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Happy Food #3 : 팀 런던의 걸어도 걸어도

*’People, Happy food’ 시리즈는 식탁 주변에서 나눈 사람들과의 대화와 그 장면을 기반으로 음식과 문화에 관한 생각을 풀어나갑니다.


팀 런던의 걸어도 걸어도
안나, 맥주, 칸넬로니 릴레이

올드쉽 해크니의 맥주와 튀긴 할루미, 테스코의 프리 쿡 퍼프 페이스트리 파이, 하우스 오브 모모의 네팔식 만두와 카레, 더스티 너클의 사워도우 빵과 호박 수프, 그린위치 푸드마켓의 머스터드와 양파를 양껏 올린 핫도그, 빅토리아 파크 마켓의 블루스 틸턴 치즈, 막스 엔 스펜서의 그라놀라, 이스트 베이커리의 시나몬 번, 리스보아 파티스리의 에그타르트, 스튜디오에서 마시던 다 식은 메밀차와 카다멈 생강차, 오전의 저혈당을 책임져온 토니스 초콜릿, 우리의 단골 메뉴 윌턴 웨이 델리 포카치아 샌드위치, 플리 백(FLEABAG)과 벤엔 제리스 쿠키 도우 아이스크림, 안나가 베니스로 돌아가던 날 아침에 먹은 폽함스의 바닐라 커스터드가 듬뿍 들어간 애플 크럼블… 모든 맛의 런던. 한 단어로 정의하기에 너무 넓고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오늘은 90일의 인턴십 중 어느 평범한 하루를 회상한다.

작년 가을, 안 나와 나는 주중에는 풀타임 인턴, 주말이면 여행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관광객에 더 가깝다. 출신지를 막론하고 여행자의 마음은 비슷하니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곳에 가볼 생각에 마음이 들뜨고 함께 공유할 친구가 있어 더욱더 즐겁다. 길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여우나(처음 본 주토피아의 닉 와일드 같은 오렌지색 여우를 잊을 수 없다) 다람쥐마저 웃음을 선사하고, 버스를 타면 무조건 2층 맨 앞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하다. 걸어서 떠나는 주말 투어의 끝, 집에 돌아가기 몇 블록 전에 우리는 멈춰 서서 그날 몇 보를 걸었는지 맞히는 맥주 내기를 하곤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매우 신중한 순간이다. 나중에는 우리 둘 다 그 감이 너무 정확해지는 바람에 내기가 무의미해졌다.

저녁

그래도, 내기에서 딴 맥주가 퇴근 후의 맥주를 이길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먹는 안나의 피시 앤 칩스, 아껴둔 플리 백 에피소드 한편, 그리고 맥주 한잔은 그날 하루 최고의 보상이다.

아침

그 많은 카페와 베이커리의 각종 페이스트리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집을 구하기 전 일주일 남짓 머물렀던 에어비엔비에서의 아침 식사다. 낯선 공간에서 크고 작은 걱정과 설렘 뒤섞어 우유에 양껏 말아버리던 그라놀라.

점심

직장인의 점심을 생각해보면 식권을 끊는 일이 경제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자주 가는 구내식당 같은 곳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었으니 달스턴의 스튜디오에서 걸어서 십여 분 걸리는 윌턴 웨이 델리다. 각종 이탈리안 식재료와 매일 바뀌는 점심 메뉴가 있는 곳으로 우리는 보통 포카치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어느 날은 시금치와 리코타 치즈가 들어간 칸넬로니라는 메뉴가 있었는데, 기다란 원통형 파스타에 속 재료를 넣고 베샤멜소스와 관대한 양의 곱게 간 파르 미자노 치즈를 곁들여 켜켜이 쌓아(두 층이 적당하다) 구워내는 것이 라자냐와 흡사하다. 만두를 빚고 쌈을 싸고 김밥을 말아먹어와서 인지 이 파스타의 모양과 조리법에 희한한 친밀감과 매력을 느꼈고 그 뒤로 ‘칸넬로니 릴레이’가 시작됐다. 안나와 함께 만들어 먹고 그 뒤 파르마에서 6개월 만의 재회도 칸넬로니로 기념했다. 다음 릴레이 전에 안나가 알려준 베샤멜 만들기부터 다시 짚어봐야겠다.

팀 런던의 걸어도 걸어도는 안나의 고향 베니스에서도 계속된다.

MOON-HERE 문형리
식사하며 나누는 테이블 주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관한 생각과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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