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음악. / 음악(거울)으로 동기화되는 개인의 내밀한 여정.
창: 세상을 바라보는 매개로서의 음악. / 음악(창)을 통해 세계를 들여다본 경험.
Mirror
Public Image Ltd. – The Order of Death
이재
1. 나는 마음이 힘들면 엄마보다도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할머니를 보러 전주에 내려갔다. 다행히 아직 정정하셨다. 그런데 기운이 없고 침울하셨다. 나는 할머니한테 이쁨 받는 게 좋은데 할머니는 지금 손녀딸을 이뻐하는 것보다도 자기 자신의 울적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든 게 더 커 보였다. 늙고 병든다는 것은 손녀딸의 애교나 위로 따위로는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할머니는 밥 먹고 왔다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 전병과 바나나를 먹이고 순두부찌개를 먹였다.
2. 고등학생 때 친한 친구 세 명이서 65trio를 결성했다. 그건 65살까지만 살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65세 이후부터 매월 돈을 받을 수 있는 연금저축펀드에 관심이 간다.
3. 내가 죽고 난 이후를 생각해봤다. 장례식은 하고 싶지 않다. 화장해서 바다든 땅이든 그냥 뿌려줘. 내 시체를 어디에 보관해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 제발 하지 마라.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거기엔 내가 없다. 그냥 내 생각이 나면 생각해. 짧은 대화도 괜찮다.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못 들을 거다. 그러니 짧게만 해라.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알아서 추모의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가족들은 가족들끼리 모여 슬픔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고, 동네 친구들은 동네 친구들끼리만 모여 식사 한번 하며 웃긴 얘기나 하기를 바라고, 동료들도 알아서들 맛있는 음식 먹으며 내 생각 한번 하기를 바란다.
나는 편지를 쓰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다. 가족, 생각나는 친구, 동료들 한 명 한 명에게 생각나는 대로 편지를 쓰련다. 내가 죽으면 한 명이 맡아서 우편을 보내줘! 주고 싶은 선물이 떠오르는 사람에게는 소정의 선물을 주겠다. 안 받았다고 서운해 하지는 말기를.
4. 죽는 게 엄청 아프고 진짜 안 죽고 싶으면 어떡하지? 어쨌든 내가 죽으면 3번만 기억해줘.
5. 인간의 대서사적 이야기. 나를 규정하는 어릴 적 경험, 외상 등의 이야기-> 청년, 중반의 고비(술, 섹스, 마약 등 안 좋은 유형의 중독)-> 그것에서 빠져나오기-> 평온한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이런 기승전결의 이야기는 아주 보편적이고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인 게 참 말도 안 되고 참 다행이다.
6. 그 안에는 의외의 사건과 만남으로 인해 인생의 기로가 수도 없이 바뀐다. 그런데 부지런한 신적인 존재가 과연 개별적 존재 하나하나를 위해 플랜을 짜고 만남과 헤어짐과 행동과 선택들을 결정해놓을까? 어린 시절 기도하면 하늘에 둥둥 얼굴만 떠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예수님은 없다. 적어도 28세인 나에게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모든 배치와 만남은 우연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주 어느 정도는 물리적인 위치에서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나의 영혼의 메이트가 저 멀리 아랍에 있을 확률은 독서모임에서 마주친 사람보다 적다. 아랍어를 할 줄 몰라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겠지. 어쨌든 죽기 전까지 변화를 반기고, 사람을 만나는 것에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내게 못된 사람을 잘 피해 다니는 게 좋겠다.
WINDOW
King Gizzard & The Lizard Wizard – Beginner’s Luck
강상윤
초심자는 두려워한다. 또 동시에 당돌하기도 하다. 나 역시도, 매 순간 초심자의 입장에 있다. 실수를 반복하며 지내왔던 시간들은 어느새 기록이 되어 나를 기분 좋게 할 때도 있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 때가 있기 마련이다.
언제부턴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나를 판단하는 존재는 내가 아닌 타인임을 나 스스로 느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내가 원하는 모습의 태도를 얼추 흉내 내어보는 것. 내가 창이 되고 나를 보는 다수가 비로소 더 큰 창이 되었음을 일깨워주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난 또 언제부턴가 당돌해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이유를 알기 이전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은 ‘난 어디서부터 왔는가?’라는 질문 속에서부터다. 각자의 사유하는 방식은 다르겠으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어설플 수 없는 질문의 밀도에 우리는 매 순간 당황하며 순간을 보내간다. 사회의 가면이라도 쓴 건지. 아니면 내가 이 사회를 살아가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건지. 치부를 드러낼 수 없는 사회가 강화될수록 우린 두려움이 없어지며, 당돌함을 잃어간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산다. 써 내려가는 글의 감정이 내게 5분도 채 머물지 못하는 시대임을 물 마시듯 느껴가면서도 또 웃는다.
그 마음을 느낄 다수를 존경하면서 짧은 글을 마친다.
*해당 에세이는 지난 VISLA 매거진 종이잡지 16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