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es and All”의 식인 행위에 담아낸 루카 구아다니노의 에로티즘

Theodor de Bry ‘The Sons of Pindorama’

Cannibalism : 동족포식

중세 라틴어 ‘카르네레바리움(Carnelevarium)’의 ‘Carn-(고기)’ 와 ‘Levare(제거하다)’가 합쳐진 단어로 식인을 의미하는 ‘카니발리즘’. 어원은 스페인어 ‘카니발(Canibal, Carib는 카리브족을 뜻한다)’로, 16세기 무렵 스페인인들 사이에서 만연했던 카리브족은 인육을 먹는다는 믿음에서부터 비롯되어 서양 종교 윤리관에서 벗어난 식인 풍습의 의미를 담고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의 신작 “본즈 앤 올(Bones and All)”은 이런 카니발리즘을 다룬 영화다. 문자 그대로 식인, 사람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이터(Eater)’의 삶을 묘사한다. 극 중 주인공 ‘매런(테일러 러셀)’은 어느 날 밤 본능에 이끌려 친구의 손가락을 베어 문다. 한 밤중에 벌어진 소동 이후 아버지는 매런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의 어린 시절의 식인 습성부터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카세트테이프를 남기고 떠나면서, 어머니를 찾아가기 위한 매런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 여행에서 매런은 ‘설리(마크 라이런스)’, ‘리(티모시 샬라메)’를 시작으로 길거리 두 명의 이터와 엄마까지 총 다섯 명의 이터를 순서대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가족, 고독사한 노인, 자녀 없이 홀로 사는 이들을 먹으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살만 발라 먹거나, 뼈까지 씹어 삼키는 등 식습관도 가지각색이었다. 왜 그런 방식으로 식인을 하는지,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과 가치관을 보며 매런 역시 자신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결국 그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났고, 첫사랑을 느낀 리에게로 돌아간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필모그래피를 유심히 지켜본 관객들은 느낄 것이다. 전 작품들인 “아임 인 러브(I’m in love)”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에서 주인공이 첫사랑을 느꼈던 계절의 감각과 그로 인해 정체성이 확장되는 인물들의 모습 그리고 “서스페리아(Suspiria)”에서 다룬 컬트적인 피의 미학까지 담겨있는 “본즈 앤 올”은 그의 취향을 집대성한 영화라는 것을. 공포/스릴러의 탈을 쓰고 첫사랑을 읊조리는 성장 영화란 말이다. 영화는 80년대 미국 중서부의 황량하고 드넓은 모습을 로드무비 형태로 화면을 비추며 이터로서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첫사랑을 경험하는 매런의 여정을 시각화한다.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Atmosphere”를 배경에 깔고 매런과 리가 차를 타고 들판을 달리는 장면은 이들의 여행이 얼마나 불안하고도 자유로운지 짐작하게 해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극도의 낭만성과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에서 식인은 하나의 커다란 메타포다. 바로 죽음을 통한 ‘타자와의 연결’을 의미한다.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저서 ‘에로티즘(Erotism)’에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혼자 태어나며 혼자 죽는 불연속적인 존재이기에 타인과의 연속성에 대한 에로티즘적 갈망이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사랑과 섹스의 순간으로 타인과의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단일 개체로 태어난 인간 각자에게 사랑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연결’에 대한 공허한 열정이자 착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리가 죽음의 순간에서 매런에게 자신을 뼈까지 남김없이 먹어달라고 부탁한 일은 엄청난 사랑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인 시선에선 이 광경이 끔찍하게 느껴지겠지만, 적어도 이터들의 세계에선 죽음을 넘어서까지, 고통을 넘어서까지 사랑하는 상대와 연결되고 싶다는 진심이 담긴 부탁인 것이다.

매런이 리를 먹는 장면에선 다른 이터들이 인육을 먹을 때와는 달리 가사가 담긴 음악이 흐른다. 노래는 “우리가 존재하면 안 되는 곳이 잠시 동안 집처럼 느껴졌다(in a place we shouldn’t be for a minute we made it feel like home)”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말한다. 타인과 다른 습성을 지닌 존재로 태어난 외로운 존재인 매런과 리가 이 자유롭고 목적지가 불분명한 여정을 함께함으로써 이 땅에 발붙여 온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독은 가사를 통해 직설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식인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터들의 존재 자체가 실은 세상에 타자화된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은유이다. 이들은 늘 자신의 선천적인 습성을 숨겨야 하며 동족끼리도 서로 위협이 될 수 있기에 함께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니 일반적인 인간과는 더더욱 살을 맞부딪히며 살기 어렵다. 살기 위해 타인을 찾아 헤매야 하는 숙명이지만 누군가와 연결될 수 없기에 태생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비유하여 이야기한다. 영화 내내 수상쩍고 꺼림칙한 존재로 비추어진 설리가 스스로의 이름을 3인칭으로 부르며 말하는 유아적인 습관을 갖게 된 것, 그가 먹어치운 인간들의 머리카락을 모아두는 괴상한 취미를 갖게 된 것, 매런에게 광적으로 집착했던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본즈 앤 올”은 형태가 낯설 뿐 루카 구아다니노의 에로티즘적 철학이 담긴 보편적인 사랑과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사랑하는 상대의 이름을 나의 이름으로 불러서 진정한 내가 됐던 것처럼, 상대를 뼈까지 남김없이 먹어 내 안에 간직하고 내 온몸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것은 루카 구아다니노만의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찬미다. 


이미지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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