


오욱석(Editor) 마티니, 보드카티니, 본드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얼핏 들어도 굉장히 허세 섞인 이 대사를 처음 들었던 건 아직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 ‘주말의 명화’에서였다.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이 많겠지만, 첩보물 영화의 원류 “007시리즈” 속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명대사로, 그는 언제나 보드카 마티니를 주문할 때 젓지 말고 흔들어 달라는 요청을 더한다. 혹은, 바텐더가 친히 설명해주거나. 그때는 알콜 냄새만 맡아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어린이라 마티니라는 게 뭔지 알지도 못했거니와 칵테일의 종류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바텐더가 뭔가를 섞은 뒤 열심히 흔드는 모습을 보고 특별한 맛이 나는 음료수 정도로 짐작했던 게 전부다. 

007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고, 나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제임스 본드가 마시는 그 술’에 대한 윤곽도 또렷해져 갔는데, 마티니가 칵테일의 일종이라는 걸 알았고, 동시에 언젠가 어른이 된다면 입에 한 번 대보고 싶다는 막연한 상상을 했다. 흘러 시간이 지나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됐지만, 마티니 같은 거 기억할 리가. 소주나 맥주, 막걸리나 진탕 마셔댔다.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취하려 술을 마시던 때, 제대로 된 칵테일을 파는 바에 갈 리가 없잖아. 

그렇게 희미해진 마티니를 겨우 기억한 때는 마티니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던 유년으로부터도 15년이 훨씬 지났을 때다. 어찌 가게 된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술집에서 처음으로 마티니를 주문했다. 배가 불러 맥주는 더 이상 마시기 싫고, 소주는 없고, 찬찬히 메뉴판을 둘러보는데, 마티니가 눈에 들었다. 곧이어 얇은 스템 위 오목한 잔에 담긴 마티니가 등장했고, 슬쩍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사실 그렇게 입에 맞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척 시켰던 상황 안에서 잔뜩 음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입안에서 몇 번 굴리니 뭔 맛인지 알긴 알겠던데. 

그러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난 지금,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바에서 시키는 칵테일은 마티니다. 당연히 함께 간 일행에게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는 농과 함께 마티니를 주문하지만, 사실, 그건 바텐더에게 말해야지.

다들 위스키 온더록이니 스트레이트니를 시킬 때 마티니를 주문하는 건 꽤나 뻘쭘한 일이지만, 앙증맞게 생긴 잔에 담긴 술을 멋지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준 제임스 본드에게 건배를. 그래도 바텐더에게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는 말은 아직도 절대 못 하겠다.


박진우(Graphic Designer) – 샴페인

어릴 때, 그러니까 이십 대일 때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보통 이십 대에는 끽해야 맥주나 소주인데, 맥주는 한 잔 이상 먹으면 배부르고, 소주는 3잔째부터 1잔당 1토였거든요. 난 술을 못 마시는 타입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 빼고 다 즐기는 술자리에 대한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가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간은 흘러 삼십 대가 되고 이런저런 술들을 접할 기회가 생기면서 와인, 위스키를 접했습니다. 

각자 의견은 다르겠지만 비싼 게 보통 좋잖아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와인을 마시니까 좋았어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때문에 어떤 편견이나 정신적인 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몰라도 일단 좋더라고요. 한 병, 두 병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저는 술을 못 마시는 녀석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와인은 마실 때의 대화나 취하는 속도가 특히 좋았습니다. 술은 알코올의 정도와 특징있는 향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차이점이 술자리의 분위기와 속도를 이렇게까지 다르게 한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습니다. 근데 와인, 수많은 와인 중에서도, 간발의 차로 샴페인이 좋습니다. 애초에 생산량 차이가 크게 나는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과 샴페인 이렇게 나눈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지만, 이렇게 나누었을 때 레드나 화이트는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뭘 고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데 샴페인은 대체적으로, 직관적으로 너무 맛있어요. 와인을 거의 마시지 않는 친구들도 샴페인은 항상 좋은 반응. 샴페인만 마셔도 맛있고 음식이랑 마셔도 맛있고 혼자 먹어도 맛있고 같이 먹어도 맛있고 없어서 못 먹는 샴페인. 아직 한번도 못해본 야외 낮술 샴페인을 꼭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Editor│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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