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물’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는 왜인지 모를 위화감이 든다. 세트 구성처럼 뒤이어 ‘아니다’를 붙여 “~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완성해야만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인데, 이유가 뭘까 하고 뜻을 검색해보았더니 그 사전적 의미부터가 ‘한 인물이나 집단이 독차지하는 물건’이라고 한다. 얼마 전 스키니진과 피어싱에 이어 가죽 코트까지 단속한다는 소식을 전한 북한이 아니고서야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자유 재화를 독차지한다는 개념이 이론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학생과 교복처럼 당위성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라는 표현이 유독 더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왔구나 싶다.
단어의 쓰임새만 보아도 한국 사회에서 전유물이라는 개념이 많이 흐려졌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도 패션이 ‘집단화’를 이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불리던 등산복을 젊은 세대 또한 패션복과 일상복으로 착용하지만, 출근길 동묘에서 살펴보면 등산복은 여전히 어르신들의 떼어놓을 수 없는 패션 코드다. 출퇴근하는 사람들, 한남동 카페를 지나는 무리, VISLA 사무실 상주 인원들의 옷차림 또한 알게 모르게 서로서로 닮아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 VISLA 매거진을 통해 배운 패션이 집단적인 성격을 띠는 몇 가지 대표 사례를 상기해보기도 한다(안 본 독자라면 지금이라도 ‘집단의 드레스 코드’ 시리즈를 찾아보길 권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스케이터들은 어떤 옷을 입을까? 집단의 일원으로서, 동시에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으로서 소속감에서 온 영향을 바탕으로 개성을 구축하는 중이 아닐까. 이번 ‘Wear are you from?’은 서울 스케이트보드 신(Scene)의 일원이자 중학생 때부터 스케이팅의 재미에 빠진 한 스케이터의 이야기를 전한다. 보내온 사진 속 김평우의 모습은 스케이터라는 전제로 상상했던 기획자의 예상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함께 살펴보자.
김평우(yangpyeongwoo)
내가 스케이트를 처음 접한 2006년 언저리에는 통이 큰 바지가 유행이었다.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유행을 따라 통 큰 바지를 사달라고 어머니를 졸랐다. 그렇게 한 일 년 정도는 통 큰 바지를 입곤했다. 그러던 중 어떤 비디오 하나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바로 ‘Baker’라는 스케이트보드 회사에서 출시된 비디오 ‘Baker3’였다. 비디오가 담은 온갖 기행은 스케이트보드를 둘러싼 문화보다도 스케이팅 자체를 먼저 접한 나에게 큰 혼란을 야기했다. 당시 나는 보드를 탈뿐 일개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기에, 술과 담배를 피워대고, 짓궂은 장난을 치는 영상 속 스케이터들을 보며 ‘이게 스케이터인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큰 계단에서 트릭을 한다거나 핸드레일을 타는 그들의 모습은 ‘이게 스케이터구나’라는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비디오의 매 장면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학생 때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다.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배울 거라는 생각으로… 결국 지금까지도 담배는 피우지 않게 되었지만…
한편 그들의 패션만큼은 내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앤드류 레이놀즈(Andrew Reynolds), 더스틴 돌린(Dustin Dollin)이 입은 타이트한 팬츠와 흰색 셔츠는 그들의 스케이팅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스레 통 큰 바지를 떠나 그들의 차림새를 따라 하게 되었다. 바뀐 스타일에는 기존에 신던 보드화보다 더 얄쌍한 실루엣의 보드화가 어울렸기에 신던 신발도 교체했다. 따지고 보면 이때가 옷 입기로 하여금 스케이팅 외에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시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추후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계속해서 스케이터들이 입는 옷에 흥미를 가졌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의류는 비싼 가격이었기에 부모님을 겨우 졸라서 산 옷은 마르고 닳도록 입고 다녔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스케이트 비디오에서 나온 옷을 찾아 입기 시작했다. 입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스케이트 비디오에 나오는 옷을 찾아 헤맸고 타이트한 팬츠에서 빳빳한 소재의 디키즈(Dickies) 팬츠로 다시 한번 변화를 겪기도 했다. 디키즈 874는 이제 스케이터에게 교복 바지와 같은 것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874 만큼은 찾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비디오에서 영향을 받은 스타일은 돌고 돌아, 지금에 와 내 옷장을 돌아보면 공간의 반 이상에 브릭스톤(Brixton)의 옷들이 차지하고 있다. 열심히 스케이팅을 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국내에 브릭스톤을 수입하던 웍스아웃(Worksout)에서 서포트를 해준 것이다. 하나둘씩 서포트를 받게 되니 어느덧 꽤 많은 옷들이 모였다. 어쩌면 당시 좋아하던 스케이터들이 입던 옷도 다들 그렇게 얻게 된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 이 옷 저 옷을 섞어서 입다 보니 지금의 스타일로 스케이팅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받은 중청 색의 청바지는 시간이 지나서 연청색으로 바뀌게 되었고, 청자켓 또한 색이 빠져 빛바랜 연청색 재킷이 되었다. 나는 아마 그 옷들이 기본적인 신체보호라는 역할을 하지 못할 때까지 입을 듯하다. 낡은 옷에 거리낌이 없다 보니 최근엔 옛날 옷, 빈티지 의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만듦새나 모양이 독특한 것이 많아서 이베이(eBay)나 엣시(Etsy)를 뒤적이는 일도 많아졌다.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했을 때 나는 거의 막내였다. 주변에 보드 타는 친구들은 몇 명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젠 더 이상 막내의 위치는 아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스타일이 트렌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도 내가 겪어온 과정을 비슷하게 겪고 있지 않을까. 취향은 다를지 몰라도 비디오를 보고 옷을 찾아 입는 일련의 과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계속해서 스케이팅을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스케이터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스케이팅을 할 것이다. 이것만은 달라질 것 없는 사실이다.
Editor │ 한지은
Photographer│강지훈
*해당 에세이는 지난 VISLA 매거진 18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